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6일 금요일

출애굽기 7장 “나일강의 출렁임”

2026년 2월 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출애굽기 7장 “나일강의 출렁임” 찬송가 93, 94장

출애굽기 6장은 이집트를 벗어나는 위대한 여정을 하나님께서 직접 주도하신다는 위대한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모세의 쓰라린 좌절을 함께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완고하게 닫혀 있습니다. 너무나 힘겨운 상황입니다. 모세는 자기 입이 둔하다며 거듭 한탄합니다. 단지 신체 일부의 약함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막중한 사명 앞에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처절하게 고백하는 장면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일으켜 세워 본격적으로 출애굽 여정의 문을 여십니다. 당신의 권능을 펼쳐 보이셨습니다. 먼저 아론을 통해 지팡이를 뱀으로 변화시키는 이적을 일으켰습니다. 파라오의 마술사들 역시 지팡이로 뱀을 만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뱀들은 이스라엘의 뱀에 잡아 먹혔습니다.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은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모세가 말하는 야훼 하나님이 마냥 무시할 존재가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얼마 되지 않아 온 이집트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파라오가 나일강에 나타날 때 그에게 전할 말과 행동을 알려주십니다. 17~18절 함께 읽겠습니다.

17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18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

하나님은 모세가 파라오 앞에서 뱀으로 만들었던 그 지팡이를 들고 나일 강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나일강을 비롯해 다른 강과 운하와 모든 호수가 피로 바뀌었습니다. 단지 물이 피로 변했다는 신비로운 화학적 변화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먹을 물이 없어 괴로움에 빠진 것도 이 이적의 핵심이 아닙니다. 

이집트에서 나일강은 단순히 거대 자연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신성합니다. 이집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찬란한 문명을 지탱하게 한 원천입니다. 그런데 그 나일강이 노예들의 신에 의해 죽음의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신이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그토록 자랑했던 화려한 번영이 한순간에 허약함을 드러내었습니다. 이집트 제국의 근본을 뒤흔드는 경악스러운 사건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내리치시는 열 가지 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백성의 탄식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펼쳐졌습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자녀들을 위해 내미시는 살림의 손길은 허공 위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 시대 가장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과 체계 속을 헤집고 들어오십니다. 사람들이 우러러보며 떠받드는 화려한 문명을 뒤집고 다가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러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반역범을 처형하는 틀이 부활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믿고 고백한다면, 오늘날 우리 앞의 이집트 제국을 분별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파라오가 내세우는 나일 강이 무엇인지는 올바로 가늠해야 합니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내 마음을 거세게 움직이게 하는 탐욕의 실체를 가리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달리게 하는 눈부신 무언가입니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많은 돈이, 다른 누군가에는 드높은 명예가 그러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분명히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일강물을 피로 바꾸십니다. 과연 누가 참 하나님인지를 검붉은 피로 생생히 드러내 보이십니다. 우리의 시선을 십자가로 향하게 하십니다. 십자가를 향해 삶의 중심을 고정하며 제국의 풍요를 넘어 천국의 복음을 품고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
나일강을 피로 바꾸신 하나님
기세등등한 파라오의 오만이 강물과 함께 무너져 내려가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저희 삶의 참된 풍요는 나일강과 그 강을 다스린다고 외치는 우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파라오의 다스림이 아닌 주님의 통치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통해 온전히 깨닫고 이루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2월 5일 목요일

출애굽기 6장 “부르심의 냉기와 온기”

2026년 2월 6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출애굽기 6장 “부르심의 냉기와 온기” 찬송가 324, 325장

어제 읽은 출애굽기 5장은 모세가 파라오에게 백성의 구출을 요구한 후 벌어진 파장을 알려줍니다. 파라오는 불쾌해하며 이스라엘이 게으르다고 질책하였습니다. 더욱 가혹한 노동 조건으로 몰아붙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저주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모세는 무척 마음이 상하고 지쳤습니다. 그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절 함께 읽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은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질 출애굽 사건을 누가 주도하는지 확실히 알려주십니다. 바로 하나님 당신입니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금 모세가 괴로워하는 핵심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막중한 사명을 이끌 책임에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주님께서 분명히 알려주십니다. 모세가 아닌 하나님의 강한 손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하십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하시는 이유를 다시 강조하며 설명하십니다. 5, 7절 함께 읽겠습니다.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하나님께서 백성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지난날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그 언약을 이루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길 바라셨습니다. 그들과 신실한 관계를 이루기 바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주님께서 몸소 앞장서 이루십니다. 너무나 눈물 겹도록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이 세상 가장 위대한 약속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기만 합니다. 9절 읽겠습니다.

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모세는 하나님께 들은 찬란한 언약을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변화를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이제 그들이 주님의 말씀 앞에 무릎 꿇고 모세의 권위를 인정하길 바랐을 겁니다. 출애굽 여정을 향해 비로소 힘차게 걸음을 내디딜 거라 예상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삶이 버겁고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심하게도 모세를 더욱 몰아 붙이십니다. 11절에 보면 주님은 모세에게 파라오에게 다시 가라고 하셨습니다. 백성을 내보내라고 요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로서는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이미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그가 파라오에게 시도한 결과 이스라엘은 가혹한 노동 환경에 놓였습니다. 그로 인해 모세는 백성의 거친 항의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파라오의 왕궁을 향해 그를 보내셨습니다. 모세로서는 답답하기 이를데 없는 상황입니다. 출애굽기 6장의 마지막 절인 30절은 자기는 입이 둔한 자라며, 파라오가 말을 들을리 없다는 탄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미 그가 떨기나무 앞에서 부름 받았을 때 하소연한 내용 그대로입니다.

이처럼 본문은 하나님의 찬란한 언약 그리고 이와 명확히 대비되는 싸늘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사실 우리가 하루하루 경험하는 삶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자녀들과 따스한 관계와 사귐을 이루시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장 직면하는 것은 내 처절한 한계와 주위 사람들의 냉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한계를 넘어 마침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당신의 방법으로 이루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몸소 열어가시는 놀라운 구원의 여정을 기대와 소망으로 걸어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
구원의 주 하나님
하나님께서 맺으시는 위대하고 놀라운 언약을 바라봅니다. 저희의 신음에 귀 기울이시고, 사랑의 관계를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거칠고 어둡기만 합니다. 분노에 가득찬 이스라엘과 폭압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파라오를 마주하고는 합니다. 이 모든 고난을 거쳐 주님께서 앞서 나아가시며 이루시는 구원을 믿고 기대합니다. 오늘 하루도 권능의 손길을 붙잡고 맡겨진 사명을 잠잠히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2월 4일 수요일

출애굽기 5장 “파라오의 질서를 넘어”

2026년 2월 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출애굽기 5장 “파라오의 질서를 넘어” 찬송가 321, 322장

마침내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 앞으로 나아갑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광야에서 예배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파라오는 당연히 거절 하였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합니다.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왕이면서 동시에 신 입니다. 그의 앞에 노예들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뜬금없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신, 야훼를 거론하며 예배하도록 풀어달라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을 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시 이집트의 주요 국가 건축 사업의 노동력입니다. 그들이 일을 멈춘다면 국가 경제는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파라오는 이런 상황 속에서 엄중한 대응으로 권위와 기강을 세우려 하였습니다. 노동 감독관들과 현장 책임자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편의를 배제하면서도 이전과 동일한 숫자로 벽돌을 만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집트 관리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라오의 지시를 전달합니다. 노동 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세졌습니다. 짚을 스스로 구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전과 같은 양의 생산 목표치를 달성해야 합니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현장 책임을 맡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파라오에게 간청합니다. 왜 이렇게 가혹한 명령을 내리셨는 지 이유를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에게 들은 불쾌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야훼께 예배 하도록 풀어달라는 요구를 들려줍니다. 그러면서 이집트 관리들에게 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평가를 반복합니다. 바로 ‘게으름’입니다. 파라오는 그들이 나태해져서 그런 얼토당토 않는 무례한 요구를 감히 자신에게 했다며 언짢은 기분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물러서지 않고 앞서 내린 노동 조건과 강도를 그대로 이행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노동 책임자들은 너무나 무거운 마음으로 왕궁에서 물러 나왔습니다. 마침 그들 앞에 모세와 아론이 서 있었습니다. 두 사람을 향해 거침없이 쏘아 붙이며 말 합니다. 21절 함께 읽겠습니다.

21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스라엘 책임자들이 격분하며 말합니다. 모세와 아론 때문에 파라오를 비롯한 이집트 권력자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가혹한 상황에 이르러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사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그들의 처지여도 당연히 두 사람이 원망스러울 겁니다. 멀리 깊이 생각할 여유 없이 당장 처한 현실의 어려움에 괴로워할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을 추가합니다. 모세와 아론의 행동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야훼께서 살피고 판단하시기 원한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신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두 사람의 행동을 두고 벌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게 아닙니다. 조상들로부터 전해 받은 야훼를 여전히 경배합니다. 그런데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파라오의 뜻을 따릅니다. 이집트의 질서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하였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장면입니다. 동시에 우리를 엄숙하게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알게모르게 이 시대의 파라오를 경배하며 이집트의 논리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불쾌하게 하는 사건에,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상황에 잠잠히 호흡을 다듬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러했듯이, 우리의 감정과 이익에 철저히 벗어나는 순간이 오히려 우리를 참으로 살리는 구원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파라오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을 더욱 신뢰하고 동참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
권능의 주 하나님
삶의 시련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만 정작 파라오의 뜻에 충실했던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발견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욕망을 신앙으로 포장했던 잘못을 뉘우칩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다스림을 마음에 품고 이루고 전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안용성, <<로마서와 하나님 나라>>

2026년 2월 3일 화요일

출애굽기 4장 “살피시는 창조주”

2026년 2월 4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출애굽기 4장 “살피시는 창조주” 찬송가 382, 383장

어제 읽은 출애굽기 3장은 쓸쓸하게 장인의 양을 치고 있는 모세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백성에게 전할 당신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되어갈 자”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당신을 통해 환하게 열릴 미래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모세는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낼 사명을 거부하였습니다. 특히나 백성들에 대한 염려를 드러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백성들이 그를 믿게 할 이적 세 가지를 보여주십니다. 우선 목자로서 사용하는 도구인 지팡이를 땅에 던져 뱀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뱀의 꼬리를 잡자 도로 지팡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어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어보니 악성 피부병에 걸려 손이 하얗게 되었습니다. 다시 손을 품에 넣자 본래대로 손이 나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일 강 물을 퍼다가 땅에 부으면 피로 변할 거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를 덮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불신했습니다. 지난날 그가 받은 상처의 깊이를 알려주는 모습입니다. 동시에 자기 자신을 미워하였습니다. 수많은 백성을 이끌기에는,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언변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고 토로합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12절 함께 읽겠습니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모세의 뿌리 깊은 열등감과 공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창조주라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모습과 상태를 주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그러한 창조의 능력을 모세를 향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다. 모세가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함께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물러섰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화를 내시며 그의 형 아론과 동행을 말씀 하셨습니다.

결국 모세는 사명을 받아들입니다. 장인 어른께 인사를 나누고 가족을 나귀에 태우고 이집트로 돌아갑니다. 그의 손에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 있습니다. 원래는 가축을 돌보던 노동 도구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평범한 일상의 상징을 능력의 통로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지극히 뻔한 삶에 창조의 숨결을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마침내 이집트에 도착한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았습니다. 모세가 주님께 들은 말씀을 전하고 이적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반응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31절 함께 읽겠습니다. 

31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모세 그토록 우려했던 상황과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모세는 백성의 불신을 예상했습니다. 물론 틀린 건 아닙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 여정 내내 모세를 어렵게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양면이 있습니다. 모세와 처음으로 대면한 백성의 첫 번재 반응은 ‘믿음’과 ‘경배’였습니다. 모세가 전한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그 근거를 주목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으시고 고난을 살피신 행동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따뜻하게 다가오시고,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과 눈물을 살피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에 자녀들이 짊어진 한계와 약점 또한 너무나 잘 아십니다. 권능으로 새롭게 일으켜 세우십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건네시는 창조의 손길을 붙잡고 힘차게 일어나 나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
창조의 주 하나님
이집트로 돌아가 백성을 구할 사명을 연거푸 거부하는 모세에게서 저희의 약함을 발견합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창조의 능력을 더욱 온전히 바라고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저희 삶 깊숙이 찾아오시어 고통의 눈물을 살피실 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저마다의 이집트에서 벗어나 구원의 여정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와 지혜를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6년 2월 2일 월요일

출애굽기 3장 “되어가시는 하나님”

2026년 2월 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출애굽기 3장 “되어가시는 하나님” 찬송가 320, 321장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날도 그는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습니다. 발걸음은 무심결에 광야 서쪽,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향했습니다. 이 장면을 묘사하는 성경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모세가)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출 3:1)라고 기록합니다. 모세는 평소 하던 데로 자신이 가축을 몰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세가 아닌 하나님이 그를 인도하여 당신께로 오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오랜 침묵을 깨고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만남은 신비로운 장면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모세는 불붙은 떨기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나무가 불에 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영롱한 불꽃을 계속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 불빛이 모세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가 정말 가야 할 곳으로 발길을 잡아 당겼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노예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그의 마음이 과연 어떠했을까요? 무척 황당했을 겁니다. 혈기 왕성하고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젊은 날, 그가 이미 시도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그는 고통받는 동족을 구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하였습니다. 파라오를 피해 도망쳐 광야로 떠났습니다.

이후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새 무기력한 80세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세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 와서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 백성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헛헛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도무지 따를 수 없었습니다. ‘가라!’고 명하시는 하나님과 ‘못 갑니다.’라고 거부하는 모세 사이의 실랑이가 이어집니다. 그 가운데 불쑥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묻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순히 몇 글자로 이루어진 명칭이 아니라 그 이름에 담긴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주님의 인격을 마주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본문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알려주셨습니다. 해당 구약 원문은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입니다. 쉽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미래’ 의미로, “나는 있는 자로 있을 것이다” 혹은 “나는 있을 자이다.”라는 뜻입니다. “되어 가시는 주님”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 안에 적극적인 구원 의지와 계획을 담으셨습니다. 그 이름이 모세를 일으켰습니다. 마침내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되어가시는 하나님’과 마주하고 그 이름을 부르며 모세는 자기 자신과 직면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지난날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그 처절한 좌절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결코 인생의 낙오자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동적인 미래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활짝 열린 앞날을 제시해 주십니다. 그 절정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연약한 인간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길로 하나님께서 나아가셨습니다. 참 하나님께서 참 인간이 되시어 고난 당하고 죽임 당하셨습니다. 그 죽음을 이기고 일어나 온 세상을 구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권능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미래로 과거의 아픔과 오늘의 한계를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모세를 찾아오시고 일꾼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가장 합당한 사명을 맡기시고 동행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
되어가시는 주 하나님
초라한 일상 가운데 지친 발걸음으로 양 떼를 이끌던 모세에게 먼저 찾아와 알려주신 거룩한 이름을 마음 깊이 품어봅니다. 주님께서 스스로 우리를 위해, 앞으로 영원히 하나님이 되어 가시리라 약속하신 위대한 은혜를 바라봅니다. 그 이름 그대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루셨음을 믿습니다.
그 믿음 따라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삶 가운데 엄습하는 그 어떤 시련 앞에 좌절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나아가도록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