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7일 금요일

출애굽기 14장 1~14절 “구원을 보라”

2021년 5월 7일,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목사 정대진
출애굽기 14장 1~14절 “구원을 보라”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4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5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6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7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8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9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구원은 쓰라립니다. 연약한 인간은 감히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을 당황시키고 심지어 분노하게 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그러한 구원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 줍니다.

열 가지 재앙 끝에 마침내 파라오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거대한 행렬이 희망으로 가득찬 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호위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더욱더 기대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하지만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합니다. 당신의 백성들을 바다를 앞두고 장막을 치게 합니다.
이스라엘 사이에는 금세 싸늘한 공기가 흐릅니다.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알아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술렁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비록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수백 년에 걸쳐 이집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입니다. 거대한 제국이 어떤 견고한 체계 속에서 돌아가는지, 최고권력자인 파라오가 어떤 존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집트가 잠시 타격을 입었지만 다시 몸을 추스르고 명예를 회복하려 자신들을 향해 돌진해 올 것을 직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눈 앞에서 사라지자 파라오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의 마음을 어리석게, 완악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파라오는 이집트의 최정예 부대를 동원합니다. 심지어 온 나라의 모든 병거를 동원합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각종 전투기를 비롯한 최첨단 무기를 모두 끌고 온 셈입니다. 

때마침 어리석게도 이스라엘은 넓은 광야가 아닌 홍해 앞에 모여 있습니다. 말 그대로 독 안에 든 쥐입니다. 당대 최강의 군대를 맞서기에 그들은 너무나 무능하기만 합니다. 이제 순식간에 처참한 살육이 벌어져 몰살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이 상상이 되십니까? 저 멀리서 온 땅을 뒤흔드는 듯 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옵니다. 노예들에게 패배한 치욕을 만회하려는 강렬한 살기가 느껴집니다. 전차들을 화려하게 장식한 깃발 그날따라 더욱더 위협적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칼이 그들의 몸에 닿기 전에 이미 절망이 그들 마음에 엄습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반응은 분노입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향해 몰려가 원망을 쏟아 붇습니다. 본문 11~12절 말씀은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11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말하였다. “이집트에는 묘 자리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다 끌어내어 죽이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여기서 이런 일을 당하게 하다니,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드십니까? 12 이집트에 있을 때에, 우리가 이미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광야에 나가서 죽는 것보다 이집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더 나으니, 우리가 이집트 사람을 섬기게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떻습니까? 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십니까? 솔직히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출애굽은 그들의 소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힘겨운 노예생활에서 구해달라고 하나님을 향해 간곡히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를 떠나는 일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뜻을 모아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결과가 전혀 아닙니다.

왕궁에서 도망쳐 사라진 줄 알았던 모세가 수십 년 만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가 겁 없이 파라오 앞으로 찾아가더니 온갖 신기한 일들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열 가지 재앙을 끝으로 이집트 밖을 향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이 마냥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파라오는 히브리 노예들이 게을러졌다며 그들의 노역을 더욱더 무겁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본문보다 앞서 모세와 아론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기까지 합니다. 

출애굽기 5장 21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21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내려다 보시고 벌을 내리시면 좋겠소. 당신들 때문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있소. 당신들은 그들의 손에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칼을 쥐어 준 셈이오.”

이렇듯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한 순간의 우발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더 나아가 모세 오경에 일관적으로 드러나는 태도입니다. 엄밀히 말해 그들은 구원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노예 살이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길 원했을 뿐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구원받을 자격이 충분해서, 구원받을 준비를 갖추어서 구원받은 것이 전혀 아닙니다. 

어쩌면 그들은 본능적으로 구원의 속성을 간파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철저한 주권 가운데 행하시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하나마 짐작했을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아무리 선하고 의로운 사건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기대와 욕망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겹도록 들은 조상들의 이야기가 그런 그들의 판단에 확신을 더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등장한 가장 위대한 구원 사건인 출애굽은 멀리서 보면 희망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절망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찬란한 승리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처참한 패배의 모습으로 먼저 다가왔습니다. 천사들의 찬양 소리가 아니라 공포에 잠긴 사람들의 비명과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히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모세는 이렇게 단호하게 외칩니다. 본문 13~14절 말씀 다시 한번 다함께 읽겠습니다.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 말씀이 백성들에게 어떻게 들렸을까요? 무능한 리더의 어처구니없는 헛소리입니다. 길을 잘못 인도한 자신의 과오를 정당화하려는 황당무계한 핑계입니다. 망상에 사로잡혀 내뱉는 순진한 선동입니다. 그들 앞에는 거대한 바다가 놓여있고 뒤에는 최강의 군대가 돌진해오고 있습니다. 한시 바삐 살길을 찾아 도망가든지 얼른 파라오 앞으로 뛰어나가 항복하여 목숨을 구걸해도 모자를 판입니다. 하지만 도리어 모세는 두려워할지 말고 가만히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 말합니다. 

이 말을 성경으로 읽는 우리에게는 감동적인 선언이지만 그 긴박한 순간에 직접 듣는 이스라엘에게는 분노를 자극하는 궤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당장 모세의 목숨이 먼저 위태롭게 됩니다. 그는 바보가 아닙니다. 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극심한 혼란 한 복판에서 담대히 하나님의 구원을 선언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본문 4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4 내가 바로의 고집을 꺾지 않고 그대로 둘 터이니, 그가 너희를 뒤쫓아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와 그 군대를 물리침으로써 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니, 이집트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홍해 앞에서 벌어질 상황을 이미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파라오가 다시 고집을 부려 군대를 이끌고 쫓아올 것입니다. 그들은 완전히 고립되고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됩니다. 하지만 그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집트의 군대를 완전히 물리치십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이 마침내 주님께서 참으로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당장 눈앞의 절망이 거세면 거셀수록 마침내 그들에게 주어질 구원의 영광이 더없이 찬란하다는 진리를 굳게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 그 희망의 복음을 담대히 외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주품에”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복음성가를 참 좋아합니다. 특히나 어렵고 힘겨울 때 자주 부르곤 합니다. 후렴 가사는 이러합니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 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어느 날 문득 영어가사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찾아 읽고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짧은 영어실력이지만 원문을 번역하면 이러합니다.

큰 바다가 솟구치고 천둥이 울부짖을 때
주님과 함께 폭풍 위로 날아오를 것입니다.
When the oceans rise and thunders roar
I will soar with You above the storm

아버지, 당신은 홍수를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잠잠히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아가겠습니다.
Father, You are king over the flood
I will be still, know You are God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인생의 거센 폭풍과 풍랑 속에 흔들릴 때, 고된 불안과 두려움 속에 괴로울 때일 수록 잠잠히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우리를 참으로 살리는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쓰라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죄인의 기대와 어긋납니다. 심지어 죽음의 얼굴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폭풍이 거셀수록, 더욱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위해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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