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일 일요일

창세기 28장 10~22절, “인생의 깊은 밤 속에서”

2022년 9월 27일, 화,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창세기 28장 10~22절, “인생의 깊은 밤 속에서”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누구나 인생의 깊은 밤을 경험합니다. 때로 운명은 우리를 어둡고 어두운 수렁 속으로 내 던집니다. 야곱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지금 도망자신세입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가쁜 숨을 내쉬며 외삼촌 집으로 달려가는 중입니다. 이윽고 해가 져물었습니다. 적당히 숨을 곳을 찾아 잠이 들었습니다. 옷가지를 이불 삼아 여며도 냉기가 스멀스멀 감싸옵니다. 베고 누운 돌덩이의 싸늘하고 거친 촉감이 잠을 방해합니다. 어디선가 맹수의 소름끼치는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때, 야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상상의 영역입니다. 자세히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짐작가능합니다. 너무나 두렵습니다. 앞길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온갖 염려가 그의 내면에 엄습합니다. 어쩌면 그의 눈가에 흐른 눈물이 뺨을 타고 돌베개를 축축히 적셨을지 모릅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수없이 돌이켜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의 극적인 출생부터 그의 삶 전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주제를 드러내는 가장 중심적인 인물이 바로 야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창세기는 야곱의 일생을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았습니다. 쌍둥이인 그는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형 에서와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이 사실을 두고 근심한 리브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창세기 25장 23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의미는 분명합니다. 그녀가 낳을 쌍둥이의 인생은 출생순서와 정반대가 될 것입니다.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됩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지는 주님의 다스림이 동생을 통해 계승될 것입니다. 리브가가 유독 에서보다 야곱을 사랑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이 사실을 야곱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형과 달리 그는 어머니와 더 각별하게 지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이 말을 트기 시작할 때부터 그의 출생에 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대화는 야곱의 자의식과 자기 이해에 막중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비록 동생으로 태어났습니다. 형과 달리 건장한 체격이나 활달한 성격을 가지진 못했습니다. 남자임에도 어머니 곁에서 요리를 즐겨하는 조용한 성격은 어쩌면 가부장적인 유목민 문화에서 놀림거리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명 열등감과 비교의식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야곱에게는 묘한 자부심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선택하셨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분명 나에게는 눈부신 앞길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형을 속여 밭죽으로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가로챈 배경에는 이와 같은 야곱의 자기 확신이 있었습니다. 마땅히 자신에게 주어진 거라 믿었습니다. 굳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어머니와 힘을 합쳐 과감하게 행동을 했습니다. 그 결과 태중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약속이 속히,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거라 기대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처량한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깊은 밤 두려움에 사로잡혀 돌베개 위에 엎드려 우는 초라한 자신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일찍이 자신을 향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려 볼 때 더욱더 비참하기만 합니다.

그런 야곱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은 인생의 가장 깊고 깊은 밤을 지날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역설적입니다. 야곱이 주님께 가장 실망한 순간입니다. 원망이 하염없이 솟아오릅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성경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직접 만난 첫 번째 장면이 펼쳐집니다. 주님은 더 이상 할아버지나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들려준 막연한 존재가 아닙니다. 지금 그가 생생히 경험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입니다. 그 주님께서 당신의 목소리로 직접 야곱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13~15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일관되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복은 ‘땅’과 ‘자손’으로 구체화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당신의 복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물론이고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이루어질 것을 거듭 약속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그가 어머니 뱃속에서 받은 약속이 분명 진실임을 명확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더해 야곱, 개인을 향한 눈부신 약속을 하십니다. 바로 ‘함께 하심’입니다. 이것은 이어지는 동사들을 통해 구체화 됩니다. 바로 ‘지키다.’, ‘이끌다.’, ‘떠나지 아니하다.’입니다.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주님께서는 그가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진, 깊은 밤의 현실에 속지 말기 바라셨습니다.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넓고 깊은 은혜를 신뢰하길 원하셨습니다. 그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 주님과 동행함을 믿고 의지하길 바라셨습니다.

그날 밤, 야곱에게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은 망상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야곱의 일생 가운데 신실하게 응답하셨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야곱의 삶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우여곡절을 경험습니다. 특히 가정 안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피로 얼룩진 아들의 채색옷을 부여잡고 통곡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인생 여정을 통해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새롭게 하셨습니다. 지난 날 그는 하나님의 복을 이기적으로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 쟁취하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자신을 향한 특별한 소명을 오만하게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한 돌보심으로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나누고 섬기며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시키는 이스라엘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며 교회를 이루는 우리, 임마누엘 하나님의 임재를 믿고 바라보는 우리는 모두 이 시대의 야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 가운데 더욱더 마음 깊이 새겨야할 진리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 그 어떤 좌절과 절망의 순간에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어디로 가든지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약속하신 복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으십니다. 

누구나 삶의 짙은 밤을 지납니다. 때로 운명은 우리를 질퍽한 늪으로 밀어 넣습니다. 아무도 예외는 없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마음에 품은 사람들은 어느 곳을 지나든지 어둠을 딛고 일어날 힘이 있음을 진심으로 믿고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처절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걸어가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8장 1~9절, "위기 속에 지킬 사명"

2022년 9월 26일,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창세기 28장 1~9절, "위기 속에 지킬 사명"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6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7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9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마지막’이라는 말은 언제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긴장감을 가져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집중하게 합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순간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본문에서 야곱은 아버지 이삭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가정안에 심각한 파국이 벌어졌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에서는 분노에 몸부림쳤습니다.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동생을 향한 살기를 거침없이 드러냈습니다.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에서의 말은 허풍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상처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야곱을 해치고말 것입니다. 사냥으로 단련된 근육질 몸이 그 사실을 더욱더 부각시킵니다. 깨진 형제 관계를 수습하기란 이제 불가능입니다.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야곱을 빨리 도망시켜 그의 목숨을 살리는게 최선입니다.

그렇게 부자지간에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너무나 긴박한 순간입니다. 언제 에서가 칼을 들고 쳐들어 올지 모릅니다.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가장 중요한 말을 해 줄 때입니다. 아들이 어딜 가든지 늘 가슴 깊이 간직할 교훈을 새겨줘야 합니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결혼 이야기를 꺼냅니다. 본문 1~2절 다 함께 읽겠습니다.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이 엄중한 상황에서 야곱이 맞을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얼핏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리 단순한 상황이 아닙니다.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삭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한국 정서에서 더욱더 그러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고도로 개인화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혼을 단지 한 남자와 한 남자, 두 사람만의 결합으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한 가족과 다른 한 가족의 만남입니다. 분명한 현실입니다. 결혼을 통해 두 집안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그런 까닭에 배우자를 만날 때 신중히 고민하고 어른의 의견을 묻게 됩니다.

하물며 이삭이 살았던 아주 먼 옛날, 서아시아 사막지대의 생활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이삭은 한마디로 대가족으로 이루어진 유목민 족장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어느 집안과 결혼하느냐에 따라 가족 전체의 생존 여부가 달라집니다. 더욱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결혼을 통해 종교가 섞이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상대 가문의 우상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따라서 이삭은 야곱에게 거듭 신신당부합니다. 외삼촌의 집에 단지 몸만 피하지 말라고 합니다.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합니다. 사실 이러한 대화가 현대인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엄연히 사촌간의 결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방금 설명드린바와 같이 당시 결혼은 한 집안의 생사를 건 문제입니다. 그런 까닭에 지금의 기준으로 평가하기 곤란합니다. 

이삭이 야곱의 결혼을 두고 유독 힘주어 경고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형, 에서 때문입니다. 관련해서 창세기 27장 46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에서는 단지 순진하고 우둔해서 영악한 동생에게 축복을 뺏긴게 아닙니다. 그는 이미 헷 족속 중에서 아내를 맞았습니다. 결혼이 가지고 있는 막중한 의미를, 에서 또한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기적 욕심을 우선했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부모의 반대를 부릅 쓸 정도로, 헷 족속 출신의 그의 아내가 그의 눈에 무척 예쁘고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심지어 헷 족속에서 여러명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 결과 발생할 문제들에 마음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현실입니다. 역시나 성경이 자세히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리브가의 고통입니다. 그녀는 며느리들 때문에 자신의 삶이 싫어졌다고 말합니다. “삶이 싫어졌다.” 매우 강렬한 표현입니다. 여기서 ‘싫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구약 원문 전체에서도 아홉 번 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가벼운 감정에 대한 묘사가 아닙니다. 마음 깊은 번민과 고뇌를 담고 있습니다. 

장남인 에서가 우상을 따르는 며느리들을 집안에 들여옮으로써 얼마나 힘겨운 상황이 펼쳐졌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합니다. 이제 남은 아들은 야곱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에게 더욱더 결혼에 대한 막중한 책임이 주어집니다. 보다 더 구체적인 이유를 이어지는 이삭의 축복 기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 3~4절 함께 읽겠습니다. 

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이삭은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언급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내용을 다시 되새겨줍니다. 바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여러 족속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얼핏 아브라함을 시조로 한, 특정 민족을 흥왕하게하는 언약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생육’과 ‘번성’은 창세기 1장 28절에서도 등장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첫 사람, ‘아담’에게 주신 명령과 일치합니다. 하나님은 특정 혈족만을 위한 부족신이 결코 아닙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며 마음에 품으신 넓은 뜻을 이 땅에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 뜻을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이어받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삭은 자신의 아들 야곱에게도 축복하며 신신당부합니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다스림을 함께 이루어 참된 복을 일굴 가족을 얻으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야곱은 이 사명을 엄숙히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 전해내려온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의 교훈을 무조건 믿는 사람끼리만 결혼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물론 가능하다면 신앙인끼리 결혼하는게 좀더 유익한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불신자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코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보다 당사자들이 마음 졸이며 아파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경우 이제 막 아브라함의 족보가 시작하기 때문에 특별히 더 결혼을 강조할 뿐입니다. 대신 우리가 명심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아담에서 시작되어 야곱으로 이어지는 사명,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생육하고 번성하는 책임이 우리에게도 동일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의 지극히 작은 일상 속에서 헌신을 이어가야 합니다.

에서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어리석은 탐욕을 우선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나에게 허락한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헤아려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2022년 10월 1일 토요일

오래 만진 슬픔 - 이문재

오래 만진 슬픔

- 이문재

이 슬픔은 오래 만졌다
지갑처럼 가슴에 지니고 다녀
따뜻하기까지 하다
제자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불행 또한 오래되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있어
어떤 때에는 표정이 있는 듯하다
반짝일 때도 있다

손때가 묻으면
낯선 것들 불편한 것들도
남의 것들 멀리 있는 것들도 다 내 것
문밖에 벗어놓은 구두가 내 것이듯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안에 한 자리 차지할 때까지
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출처: 이문재, [혼자의 넓이](창비, 2021)

2022년 9월 24일 토요일

'봄날의 햇살'처럼.



'봄볕'.
군시절 지은 아호(雅號)다.
동토를 녹이고 새싹을 움트게 하는 햇살.
나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반가웠다.

"(너는) 봄날의 햇살 같아"

그때의 다짐을 떠오르게 했다.
이내 무척 부끄러워졌다.








2022년 9월 20일 화요일

장사 해변에서.










대부분 10대 후반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군사 훈련도 충분히 받지 못했다.
72년 전 700여 명의 학도병이 이 바다에 도착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을까?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막연히 알았던 역사다.
무심결에 수없이 지나친 장소다.
그러다 문득, 한 번은 와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잠시나마 이곳을 걷는 것이,
이름 없이 죽어간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몹시 미흡하나마 역사의 성과를 누리는 이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장사 상륙작전(나무위키)
https://han.gl/mcuj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