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1일 월요일

[서평] 한자(기원과 그 배경) - 시라카와 시즈카

시라카와 시즈카 <한자 - 기원과 그 배경>(서울: AK, 2017) 서평

작년 가을 한자 공부를 결심했다.
글자를 기계적으로 외우고 싶지는 않았다.
한자의 '의미' 또한 알고자 이 책도 함께 샀다.
올해 들어 손 놓고 있다가 어제 밤에 마저 읽었다.

이 책은 한문학의 세계적 거장인 저자가 지은 유일한 대중서다.
하지만 이 안에는 저자의 진지한 학문 자세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한 태도가 내게는 내용보다 훨씬 더 흥미로웠다.

기존, 한문 연구에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고전은 중국 후한의 유학자 허신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다.
가장 오래된 부수별 자전인 이 책은 각 한자의 본래 뜻과 구조를 해석하여 서술하였다.
서기 100년부터 시작해 21년 만에 완성한 역작이다.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하는 유의미한 기록이다.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한자의 원형인 은나라 갑골문자를 모르고 한 해석이다.

저자는 설문해자 때보다 천년을 앞서는 갑골문을 치밀하게 연구하였다.
특별히 그 안에 담긴 한자의 제의적 특성을 정리하였다.
그 결과, 허신의 오류를 치밀하게 논박하며 한자의 근원적 성격을 알려주었다.

이는 성경 해석에서도 매우 의미심장한 교훈을 준다.
내 짧은 견해로 근본주의 개신교 신학의 가장 큰 맹점은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지나친 권위 부여다.
물론 험난한 시대적 모순을 뚫고 진리를 지켜내었던 그들의 몸부림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들의 저작은 여전히 읽고 연구해야 할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개혁자들의 신학을 절대화하여 그것을 기준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마치, 주 후 1세기의 허신이 자기보다 천 년 전에 존재했던 은나라 갑골문자를 몰랐듯이 16~17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오늘날 우리보다 훨씬 더 성경 시대의 역사와 문화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해석의 근원적인 토대는 후대 막강한 권위를 가진 신학적 사변이 아니다.
성경이 처음 기록되고 전승되고 완성되고 읽혔던 당시 사람들의 삶과 정신이다.
고대 서아시아의 문헌, 그리고 로마 시대의 사회사를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그러한 연구에도 한계가 있다.
애초에 성경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근원'을 향한 일관된 탐구가 그 어떤 신학적 노력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막연한 짐작에 근거한 매끈하고 감동적인 해설이 아닌, 옛 세계의 투박한 정서와 맞닿은 평범한 해석이 쉽게 멈추지 않는 묵직한 울림을 안겨준다.

서평을 흉내낸 잡설을 늘어놓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다.
무려 6년이나 걸려 분에 넘치게 구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서아시아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다.

이렇듯 시라카와 시즈카의 <한자>는 한문뿐만 아니라 옛 문자를 다루는 모든 학문에 유의미한 성찰을 주는 책이다.
그의 다른 책들도 기회 되는 데로 찾아 읽고 싶다.
그리고 저자를 조금이라도 닮고 흉내 내며 성경을 진득하게 공부하고 싶다.



도서 정보
http://aladin.kr/p/dUl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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