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6일 목요일

『묵자』(을유문화사, 2019) 서평

『묵자』(을유문화사, 2019) 서평

2년을 조금 넘겨 마침내 묵자 독서를 마쳤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을 거다. 묵자는 교과서를 통해 만난 인물이다. 그의 핵심 주장을 묻는 문제에 ‘겸애’(兼愛)라고 답을 적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만난 그의 가르침은 이를 훨씬 넘어선다. 예수님의 복음과 비슷해 보여 흥미를 끄는 ‘사랑’은 묵자의 광대한 사상 일부이다. 엄밀히 말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배경에서 다른 의미로 사랑을 외쳤다. 묵자는 1세기 서아시아가 아닌 춘추전국시대 중국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당연하게도 같은 시기 활약한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 등과 많은 내용을 공유한다.

묵자는 거친 혼란 한복판에서 무엇이 진정한 이로움인지를 묻는다. 즉, 참으로 이기고 성취하고 번영하기 위해 온 백성을 차별 없이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도자가 권위를 내세우고 자기 이익을 앞세우며 폭압을 휘두르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냉정하게 지적한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사랑은 감성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가르침이다.

묵자의 가르침 중에서 두 가지가 흥미로웠다. 우선 그는 ‘인재 등용’을 강조한다. “묵자”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군주가 한 나라를 다스리는 데 그 나라 안의 어진 선비를 아껴 주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마지막 71편에서도 신하들의 기질을 살펴 “명성과 실제가 상응”하도록 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처럼 묵자는 훌륭한 인물을 등용하고 그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을 수미상응을 이루는 책의 시작과 끝은 물론이고 곳곳에서 힘주어 말한다. 

즉, 묵자는 “인사가 만사”라는 보편적인 가르침을 가장 실질적이고 호소력 있게 외친 사상가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지도자 자신의 마음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관련해서 다음 문장에 내게 크게 와 닿았다.

"좋은 인재는 부리기가 어렵지만 군주로 하여금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 때문에 큰 강은 개울물이 자신에게 흘러 들어와 차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니, 커질 수가 있다."
良才難令 然可以致君見尊
是故로 江河 不惡小谷之滿己也 故 能大
제1편 中, 최환 옮김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책의 후반부에서 성을 방어하는 기술을 자세히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도구와 병력 운용 방식 등이 세세하게 상당한 분량으로 언급한다. 이를 통해 묵자의 사상은 세속의 거친 소용돌이에서 한 걸음 벗어난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드러내 준다. 그와 제자들이 참혹한 전장을 누빈 결과다. 전투에 직면해서는 현실적인 방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이 모든 내용을 확인한 후에 묵자가 외친 ‘사랑’이 더욱 묵직하게 마음을 두드리는 걸 느꼈다. 참으로 성을 지키고 승리하기 위해, 공동체 구성원을 차별 없이 보듬고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에게 의견 통일을 숭상하도록 하려는 자가 백성을 사랑하는 데 힘쓰지 않으면, 백성을 부릴 수 없다.
반드시 힘써 백성을 사랑해야만 비로소 그들을 부릴 수 있고, 그들에게 믿음을 나타내어야만 비로소 그들을 도울 수 있으며, 
부귀로써 그들을 앞에서 인도하고 정확한 벌로써 뒤에서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是故 子墨子曰 
凡使民尙同者 愛民不疾 民無可使 
曰 必疾愛而使之 致信而持之
富貴以道其前 明罰以率其後
제13편 中, 최환 옮김

묵자는 치열한 세상 속에서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가 어떻게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아는지를 알려 준 스승이다. 그는 사랑이 무시와 조롱을 당하는 시대에 그럼에도 꿋꿋이 사랑으로 다스려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 주었다.

지금껏 그러했듯이 나에게 동양 고전 읽기는 앞으로 목회를 위한 준비다. 부목회자와 동역하는 담임 목사가 될 경우를 그려본다. 그에게 현실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진실한 사랑을 베푼 담임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그러한 태도를 지켜야 진정 교인들을 사랑한 목회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새로운 포만감을 느끼며 묵자 읽기를 마쳤다. 다른 이들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다음으로 읽을 동양 고전은 묵자와 대척점에 선 “한비자”로 골랐다. 벌써 기대된다. 생각과 마음의 크기가 더욱 커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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