2020년 4월 15일 수요일

신명기 5장 12~21절 "창조와 구원의 안식"

2020년 4월 14일,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신명기 5장 12~21절 "창조와 구원의 안식"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17 살인하지 말지니라
18 간음하지 말지니라
19 도둑질 하지 말지니라
20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21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구약성경의 핵심은 단연코 모세오경입니다. 이러한 오경을 ‘율법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단호하고도 명쾌한 법조항 형식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율법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렇기에 출애굽 여정의 의미심장한 시작점인 시내산에서 모세는 두 돌 판에 새겨진 십계명을 주님께로부터 받아들고 내려왔습니다. 그 열 가지 조항들이 출애굽기 20장 1~17절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십계명이 신명기 5장에 다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제 출애굽 여정을 마무리하려는 중요한 시점에 모세는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 외쳤습니다. 그만큼 십계명이 압도적인 권위와 찬란한 교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출애굽기의 십계명과 신명기의 십계명이 거의 대부분 일치하는데 단 하나,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 규정만 그 세부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11절 말씀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첫 번째 십계명에 담긴 안식일 준수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지으실 때 일곱째 날에 쉬셨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주님께서 휴식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당신께서 지으신 피조세계에 안식의 숨결을 불어넣으시고 쉼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안식으로 말미암아 창조의 온도와 빛깔을 보다 따뜻하고 포근하게 하셨습니다.

반면에 오늘 함께 읽은 두 번째 십계명에는 안식일 제정의 근거를 다르게 설명합니다. 본문 15절 말씀 다시 한 번 다같이 읽겠습니다.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출애굽기 십계명과 달리 신명기에는 안식일의 근거가 주님의 창조에서 출애굽, 즉 구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선 여기서 분명히 확인하게 되는 점은 구약성경의 율법이 결코 완고하게 경직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성경 안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이해가 역동적으로 바뀌며 발전되는 모습을 여기에서도 명확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이 안식일을 통해 연결되고 있음을 반드시 주목해야 합니다. 창조와 구원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강조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즉, ‘온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혹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유일한 창조주’라는 고백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굳게 붙잡은 신앙의 핵심입니다. 안식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가로지르는 가장 소중한 은총의 도구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지금, 이곳에서 경험하는 창조의 조각입니다. 안식일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금 경험하는 작은 출애굽입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안식의 반대는 곧 하나님의 창조와 대조되는 어둠과 혼돈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의 맞은편은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는 억압과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안식일의 의미는 단지 고된 노동을 멈추고 잠시 숨을 돌리는 날로 그치지 않습니다. 바로 나를 위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새롭게 경험하는 시간 속의 지성소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안식년으로, 안식년은 희년으로 발전되어 사람과 생태계를 비롯한 모든 피조세계를 살리는 구체적인 제도로 더욱더 발전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4장 19절에서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주의 은혜의 해” 곧,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즉, 참된 안식을 온누리에 실현하는 희년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견고한 뼈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완성하셨습니다.

마침 우리는 부활절을 지나고 첫 번째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미 잘 아시는 대로 주일은 작은 부활절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폐기하신 것이 아니라 주일을 통해 완성시키셨습니다. 우리는 매주 주일 예배에 모여 온 세상을 진정으로 살리시는 예수님의 부활과 가슴깊이 마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활 속에 담긴 진정한 안식을 발견해야 합니다. 부활의 진리를 진실로 믿고 고백한다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이루는 참된 안식을 이루어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앞장 선 종교 권력과 제국의 질서는 그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의 안식을 빼앗는 폭력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계명에 담긴 안식일 명령을 오늘의 삶 속에서 지키기 위해 진리 가운데 마음을 깨우며 두 눈을 또렷이 떠야 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누리고 위대한 구원에 안기지 못하게 하는 죄의 실체를 분별해야 합니다. 쉼과 여유를 빼앗아 주님의 깊은 뜻을 잠잠히 헤아리게 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악의 문제를 경계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매일 마주하는 직장 상사 혹은 가부장적인 어른들을 비롯한 여러 갑을 관계를 자연스럽게 떠올리실 겁니다. 그 외에 여러 복잡한 관계로 얽힌 권력의 문제와 사회 구조를 쉽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분명히 맞습니다. 성경은 결코 허공을 울리는 막연한 죄악을 두고 경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입체적이고 광범위한 불의에 대해 복음으로 맞서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를 쉬지 못하게 않고 안식을 빼앗는 또 다른 분명한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외부의 다른 권력자만이 아니라 나의 헛된 욕망이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습니다. 거부하기 힘든 이 시대의 문화만이 아니라 어리석은 조급함이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안식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노자는 도덕경 제24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企者不立(기자불립) 跨者不行(과자불행)”, “발꿈치를 들고서는 오래 설 수 없고, 다리를 넓게 벌리고서는 멀리 가지 못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안식을 통해 내면을 비우고 내려놓지 못한 채 자신을 부풀리고 무리해서 서두른다면 결코 신앙의 여정을 건강하게 이어갈 수 없습니다. 직접 참 사람이 되시고 몸소 쉼을 누리시며 안식일을 완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들의 비장한 행군이 아니라 성전을 향해 가는 순례자의 가벼운 발걸음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 명령을 통해 쉼이 필요한 나 자신의 연약한 실존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오직 부활만이 안겨줄 수 있는 위대한 생명과 희망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와 구원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곳에서 우리 가운데 이루시기 원하시는 주님의 참된 안식을 밝히 깨달아 알며 진정한 쉼을 누리고 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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