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7일 화요일

슬램덩크와 나(출판 초고를 끝내고)


나는 농구가 싫었다.
가뜩이나 비참했던 시절이었다.
병약했던 나를 더 초라하게 했다.
때문인지 모른다.
또래들과 달리 슬램덩크에 흥미가 없었다.
서른이 돼서야 봤다.
극장판이 화제를 모을 때도 관심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나를 혹하게 했다.
"많이 울었다."고 했다.
지난 주일, 오랜 글 감옥에서 벗어났다.
울고 싶었다.
그날, 밤길을 걸어 영화관으로 향했다.
울지는 않았다.
대신, 충분히 위로받았다.
주인공 송태섭에게 자연스럽게 몰입했다.
그는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농구공으로 이겨냈다.
나에겐 책이 도피처였다.
남들보다 많이 읽은 건 아니었다.
좋은 책을 잘 가려 읽은 것도 아니었다.
'게걸스럽다.'라는 표현이 적당하다.
그냥 책이 좋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은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나마 거의 유일하게 잘한다고 칭찬받는 게 글쓰기였던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막연히 작가가 되길 꿈꾸었다.
시간이 흘러 목사가 되었다.
설교 원고를 작성하는 걸로 대신 만족했다.
그러다 작년에 뜻하지 않은 출간 제안을 받았다.
성경 속 여러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책이었다.
여름부터 반년 넘게 원고를 썼다.
하필 복잡한 상황으로 몸도 마음도 무척 지쳤던 시간이었다.
소책자 분량이지만 버거웠다.
휴가 기간은 물론 월요일도 거의 매주 집필에 매달렸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덕분에 많은 걸 이겨낼 수 있었다.
드디어 초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송태섭은 마침내 신체 한계를 극복하고 산왕공고의 존 프레스를 뚫었다.
어린 시절부터, 슬픔을 이겨내려 몰두했던 드리블 연습 덕분이다.
극적인 역전승을 끌어낸 결정적인 장면이다.
감히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식으로 계약한 집필을 힘겹게 끝낸 내 심정 같았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무명인에게 기회를 준 출판사에 손해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저, 제법 긴 시간이 차곡히 쌓여 책 한 권을 낸 사실이 내겐 여러 의미로 먹먹하게 다가온다.
이젠 농구가 싫지 않다.
더 이상 그럴 이유가 없다.
물론 농구 코트 위를 달릴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언젠가 아들과 함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함께 보며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
아마도 그때, 눈물이 흐를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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