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7일 수요일

디모데전서 6장 11~16절, “너, 하나님의 사람아”

2022년 12월 7일, 포항제일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디모데전서 6장 11~16절, “너, 하나님의 사람아”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먼저 시 한 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 디트리히 본 회퍼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명랑하고 확고한지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간수들과 대화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사근사근하고 밝은지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불행한 나날을 견디는 내 모습이
어찌나 한결같고 벙글거리고 당당한지
늘 승리하는 사람 같다는데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나
목 졸린 사람처럼 숨을 쉬려고 버둥거리는 나

빛깔과 꽃, 새소리에 주리고
따스한 말과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
방자함과 사소한 모욕에도 치를 떠는 나
좋은 일을 학수고대하며 서성거리는 나
멀리 있는 벗의 신변을 무력하게 걱정하는 나
기도에도, 생각에도, 일에도 지쳐 멍한 나
풀이 죽어 작별을 준비하는 나인데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나인가? 저것이 나인가?
둘 다인가?
사람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자신 앞에선 천박하게 우는소리 잘하는 겁쟁이인가?
내 속에 남아있는 것은
이미 거둔 승리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패잔병 같은가?
 
나는 누구인가?
으스스한 물음이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

출처: 김순현 옮김 <디트리히 본 회퍼>(복있는사람)  

이 시를 이미 한 두 번 쯤은 읽어 보셨을 겁니다. 한 때 유행처럼 널리 알려져서 어쩌면 식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설교 준비를 위해 다시 소리내어 읽으며 새삼 가슴이 먹먹해 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올바른 자기 정체성은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나’, 혹은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닌 “하나님의 소유”임을 새삼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인생을 헤쳐갑니다. 하지만 정작 “나”라는, 그 배의 뚜렷한 실체를 잘 모릅니다. 그저 막막함과 불안함을 가지고 항해를 이어 나갑니다. 때문에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내 안 숨거나 나에게 속으며” 살아갈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를 묻는 것 못지않게, “내가 누구인지?”를 쉬지 않고 질문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입니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깨닫고 내면 깊이 간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며, 그 끝 무렵에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유념해야할 점은 이러한 호칭을 듣는 디모데가 주님을 모르는 불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는 바울의 뒤를 이어 에베소 교회를 섬겼던 신실한 목회자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디모데가 이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울이 엄숙하게 강조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이것은 “거듭 들어야할”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진리를 항상 마음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너무나 뻔하게 들릴지라도 이 복음 안에 담긴 놀라운 은혜를 끊임없이 명심해야 합니다. 여기에 진정한 정체성이 있습니다. 존재 근원이 주님께 있음을 온전히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당신의 소유가 되도록 자기 생명을 모두 내 던지며, 예수님이 안겨주신 사랑의 무게를 묵직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지금 처한 상황과 겉모습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 모두와 상관없이 내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날마다 변함없이 고백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 귀중한 정체성에 담긴 막중한 소명을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 성도는 온 우주 가운데 유일하게 찬양 받으실, 진정한 왕이자 영광의 주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다른 힘과 권력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헛되고 헛된 “성공과 풍요의 사람”이 아닙니다. “인기와 명예의 사람”도 아닙니다. 온 세상을 구하시려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 십자가의 처절한 실패와 절망을 부활 생명과 희망으로 바꾸신 하나님. 당신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가시는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를 향해,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단호하게 당부합니다. 11~12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이 말씀을 “피하라” 그리고 “취하라”, 이 두 개의 동사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먼저 “피하는” 사람들입니다. 정확히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그 대상을 본문 바로 앞에 있는 3~10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10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지켜야할 첫 번째 부르심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을 사랑하는 것을 피하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가난 자체를 결코 아름답게 포장할 수 없습니다. 가난은 분명히 잔인한 고통입니다. 따라서 정당한 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삶을 누리는 것은, 분명 귀하고 선한 일입니다.

대신, “돈을 사랑하고 추종하는 것”을 엄중히 경계해야 합니다. 설령 아무리 많은 헌금과 기부를 한다 할지라도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하나님 대신 돈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그 누구보다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많은 돈을 움켜쥐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짓밟으며, 심지어 신앙마저도 이용하려 한다면, 그것은 다른 그 무엇보다 돈을 따르는 삶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지나치게 소유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나누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은 자기 손에 돈을 들고 있으면서도 그 돈에 이끌리지 않고 살아가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돈 뿐만이 아닙니다. 돈은 탐욕을 대표하는 상징일 뿐입니다. 세상에는 권력과 명예를 비롯해 우리를 유혹하고 굴복시키려는 죄악이 흘러넘칩니다. 그 모두를 단호히 물리치는 것은 무척 힘든 결단을 요구합니다. 본문 12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것은 곧, “믿음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두 번째 명령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영생을 취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생’은 흔히 오해 하듯이, 단순히 무한하게 긴 생명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풍성한 생명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새로운 세대에 속한 참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영생을 취한다.”는 것은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진정한 부활 생명을 붙잡고 살아감을 뜻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과 함께 호흡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본을 보이신대로, 이 세상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관련해서 소개하고 싶은 영화 속 한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 대부 3편입니다. 주인공은 악명 높은 마피아 보스입니다. 그는 고위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가톨릭 대주교까지 포함한 비리 문제에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신부 람베르토에게 고뇌를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람베르토 신부가 그를 데리고 작은 분수로 이동합니다. 그 안에 잠겨 있던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돌을 보십시오. 아주 오랜 시간 물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이 전혀 그 안에 스며들지 않았습니다.”
Look at this stone. It has been lying in the water for a very long time, but the water has not penetrated it.

그런 다음, 돌멩이를 깨뜨려 그 속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이 안이) 완전히 말라있습니다. 같은 일이 유럽 사람들에게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세기 동안 그들은 기독교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파고들어 그들 안에 호흡하지 않았습니다.”
Look. Perfectly dry. The same thing has happened to men in Europe. For centuries they have been surrounded by Christianity, but Christ has not penetrated. Christ doesn't breathe within them.

영화 “대부”시리즈에서 가톨릭 성례전은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속한 이탈리아계 마피아는 적어도 공식적이고 외부적으로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들은 살인을 비롯한 온갖 범죄를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비록 그들은 기독교에 둘러싸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돈과 힘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 결과, 영생 복음을 자신들 안에 깊숙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잠시 화면을 멈추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습니다. 깊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극단적인 예지만, 욕망으로 가득한 제 삶이 그들과 본질적으로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제 마음에 떠 오른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앞서 설교를 시작하며 들려드린 시를 지은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님입니다. 그는 무려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교수 자격 취득한 천재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편안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독일은 아돌프 히틀러를 메시아처럼 여기며 숭배했습니다. 심지어 교회역시 악행에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본 회퍼는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서슴없이 히틀러를 비판했습니다. 미국에서 안전하게 피신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끝까지 고난을 함께 겪었습니다. 그러다 사형 당하기 불과 몇 달 전 감옥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이라는 위대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탐욕을 피하고 영생을 취한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담긴 참 생명의 진리를 온 마음 다해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본 회퍼는 어둡고 어둡던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만이 밝힐 수 있는 영롱한 빛을 온 땅에 드러내 보여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복음이 지닌 희망을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절망을 딛고 일어나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그를 통해 다시금 발견하였습니다.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회가 본 회퍼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순교자로 기억하며 진심으로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무 거창하게 듣지 마시길 바랍니다. 본 회퍼 같은 위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친 비장함이 독이 되기도 합니다. 대신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의미를 말씀 가운데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받은 소명의 깊이를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단순히 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기독교라는 제도 종교의 힘을 늘려서 권력을 휘두르게 하려고 죄인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고 당신의 진정한 능력과 영광을 바라보길 원하십니다. 비록 소박하지만 의연한 일상의 헌신을 통해 주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넓혀 가도록, 당신의 자녀들을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사랑하는 포항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단지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 혹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기 보다 오늘날, 주님께서 찾으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위대한 소유격의 사랑 안에 온 마음 다해 안기시길 바랍니다. 그 정체성 가운데 참된 헌신을 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그 선한 싸움에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고 끝내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우리를 소유하셨습니다. 그렇게 참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진정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하며 축원합니다.


설교 후 기도
능력과 영광의 주 하나님
오직 주님만이 우리가 섬기고 따를 진정한 왕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오랜 시간 복음의 샘물 안에 잠겨 살았지만 정작 그 물결을 내면깊이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던 어리석은 욕망을 회개합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참된 부활 생명으로 호흡하길 원합니다. 교만과 탐욕을 멀리하여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온전히 소유하시려,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