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일 화요일

여호수아 18장 11~28절 "평화를 향한 부르심"

2019년 10월 1일, 화,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여호수아 18장 11~28절 "평화를 향한 부르심"

11 베냐민 자손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제비 뽑은 땅의 경계는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의 중간이라 

12 그들의 북방 경계는 요단에서부터 여리고 북쪽으로 올라가서 서쪽 산지를 넘어서 또 올라가서 벧아웬 황무지에 이르며 
13 또 그 경계가 거기서부터 루스로 나아가서 루스 남쪽에 이르나니 루스는 곧 벧엘이며 또 그 경계가 아다롯 앗달로 내려가서 아래 벧호론 남쪽 산 곁으로 지나고 
14 벧호론 앞 남쪽 산에서부터 서쪽으로 돌아 남쪽으로 향하여 유다 자손의 성읍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에 이르러 끝이 되나니 이는 서쪽 경계며 
15 남쪽 경계는 기럇 여아림 끝에서부터 서쪽으로 나아가 넵도아 물 근원에 이르고 
16 르바임 골짜기 북쪽 힌놈의 아들 골짜기 앞에 있는 산 끝으로 내려가고 또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서 여부스 남쪽에 이르러 엔 로겔로 내려가고 
17 또 북쪽으로 접어들어 엔 세메스로 나아가서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글릴롯으로 나아가서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까지 내려가고 
18 북으로 아라바 맞은편을 지나 아라바로 내려가고 
19 또 북으로 벧 호글라 곁을 지나서 요단 남쪽 끝에 있는 염해의 북쪽 해만이 그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는 남쪽 경계며 
20 동쪽 경계는 요단이니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의 사방 경계였더라 
21 베냐민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성읍들은 여리고와 벧 호글라와 에멕 그시스와 
22 벧 아라바와 스마라임과 벧엘과 
23 아윔과 바라와 오브라와 
24 그발 암모니와 오브니와 게바이니 열두 성읍과 또 그 마을들이며 
25 기브온과 라마와 브에롯과 
26 미스베와 그비라와 모사와 
27 레겜과 이르브엘과 다랄라와 
28 셀라와 엘렙과 여부스 곧 예루살렘과 기부앗과 기럇이니 열네 성읍이요 또 그 마을들이라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었더라


어제 읽은 여호수아 18장 1~10절 말씀은 새롭게 펼쳐지는 가나안 토지분배의 서론입니다. 이스라엘의 양대 지파인 유다와 요셉 지파와 이미 요단강 동쪽 땅을 받기로 한 세 지파, 그리고 다른 지파와는 달리 하나님의 일을 전업으로 하여 땅을 받지 않은 레위 지파를 제외한 일곱 지파가 어떤 원칙과 방법에 의해서 토지분배를 시행했는지를 서론 격으로 보여준 기록이 어제 읽은 말씀입니다.

11절부터는 그 시행 결과를 보여주고 있고, 특별히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은 베냐민 지파가 제비 뽑아 얻은 땅의 범위와 그 안에 있는 마을의 이름들을 알려줍니다. 창세기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베냐민은 야곱이 라헬에게서 얻은 막내로서 요셉이 팔려 간 후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아들입니다. 또한 요셉의 동생이었던 만큼 베냐민 지파는 다른 남은 지파 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먼저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본문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1절 말씀을 보면 베냐민 지파를 위한 제비를 누가 뽑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들은 지파보다 더 작은 단위인 “가족”을 기준으로 땅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의 땅이 가진 가장 중요한 의미를 처음부터 밝힙니다. “그 제비 뽑은 땅의 경계는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의 중간이라”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대표하는 양대 지파 사이에 위치하여 두 세력의 갈등을 막는 일입니다.

 이후 설명드릴 내용을 지도로 보시면 더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말로 설명 드리는 것을 양해 바랍니다. 댁에 들어가셔서 각자 가지신 성경책에 붙어있거나 아니면 인터넷에 있는 성경 지도를 펼치고 오늘 본문 다시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12~13절에 따르면, 베냐민 지파의 북방 경계는 16장 1~4절에 기록된 요셉 지파의 남쪽 경계와 16장 5절에 기록된 에브라임의 경계와 같습니다. 황무지를 제외하고 이곳에 언급된 모든 곳은 이미 16장 1~5절에 쓰여 있습니다. 베냐민의 경계는 요단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리고 북편으로 올라가서 서편 산지를 넘어 벤아웬 황무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14절을 보면 베냐민 지파의 서쪽 경계는 벧호론 남쪽 산에서부터 서방으로 돌아 남쪽으로 향하여 기럇 여아림까지 이릅니다. 

이어서 15~19절을 보면 베냐민 지파의 남쪽 경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경계는 15장 5~11절에 기록된 유다의 북쪽 경계와 일치합니다. 베냐민의 남쪽 경계에 대한 기록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지만 유다의 북쪽 경계에 대한 기록은 동에서 서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의 남쪽 경계는 기럇 여아림 끝에서 서편으로 나아가 넵도아 물(15:9) 근처에 이릅니다. 

그리고 21~24절을 보면,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냐민의 성읍은 두 지역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로 동쪽 지역으로 열두 성읍을 21~24절에 기록하고, 두 번째는 서쪽 지역으로 열네 성읍을 25~28절에 기록합니다. 이러한 목록은 유다와 레위가 차지한 성읍을 제외하고 지파 중에서 가장 많습니다.

이 중에서 26절의 ‘미스베’는 아마도 ‘미스바’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28절의 ‘셀라’는 사울이 장사된 곳입니다. 즉,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도시들이 베냐민 지파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잡하시죠? 고대의 낯선 마을 이름들을 읽어가는 것이 상당히 지루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땅의 지리적 특성을 오늘 분명히 알고 가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남쪽으로 유다, 서쪽으로 단, 북쪽으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동쪽으로는 갓과 르우벤, 이렇게 이스라엘의 주요 지파에 온통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나 베냐민 고원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에브라임 산지와 유다 산지 사이에 있어서 이 거대한 두 지파간의 완충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들이 차지한 땅은 중앙 산지의 중앙부를 지나가는 남북 방향의 산지 길과 동서 간을 연결하는 도로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그리고 베냐민 산지의 서쪽에는 해안 지방으로 통하고, 동쪽으로는 여리고로 내려갈 수가 있습니다. 또한 여리고에서는 요단강을 건너 강 건너편 오른쪽에 자리 잡은 지파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냐민은 이스라엘 거의 모든 지파의 교차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교통의 편리함 때문에 베냐민은 동서남북으로 교역과 문화의 통로가 되어 멤엘, 라마, 미스바, 기브온 등과 같은 성읍에서는 역사적으로 전국적인 종교 행사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동시에 이 지역을 중심으로 전쟁도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사사 시대에 베냐민 지파의 불량배들이 레위 사람의 첩을 욕보이고 죽인 일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베냐민 지파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키어 베냐민 지파가 멸절될 위기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49장 27절에서 야곱이 그의 막내아들에 대하여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라고 예고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대로 베냐민 지파는 이리와 같은 호전성과 용맹성을 보였습니다. 모압 왕 에글론을 살해한 에훗이 바로 베냐민 사람이고, 잘 알려진 바대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도 베냐민 사람이었다. 이렇듯 베냐민 지파의 특성은 한 마디로 싸우기를 좋아하고 전쟁에 능숙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그들의 기질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의 지형적인 영향이 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바꿔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지리적인 환경이 그들을 싸움꾼으로만 만들기에 적합했을까요? 더욱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온 이스라엘의 가운데에서 힘 있는 지파들의 경계에 살게 하신 까닭이 전쟁에 능숙한 사람들로 만들기 위함이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들이 민족의 화해자가 되길 기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비뽑기를 통해 베냐민 지파에게 한 가운데 땅을 주신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은 12개의 개성 강한 지파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언제든지 내분이 일어날 위기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여러 내전이 일어났고 그 결과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베냐민이 유다와 요셉, 이 거대하고 힘 있는 두 지파 사이에 위치하며 화해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명을 주셨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도리어 분쟁의 주역이 되어 많은 다툼과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스스로를 돌이켜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과연 하루의 삶 속에서 평화를 일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갈등을 부추기는 사람입니까? 우리가 속한 공동체 가운데 화해를 이루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차별과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입니까? 

평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사명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영적인 주거 환경이 베냐민과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수없이 많은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는 세상 한 복판에서 주님의 마음을 품고 평화와 화평을 이루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이 소중한 사명을 마음에 새기며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보여주신 본을 따라 평화를 이루고 전하는 하루가 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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