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4일, 삼덕교회 전도부 경건회, 목사 정대진
사도행전 1장 1~14절 "사도행전으로서의 삶"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
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지난 주에 말씀 드린 대로 매주 목요일 오후 이 시간 전도 나가기에 앞서 사도행전 말씀을 1장부터 전체를 살펴보려 합니다. 사도행전은 교회가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어떻게 역동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공동체의 사명을 감당했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 나의 욕심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품고 생명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대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기본적으로 유념해야할 사실은 결코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 저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시된 말씀, 기록된 말씀을 사람들의 연약한 손을 통하여 남기고 전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사역 가운데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은 그들 중 누가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누가의 저작은 사도행전만 있지 않습니다. 그는 사복음서 중 하나인 누가복음을 앞서 기록하였고 그 뒷이야기를 적은 것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이렇게 그가 적은 두 권의 책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다른 성경들과는 구별되는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 ‘데오빌로’를 향해 보내진 편지라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결코 누가가 책상 앞에만 앉아 쓴 책이 아닙니다. 그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 함께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사도 바울이 겪어야만했던 온갖 환란과 핍박에 함께 했던 사람입니다. 또한 당시 교회가 겪어야 했던 수많은 궁핍과 위협에도 더불어 함께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숱한 고난 가운데서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과 하신 일들을 수집하며 기록하였습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그 옛날에, 그것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위험과 수고를 감수한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이가 몹시 귀한 그 시대에 장문의 편지를 쓴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을 의미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가 경험하였고 교회가 만났던 예수님에 대해 소상히 기록하여 편지로 데오빌로에게 보냈습니다. 또한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성령님의 임재가운데 그분의 제자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교회를 세워갔는지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곁에 있는 저마다의 데오빌로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그들의 사도행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물과 땀을 잉크 삼아 우리의 몸을 펜으로 삼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위에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기록해갈 때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삶을 무의미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수천 년 전 의사 누가에게 그러하였듯이 우리를 오늘날의 사도행전으로 사용하시어 반드시 오늘날의 데오빌로들을 향하여 생명의 은혜를 전하실줄 믿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사도행전으로 나날이 일구어가는 것이 바로 이 시간 사도행전을 펼쳐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첫 번째 바람입니다.
이제 6~11절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읽은 1~5절 말씀은 누가가 자신이 앞서 기록한 누가복음에 대한 요약이고 6절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6절에 보면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매우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뭐라고 물었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인지를 제자들은 묻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질문을 하는 역사적인 배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로마제국의 압제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매정한 대답을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때와 시기, 곧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는 바로 그 날은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것이기에 너희가 알 바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을 하며 겪는 가장 근본적인 고통입니다. 주님의 시간표는 결코 사람의 시간표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신실한 하나님의 시간표를 믿는다면, 그리고 죄인을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빈 무덤을 신뢰한다면 언젠가 찾아올 은혜의 그 날,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때와 시기를 담대히 기다리는 것이 고난의 시간 위를 걸어가는 우리가 가질 바른 마음가짐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8절 말씀을 통하여 제자들이 가져야할 바른 신앙 태도를 당부하십니다.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기에 8절 말씀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오르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성령님의 임재를 강조하십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본질적 사역과 관련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신 후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몸을 입은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분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입니다. 오직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옛날 이 땅위를 거닐었던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으며 그 분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흔히 오해하듯이 성령충만이란 이상한,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을 품고 그 분을 닮아 사랑을 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령충만입니다. 복음전도자로서 이런 성령 충만을 누구보다 간절히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12~14절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분이 하늘위로 들려 올라가시는 것을 똑똑히 목도한 제자들이 취한 행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감람산은 예루살렘 바로 동편에 위치한 산으로서 복음서의 등장한 여러 사건들의 배경이기에 매우 친숙한 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이 산은 연성석회질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동굴을 파기 매우 용이한 지질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덤으로 애용되었습니다. 이는 동시에 잠자리를 얻지 못한 가난한 이들이 불편하게나마 잠을 청하고, 범죄하고 쫓겨 다니는 사람들을 몸을 피하는 곳이 되는 적절한 조건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감람산은 은둔자들의 산,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의 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그 곳에 모여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으로 믿고 따르던 예수님께서 극악한 신성 모독죄와 반역죄로 처형당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처벌 순서는 당연히 자기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음습한 감람산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허나 그들이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나 성령님과 증인된 삶에 대한 약속을 들었을 때, 그리고 하늘 위로 찬란히 오르신 그 분을 보았을 때 샘솟듯 넘치는 희망에 사로잡혀 수많은 이들이 거리를 메우는 예루살렘 도성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자신들을 사로잡기 위해 혈안이 된 이들 속으로 기꺼이 삶을 내어 던졌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세상을 바꾼 위대한 증인으로 살아갔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생명의 진리를 전하는 사람들로서, 내가 바라는 인생의 시간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를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아가는 진정한 성령 충만을 구하고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감싸는 모든 어둠과 억압에서 벗어나 이 시대의 또 다른 ‘사도행전’으로 세상 가운데 용기 있게 나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인간의 어리석은 시간표를 고집하지 말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정한 그 때를 신뢰하며 오늘 우리 안에 이루시는 일들 앞에 겸손히 순종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을 힘입어 담대히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하여주시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 옛날 한 남자의 눈물어린 긴 편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용하셨듯이 우리의 삶이 또 다른 사도행전으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 위로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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