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3장 11~22절 "출애굽의 심장"

2021년 5월 6일,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출애굽기 13장 11~22절 "출애굽의 심장"

11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12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3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14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15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16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마침내 출애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자유롭게 걸음을 내딛습니다. 기고만장했던 파라오는 싸늘하게 식은 아들의 몸을 끌어안고 결국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출애굽기는 바로 이 순간을 향해 1장부터 달려왔습니다. 

이 감격스러운 행렬의 중심에 바로 모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이집트, 더 나아가 당시 서아시아 세계의 모든 눈길이 그 한 사람을 향해 쏠려 있습니다.
그 역사적인 순간, 모세는 요셉의 유골을 손에 들었습니다. 그 이유를 본문 19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이 구절은 창세기 50장 25절에 기록된 요셉의 유언을 거의 그대로 옮겼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 가족들에게 신신당부합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그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때 자신의 해골을 메고 나와 달라고 엄중하게 거듭 강조하며 말했습니다.

그 후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이스라엘은 비참한 노예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의 예고대로 그들을 돌보시어 파라오의 억압에서 구해내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요셉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골을 안고 출애굽을 시작하였습니다. 너무나 장엄하고 가슴 벅찬 순간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요셉의 유언은 의아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굳이 그런 당부를 남길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이집트로 팔려 와서 그곳에서 기나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곳의 언어를 비롯한 각종 문화에 매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최고 권력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장인은 왕궁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태양신을 섬기는 제사장입니다.

이렇듯 요셉은 역사상 가장 화려한 문명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반면 그가 자라온 고향과 가족은 잔인한 상처만 주었을 뿐입니다. 얼마든지 잊고 싶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증조할아버지로부터 이어온 야훼 신앙은 당시로써는 교리나 성직자나 조직 체계 등 뭐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은 없었습니다. 

장엄하기 이를 데 없는 이집트 종교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너무나 초라하기만 했습니다. 따라서 요셉이 자녀와 손주들을 이집트에 복속시켜서 번듯한 귀족 가문을 이루는 게 누가 봐도 너무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주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권력과 재물에 눈이 어두워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 땅에서의 마지막 호흡을 다 하며 자신의 후손들에게 그 언젠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준엄하게 명령합니다. 심지어 그 때, 자신의 해골까지 챙기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요셉이 보여준 눈부신 신앙고백입니다. 그는 제국의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또한 온 삶을 다해 자녀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이미 출애굽보다 훨씬 앞서, 신실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의 광야 여정을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지리적으로는 팔레스타인에서 이집트로 떠나왔습니다. 신분으로는 비참한 노예에서 유능한 총리로 변화되었습니다. 또한, 인격은 아버지의 편애를 믿고 형들과 갈등을 일으키던 철부지에서 위대한 용서의 주인공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한없이 비참하고 초라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와 좌절로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 모든 나그넷길 끝에 화려한 신전과 제사를 자랑하는 이집트의 우상들이 아닌 오직 주님만이 참된 구원자이심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창조자요 지배자로 숭배받는 파라오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참으로 온 세계를 지으시고 다스리심을 온전히 믿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아버지 안락한 품 안에 안겨 응석받이로만 살았더라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진리입니다. 삶의 고통과 근심과 좌절을 온몸과 마음으로 치열하게 이겨내야 하는 광야 길을 지나며 얻은 고귀한 신앙입니다.

중국 역사 가운데 주전 475년에서 221년까지 일곱 개의 제후국이 치열하게 패권을 다투던 시기를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온 나라에 전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혼란의 시대 한복판에 활동한 사상가 맹자는 진리를 익히고 전하며 고된 나그넷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 그는 마침내 다음과 같은 위대한 깨달음에 이릅니다.

"순(舜)임금께서는 밭두둑 가운데에서 농사짓다가 떨쳐 일어나셨고, 부열(傅說)은 성벽 쌓는 일을 하다가 등용되었고, 교격(膠鬲)은 어물과 소금을 팔다가 등용되었고, 관이오(管夷吾)는 옥에 갇혀 있다가 등용되었고, 손숙오(孫叔敖)는 바닷가에서 살다가 등용되었고, 백리해(百里奚)는 시장에서 등용되었다.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어떤 사람에게 내리려 할 적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근골을 수고롭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궁핍하게 하여, 어떤 일을 행함에 그가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게 하니, 이는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여,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게 해주려는 것이다.

사람은 항상 과실이 있은 뒤에 고치니, 마음이 고달프고 생각에 순조롭지 못한 것이 있은 뒤에야 분발하며, 사람들의 낯빛에 드러나고 음성에 나타난 뒤에야 깨닫는다. 나라에 들어가서는 법도 있는 대신의 집안과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나라 밖에 나와서는 적국과 외환이 없는 나라는 항상 망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이렇게 문장을 끝맺습니다. 
然後 知生於憂患 而死於安樂也

뜻은 이러합니다. “그런 뒤에야 사람은 우환 가운데에서는 살아나고 안락함 가운데에서는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맹자> 告子章句 下, 제 15장
국역출처: 전통문화연구회

인생 여정을 지나는 이들에게 주는 너무나 고귀한 통찰입니다. 요셉의 삶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나그넷길을 걷는 이들에게 괴로움과 궁핍과 좌절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환은 결코 우리를 죽일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 시련을 통해 다가오시는 주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가 이집트를 떠나며 손에 들었던 것은 단지 요셉의 육신이 아닙니다. 그의 화려한 명성도 아닙니다. 그의 위대한 신앙입니다. 믿음으로 약동하는 심장입니다. 더욱 정확히는 그의 험난한 나그넷길에 끝까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과 언약입니다.

이 장면은 출애굽의 정체성을 가장 명확히 보여줍니다. 주님께서는 단지 더욱더 풍요로운 땅으로 이주시키시려는 게 아닙니다. 이집트와 같은 또 다른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시려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그러했다면 안락한 제국에서 벗어나 굳이 고통으로 가득한 광야로 당신의 백성들을 이끄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요셉의 심장 통해 전혀 다른 희망을 알려 주십니다. 세상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삶을 이야기 하십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기어코 이루어질 꿈을 그려줍니다. 바로 주님의 신실한 약속입니다. 광야길 끝에 마침내 다다를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포항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저마다의 나그넷길을 지나며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는 작열하는 햇볕 아래 괴로울 때, 매서운 모래 바람을 힘겹게 통과하며 허덕일 때, 절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근심과 환란이 거셀수록 우리가 걷는 인생 여정의 정체성을 굳게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이유 없이 내던져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목적지 없이 사막을 맴도는 유랑민이 아닙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의 여정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행렬 중심에 요셉의 유골이 있었듯이 삶의 중심에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그 어떤 궁핍과 우환 속에서도 주님의 위대한 사랑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거짓된 안락을 물리치고, 죽어야 비로소 다시 사는 믿음의 신비를 삶을 통해 분명히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드디어 자유롭게 걸음을 내딛습니다. 마침내 출애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둠과 절망이 금세 덮쳐올 것입니다. 그러나 여정의 시작을 이끄신 주님께서 마지막 또한 온전히 완성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의 모든 나그넷길을 신실하게 돌보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저마다의 광야를 믿음으로 건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