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31일 금요일

요한복음 7장 14~24절 "말씀을 익히는 이유"

2020년 1월 28일,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요한복음 7장 14~24절 "말씀을 익히는 이유"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의 발달로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온라인에서 각종 설교와 성경 강의를 편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중 상당수는 엉터리입니다. 지극히 기본적인 신학적 사실을 무시하거나 왜곡하며 궤변을 늘어놓는 경우를 적지 않게 발견합게 됩니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은 배움의 기회는 넘쳐나지만 정작 진정한 스승으로부터 참된 가르침을 얻기는 힘든 시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생의 유일한 스승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당신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그 시대 사람들, 특별히 지식을 독점하며 권위를 휘둘렀던 사람들과 어떤 팽팽한 긴장을 벌였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14절에 따르면 명절 중간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셔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명절’은 요한복음 7장 2절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유대인의 3대 명절 중 하나인 ‘초막절’을 가리킵니다. 이 때 지중해 지역에 흩어졌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렇게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던 명절의 중간에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은 당연히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행동입니다.

중요한 점은 그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입니다. 바로 15절에 확인할 수 있듯이 그것은 ‘놀라움’입니다. 15절은 그 이유도 함께 소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배우지 않았음에도 글을 아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문맹률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한글이라는 과학적인 문자와 높은 교육열 덕분에 글자를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의 비율, 즉 ‘문맹률’이 2% 이하로 전 세계적으로 매우 적은 편에 속합니다. 그런 우리 사회에서 문장을 적고 책을 읽을 줄 아는 것은 지극히 기초적인 지식 활동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고대사회는 정반대입니다. 그 때 문맹률을 약 95%로 추정합니다. 그 시대 백성들의 절대 다수는 글자를 사용할 줄 몰랐습니다. 따라서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굉장한 엘리트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성전에서 율법 두루마리를 펼치며 거침없이 말씀을 풀어내셨습니다. 그렇다면 15절에 기록된 유대인들의 놀라움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모세 오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의문과 도전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때 성전에서의 분위기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정통 율법 교육을 받고 그것을 해석할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받은 서기관들과 제사장로서는 웬 갈릴리 출신 시골 청년이 자기 멋대로 토라에 대해 떠들어 대는 모습이 탐탁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날선 신경전과 긴장감이 펼쳐졌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6~18절 석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어디에서 글을 배웠는지, 지금 펼치는 율법 해석의 근거는 당시 권위 있는 어떤 선생님인지 구구절절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너무나 명백한 근거를 거침없이 제시합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 시절 소위 정통 랍비 교육을 받은 종교 엘리트의 눈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근본 없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놓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가르치는 말씀의 토대인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거짓된 가르침과 구분되는 참된 가르침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행하는 지의 여부입니다. 

이런 기준에 따라 주님은 당신 앞에 모인 무리들을 향해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군중들에 의해 살해당할 뻔한 아찔한 상황을 언급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소 어색한 본문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 읽은 이 단락이 요한복음 5장과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는 마침 우리가 2주 전 주일 예배 때 읽은 베데스다 연못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려 38년 동안이나 비참한 병자생활을 하던 사람이 놀라운 치유를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기는커녕 그 날이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도리어 예수님께 몰려가 박해를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람을 참으로 회복하기 위해 안식일을 정하신 하나님의 참된 뜻보다는 안식일에 대한 지극히 비본질적인 규칙들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즉, 당시 유대인들은 말씀을 사랑한다며 열정을 불태웠지만 정작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서 한참을 벗어난 심각한 왜곡과 모순에 빠져 있었습니다.

본문 22~24절에서 주님은 그러한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다시금 폭로합니다.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법을 주었다. - 사실, 할례는 모세에게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조상들에게서 비롯한 것이다. - 이 때문에 너희는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준다. 23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데, 내가 안식일에 한 사람의 몸 전체를 성하게 해주었다고 해서, 너희가 어찌하여 나에게 분개하느냐? 24 겉모양으로 심판하지 말고, 공정한 심판을 내려라.

레위기 12장 3절에 따르면 남자아이는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행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안식일에 할례를 시행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 안식일에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일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시 완고한 규칙을 어기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몸을 상하게 하는 할례는 안식일에 서슴없이 행하면서 왜 한 사람의 몸 전체를 회복하게 하는 일에는 분노 했는지를 예수님은 따져 물었습니다.

비록 할례라는 율법 의식이긴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몸의 일부에 상처를 입히는 것보다 기나긴 질병의 고통에서 구해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진리입니다. 그것은 복잡한 종교 언어와 논리로 따지기 이전에 이미 상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탐욕을 하나님의 뜻으로 고집하기 마련입니다. 그 결과 거짓에 눈과 귀가 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반역하는 끔찍한 결과에 빠져들었다는 것이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엄중하게 주는 경고입니다.

설교를 시작하며 이 시대는 지식과 교사는 넘쳐나지만 지혜와 스승은 찾기 힘들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것은 안타깝게도 성경을 통해 복음을 알아가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 이 시간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분명히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을 펼치는 이유는 성경 지식을 자랑하거나 권위를 훔쳐서 다른 누군가에게 과시하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순간 성경책은 도리어 악의 도구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수없이 확인하게 됩니다.

그 대신 성경을 공부하고 깊이 묵상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성경은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 되어 우리의 삶과 일상 속에 아름다운 결실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향기로운 진리의 열매를 풍성히 경험하는 모두가 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참 생명과 진리의 주인이신 하나님
우리에게 성경이라는 가장 위대한 선물을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어리석은 욕망을 따라 말씀을 이용하고 왜곡시키려는 죄악을 물리치기 원합니다. 그 대신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달아 알고 그것을 삶 속에 실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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