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31일 화요일

신명기 3장 23~29절 "사랑이라는 해답"

2020년 3월 31일, 새벽기도회, 목사 정대진
신명기 3장 23~29절 "사랑이라는 해답"

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29 그 때에 우리가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주하였느니라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명확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의문과 혼란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이른바 ‘난제’라고 불리는 장면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특히나 구약성경에서 그러한 어려운 문제들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도 그중 하나입니다. 바로 모세에게 내려진 가나안 진입 금지명령입니다. 모세는 구약성경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수백년 동안 이집트 제국의 압제에 시달렸던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해 냈습니다. 또한 모세오경의 토대가 되는 율법을 선포했습니다. 즉, 고난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가운데 주님의 뜻과 말씀을 생생히 전해준 위대한 영웅입니다.

그러한 모세가 정작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이유입니다. 바로 민수기 20장 2~13절에 기록된 ‘므리바 사건’ 때문입니다. 힘겹게 사막을 지나던 어느 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들어 물이 부족하다며 거칠게 따졌습니다. 이 때 그들은 두 지도자를 향해 왜 자신들을 여기로 데려와서 고생 끝에 결국 죽게하느냐며 악담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백성들을 모아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터져 나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분노에 사로잡힌 그는 잠시 이성을 잃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치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거기서 물이 나와 온 백성들이 목마름을 해결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모세가 보인 행동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관련하여 민수기 20장 12절 말씀 읽어드리겠습니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이 날 모세가 잘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지도자로서 지극히 미숙한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오랜 소원인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하지 않습니까? 그런 까닭에 모세는 한 참 시간이 흘러 가나안 입성을 앞둔 백성들을 향해 이 사건을 다시 언급하면서 억울함과 원망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본문 25~26절 다함께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우리는 이러한 모세의 마음을 쉽게 공감하게 됩니다. 누구나 삶 속에서 온갖 좌절을 경험하며 분노하기 때문입니다. 별거 아닌 실수 탓에 그동안의 나의 헌신과 노력은 깡그리 무시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드넓은 사랑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주님을 앞으로도 더욱 신뢰해야 되는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회의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므리바 사건은 성경의 대표적인 난제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지를 오랫동안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그런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저역시도 이 골치 아픈 장면 때문에 종종 고민에 잠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매우 인상적인 일을 2년 전에 경험하였습니다. 그 때 제가 섬긴 교회에서 열 분 정도 되는 성도님들과 함께 모세오경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오늘 본문에 나온 므리바 사건 난제에 대해 설명 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모세가 왜 가나안에 못 들어갔는지, 그 이유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여쭈어봤습니다. 그러자 평소 조용히 계시던 은퇴권사님 한 분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하나님이 모세를 참 사랑해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만약 모세가 가나안으로 들어가 출애굽을 완성한 공로로 사람들의 지나친 열광을 받고 우상이 되면 그 자신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저는 여느 딱딱한 신학책이 담아 낼 수 없는, 깊은 연륜이 묻어나는 향기로운 묵상과 깨달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모세의 가나안 입성 금지가 개인숭배를 막기 위함이라는 해석은 이미 많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사랑에 비추어 이 말씀을 곱씹어 보면 볼수록 너무나 정확한 해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혹은 정치 심지어 교계에서 젊은 시절 너무나 훌륭한 일들을 하며 많은 존경을 받다가 안타깝게도 노년에 추하게 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사람들의 열광과 환호 소리에 취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하지 못합니다. 대중이 그려낸 허상에 스스로를 동일시합니다. 그 결과 자기와 공동체를 파멸로 몰아넣는 것을 역사와 오늘의 현실 가운데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그 성공을, 그 성취를 이루지 않는 게 그에게는 더 좋은 일 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씁쓸하게 하고는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오래고 간절한 소원과 달리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하신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점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한결 같이 사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스라엘의 우상이 되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우상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반드시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포항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모세의 가나안 입성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당연히 들어주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원입니다. 내가 이렇게 헌신하고 봉사 했는데, 내가 이토록 열심히 충성하고 희생했는데, 주님께서 적어도 이 기도만큼은 응답해 주시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이 누구에게나 알게 모르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기대가 클수록 좌절도 깊고 쓰라리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와 관련하여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할 갈등과 아픔,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노력했지만 끝내 이룰 수 없었던 진학과 취업, 인생을 다 바쳐 일군 사업체에 찾아온 크나큰 위기, 이 모두 앞에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럴 때일수록, 절망에 사무쳐 몸부림칠수록, 성경에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위대한 진리에 가만히 온 몸과 마음으로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법이 연약한 죄인인 우리의 생각과 다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마다의 가나안을 앞에 두고 더 이상 걸음을 내딛을 수 없을 때, 그 허무함과 씁쓸함에도 불구하고 더욱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어리석은 소원을 넘어서는 진정한 은혜의 길로 신실하게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침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도 겟세마네 언덕에서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당신의 뜻을 내려놓으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간절히 드리셨습니다. 부디 기도의 자리로 모인 이 시간이 저마다의 겟세마네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더욱 마음 깊이 품으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난제로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가장 명확하고 분명한 진리를 발견해 나가는 모두가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신 하나님
가나안 땅으로 건너갈 수 없었던 모세의 절망과 좌절을 마주합니다. 그처럼 코로나19를 비롯한 여러 현실의 문제로 힘겨워하고 낙담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언제나 우리를 감싸 안고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의 어리석은 기대와 소원을 넘어서는 주님의 신실한 이끄심을 신뢰합니다. 그 뜻 가운데 믿음으로 걷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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