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수세주일, 2016년 1월 10일, 부산진교회 청년예배 설교, 정대진 목사
누가복음 3장 15-17, 21-22절 "하늘이 열리는 길"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저는 20대 중반까지 모태솔로 생활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오랜 외로운 시간을 보냈던 저에게 “여자친구”라는 존재는 전혀 실체를 접할 수 없었던 미지의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간절히 기다리며 꼭 마주하길 무척 바랐던 인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아마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은 저의 20대처럼 외로움을 느끼며 이 추운 겨울 곁에 있을 연인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누군가는 사랑스런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기도 하며 또 어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을 잘 끌어줄 유능하고 탁월한 리더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분은, 여러분의 필요와 공허함을 채워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욕구를 가진 인간에게 있어 누군가를 그리고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말씀에는 이와 같은 개개인들의 간절한 기다림들이 거대하게 하나로 뭉쳐 한 인물에게로 향해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메시아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은 물론이고 성경 전체를 올바로 깨닫기 위해 반드시 이해해야할 것 중 하나는 성경 말씀이 처음 들려진 사람들의 삶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자리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제국주의”입니다.
우선 이집트 제국에서 수백 년 간 노예 생활을 했고 거기서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후에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각각 아시리아 제국과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 당하고 비참한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복음서의 시대는 바로 로마제국의 철통같은 통치 아래 이스라엘은 신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야훼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신앙은 결코 막연한 관념이 아닙니다. 그들의 멀고 먼 조상들로부터 반복된 제국의 수탈 속에서 한 맺힌 절규 가운데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이 이어지고 발전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정리하여 기록한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역시 그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믿는다면, 성경을 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 안에 담긴 주님의 백성들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제국주의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응시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 메시아가 오셔서 지금 자신들의 목을 조르는 로마제국의 칼과 창을 걷어내길 바랐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시어 굶주림과 결핍에서 벗어나 풍요와 행복을 안기길 소망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나타나 하나님의 선명한 임재와 권능을 보여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대 권력층에 대한 주저 없는 질타와 엄격한 금욕 생활로 이스라엘 민중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조상들로부터 오랜 시간 동안 그토록 기다려 왔던 메시아가 바로 요한이 아닌지 조심스레 짐작하며 서로 떨리는 눈빛을 주고받았습니다.
요한은 그렇게 자신을 둘러싼 가난하고 짓눌린 이들의 마음 깊은 곳의 요동침을 즉각 눈치 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그는 모든 사람들 앞에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오. 그는 자기의 타작 마당을 깨끗이 하려고, 손에 키를 들었으니,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오." (16-17절, 새번역 성경)
이런 그의 외침은 이렇게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가 아니다. 나는 나다.”입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기대와 욕망을 교묘하게 이기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메시아가 누군가?’ 하는 사람들의 혼란을 의도적으로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자신은 분명히 메시아가 아니고 그와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다만 그 분을 섬기고 돕는 자라는 근본적인 “관계의 진리”를 분명하게 공개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세례자 요한의 말과 태도는 그와 동일하게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며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성찰을 안겨 줍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주님을 주님의 자리로 모시며 우리는 거기에서 빗겨 서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고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를 전한다고는 하지만, 실상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는 어리석은 모습들을 종종 발견하곤 합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대신 차지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야할 찬양을 가로 채려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마주할 때 해야할 일은 그 분을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그 분 신발끈을 붙잡고 엎드리는 일입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발로 짓누르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우리를 붙잡고 일으켜 주시어 당신의 빛과 영광에 함께 하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참으로 회복되고 세워지는 길이라는 진리를 항상 기억 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본문 속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통해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며 진정한 나, 가장 나다운 나로 살아가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불연 듯, 흥미롭게 제 머릿속을 지나간 심리학 용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메시아 콤플렉스”입니다.
아마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간략히 정의 하자면, 무조건 남을 도와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완벽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는 망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저는 안타깝게도 이러한 ‘메시아 콤플렉스’를 저 자신을 비롯한 기독교인들에게서 많이 발견하곤 합니다. 물론 기독교 신앙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 특별히 약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손을 뻗게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섬김을 위해 때때로 우리가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온전하고 깨끗하게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은 ‘예수님이 되어’ 살아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중요한 차이를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결코 완벽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메시아로 살아가는 과도한 짐을 지우지 않으십니다. 다만 ‘내가’ 되어 살아가길 바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청년의 때에 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가장 나답게, 내가 되어 살아가는 연습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걸음은 세례자 요한이 그러하였듯이 우리 모두는 메시아가 아닌 메시아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깨닫는 일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요한에게 그러하셨듯이 우리를 이 시대를 밝게 비추는 일꾼으로 세워주십니다.
이것은 두 사람의 단순한 만남이 아닙니다. 한 아기로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은 30년 동안, 평범한 청년으로 지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이제 당신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많은 이들 앞에서 본격적으로, 공개적으로 시작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을 알리는 의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세례 받는 것을 선택 하셨습니다.
대부분 잘 모르시겠지만 지난 1월 6일은 교회 절기 중 하나인 “주현절”입니다. 이날은 한자 뜻 그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심을 기념하는 날이고 주현절에서 나중에 발전되어 독립한 교회력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때문에 러시아와 그리스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정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킵니다.
따라서 비록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지만 “주현절”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이 날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고 숨어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직접 나타난 분이심을 더욱 믿고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러한 주현절이 지나고 맞이하는 첫 번째 주일을 “주님의 수세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방금 전에서 말씀 드렸듯이 예수님께서는 세례 받으심으로 당신의 공적인 삶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처럼 주님께서 구태여 세례를 받으신 주님의 의도와 뜻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이 시대 요한이 베푼 세례의 의미를 곱씹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장로교 전통에 따라 물을 머리에 얹는 방식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요단강에서 집례한 세례는 우리가 흔히 “침례”라고 부르는 것으로 강물에 몸을 완전히 담궜다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요한의 세례를 얼핏, 낭만적으로만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고대 중동에서 강물과 바다와 같은 “큰 물”이 상징하는 바는 곧, 하늘과 대비되는 어둠과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배를 만들고 바다를 항해하는 기술이 오늘날과 달리 지극히 미진했던 먼 옛날 사람들의 눈으로 큰 물결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도의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현대에도 바다에서 안타까운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물며 바닷길, 강물 길 외에 선택할 다른 교통로가 지극히 적은 그들이 오늘 우리의 기준에 조악한 배를 타고 큰물을 지나야 했습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대하게 넘실거리는 물결에 깊은 두려움에 떨고 또 수많은 목숨을 잃었겠습니까?
따라서 그 시대 사람들이 ‘큰 물’에 대해 갖는 어두운 정서는 오늘날 우리가 갖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따라서 고대 중동의 대부분의 신화에서 바다 혹은 큰 강은 죽음을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바로 그 강물에서 예수님께서, 그것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빌려 완전히 잠겼다가 일어 나셨습니다.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며 철저한 죽음과 살아남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온 세계를 향한 구원의 첫걸음을 떼셨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증거 하실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이 공허하게 응시하는 허공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 메시아를 고대하며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그을린 욕망과 결합되어 어느 순간부터 참된 메시아의 모습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하늘 자체에만 고정되어 있었을 뿐 하늘 너머를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열광했던 군중들이 불과 얼마 시간이 지나 저주하며 돌을 던진 근본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의 뒤틀린 눈길을 바로 잡으시려,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하나님 나라를 올바로 깨우치시려, 기꺼이 스스로를 낮추시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신 예수님의 머리 위로 놀랍게도 하늘이 열렸고 주님을 향해 성령님께서 비둘기와 같은 모습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로부터는 이런 말씀이 울려 퍼졌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 14-16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14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16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새번역 성경)
신구약 성경이 일관되게 말씀하는 것은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서 창조한 어떤 대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받는 아들, 딸이라는 복음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통한, 우리를 향한 말도 안 되는 사랑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로 그 주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울려 퍼진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만이 아닌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향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에 진실로 보답하는 길은, 참으로 주님의 기쁨을 전하는 길은, 세례 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의 삶으로 이어가는 것에 있음을 늘 마음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루하루 맞이하는 넘실거리는 두려움과 염려 가운데 무작정 무릎을 꿇지 마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승리의 하나님께서 우리 앞의 모든 어둡고 큰 물을 이기십니다.
따라서 여러분 개인은 물론이고 주변과 이 사회를 삼키려는 여러 모양의 절망과 죽음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져 맞서길 바랍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부활로 이끄신 하나님께서 그 어떤 고난과 어둠 속에서도 반드시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어떤 사막 길 속에서도 하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하늘이 열리는 길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님을 명심 하시길 바랍니다.
하늘이 아닌, 거기로부터 땅 아래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을 따라 짙은 죽음과 맞서는 바로 그곳에 하늘이 열리는 길이 움터 오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알리시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셨습니다. 그 주님과 하루하루 동행하며, 우리를 통해 이 땅에 완성하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간절히 기다리는 모두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우리를 위해 세례 받으시려 요단강을 향해 나아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말씀을 통해 다시금 마주합니다. 직접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신 주님의 섬김과 낮아짐을 본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로 그 곳에,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기쁨이 선포되는 하늘이 열리는 길이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로 거기로부터, 온 세계를 참으로 구원하는 하나님의 생명이 시작됨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물 위로 건지시고자 어둔 물결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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