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7일 화요일

이사야 58장 1~12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사순절 첫 번째 주일, 2016년 2월 14일, 부산진교회 청년 설교, 정대진 목사
이사야 58장 1~12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1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2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3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5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사야 58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언자에게 내리는 명령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목소리를 아끼지 말고 크게 외치는’ 것이고 그 내용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잘못과 허물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그들이 뭘 그렇게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언자로 하여금 “외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주님께 ‘원망’한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원망’하는 것 그 자체를 싫어하지 않으십니다. 때때로 원망역시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지은 죄는 단순히 하나님께 원망 했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원망”이라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3절에는 바로 그 잘못된 원망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힘겹게 금식을 하였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을 보지도 않고 마음을 더욱 괴롭게 하고 자신들을 알아주시지 않느냐는 푸념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어르신들 중에는 가난으로 원치 않게 밥을 굶어본 아픈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우리가 흔히 ‘의.식.주’라는 말을 하듯이 ‘먹는 것’은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만약 우리가 제대로 먹지 못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음식을 스스로 절제하며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정말 훌륭하고 마땅히 칭찬 받아야할 일입니다.


문제는 금식만 하고 정작 하나님의 뜻에는 무감한 것입니다. 4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예언자는 이스라엘을 향해 그들이 금식하면서도 “논쟁”하고 “다투며” 또 “악한 주먹”을 휘두른다고 질책하였습니다. 즉, 이들은 금식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다투고 싸우고 있습니다. 게다가 여기서 말하는 “악한 주먹”의 보다 더 정확한 의미는 약한 사람들에 대한 폭력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비록 열심히 금식은 하였을지언정 정작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는 이루지 않고 여전히 자신들의 죄와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4절 뒷부분에서 이렇게 예리하게 지적하셨습니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인 아니니라.’ 이해하기 쉽게 바꾸자면 ‘너희가 그렇게 금식해서는 너희의 기도 소리가 나에게 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의 금식은 헛수고라는 말입니다.

5절에 보면 지금 이스라엘이 금식하는 모습을 보다 더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머리를 갈대 같이 풀은 채 힘없이 고개를 숙였고 입기 불편한 굵은 베옷을 입었을 뿐 아니라 재를 깔고 누었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열심과 열정이 없으면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외치십니다.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느냐?” 비록 그들이 그토록 힘겹게 금식을 할지언정 그것은 단지 사람들 눈에만 거룩하게 보일 뿐 주님께서는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금식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은 우리의 질문 앞에 주님께서 직접 답을 주십니다.

6-7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먼저 6절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은 억울하게 사로잡혀 묶인 사람들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언자는 다양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결국 한 가지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눌리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어지는 7절 말씀을 보면,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며’, ‘떠도는 불쌍한 사람들을 집으로 맞아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옷을 입히며’, ‘또 네 가까운 친척의 어려움을 못 본 척 피하여 숨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역시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지만 사실 한 가지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가난한 자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라는 진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6, 7절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결론적으로,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굶주리는 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임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 의미는 당시 시대 상황을 파악할 때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66장 전체는 크게 3가지로 구분됩니다. 그 중에서 56장 이후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붙잡혀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예언자가 말하는 해방과 자유는 곧 약한 나라가 악한 제국으로 부터 당하는 억압과 핍박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의미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굶주려 떠도는 사람들은 곧 제국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약한 나라를 빼앗고 정복하는 제국에 맞서 참된 정의와 평화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마치 제국과 같이 끊임없이 드높은 자리에 올라가, 필요 이상의 돈을 모으고 권력을 휘두르려는 욕심을 버리고 약한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고통과 아픔에 함께하며 적절한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예언자의 선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는 것은 곧, 금식 그 자체가 아니라 금식을 하는 사람의 참되고 온전함 삶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경을 많이 하며 봉사해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리곤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거창하고 대단한 무언가를 하려 애쓰는 것보다 우리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올바로 깨달으며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금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고통을 이겨내며 힘겹게 금식을 한다 한지라도 그것은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금식의 목적은 결코 사람들에게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치 거래하고 조종하듯이 금식을 통해 자동적으로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받아내려는 욕심을 부리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으쓱거리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금식 그 자체가 아닌 금식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삶을 기뻐하신다고 분명히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혹시나 우리가 하나님과 그 분 곁에 동행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을 사람들 앞에 내세우며 그릇된 만족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대전역 인근의 번화가에서 어느 날 아주 이상한 관경을 본적이 있습니다. 어깨에 전도띠를 두르고 각각 노방전도 나온 교회에서 한 분씩 나와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삿대질을 하고 큰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있었고 나머지 분들이 말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몇 몇 사람들이 그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분이 비웃으며 했던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이 저러니 더 욕을 먹지.”

저는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물론 노방전도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그 때 싸웠던 두 분도 분명 순수한 복음전도의 열정을 가지고 그 곳에 나오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안 믿는 사람에게 교회에 대해 더욱 나쁜 인상만 심어주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오늘날 교회가 아무리 열심히 전도해도, 도리어 전도하면 할수록 더욱더 사람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 대해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복음의 삶을 온전히 사는 것은 소홀히 하면서 단지 겉으로 보이는 전도만 공격적이고 경쟁적으로 무모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입니다. 따라서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다며 하는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임을 마음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에게 소중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8~11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여러 가지 약속을 하고 계신데 그 핵심은 바로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셔서 그들이 금식하며 드리는 기도에 응답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번에도 한 번 말씀드렸듯이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나라를 뺏겼다는 것은 그 시대 세계관으로는, 곧 하나님께 버림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지금 포로 생활 가운데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은혜는 그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신 게 아니라 여전히 함께하시고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심을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기뻐하시는 금식, 곧 그분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삶을 전제로 금식을 할 때 그와 같은 희망을 보다 선명히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약속은 더욱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어졌습니다. 12절 말씀 다시 한 번 다함께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여기에 나오는 ‘황폐된’, ‘파괴된’, ‘무너진’이라는 형용사가 암시하는 상황은 분명합니다. 바로 전쟁입니다. 그러니까 12절 말씀은 바벨론과의 전쟁 패배로 인해 겪는 이스라엘의 비참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 모든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구해주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회복시키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때 ‘네게서 날 자들’은 단순히 그들의 혈연적인 아들, 딸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이어갈, 즉 참 신앙을 전해 받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내려간 신앙의 유산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과 계획을 이루어 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의 참 의미를 더욱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금식’이라는 어떠한 행동을 통하여 당신을 손에 쥐고 흔드는 대신, 선한 삶을 살아가길 더욱 바라십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가만히 지켜만 보지 않으시고 그 신앙의 정신을 이어 받게 하시어 하나님 나라를 넓혀 나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는 것은 금식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참으로 회복시키는 것은 그분을 위해 무엇인가 거창한 것을 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상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감을 믿으며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가슴속에 여러 무너진 성전과 성벽의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그 모든 파괴되고 황폐한 마음의 자리를 회복시키는 길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애쓰며 다른 사람들 앞에 잘 보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걸어가며 다른 이들의 무너진 삶의 자리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당신의 참된 회복과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우리는 지금 고난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아름답고 거룩한 절기를 보내며 우리는 겸손과 절제를 통해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부활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보내며 특별히, 십자가의 위대한 은혜와 사랑 안에서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하루하루를 소중히 일구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설교 후 기도 
우리를 살리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주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은 금식 그 자체를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삶을 전제로 하는 것임을 말씀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모두 주님을 참으로 기뻐하며 주님의 기쁨을 살아가게 해주세요.

스스로를 무너뜨림으로써 무너진 모든 이들을 다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봉헌기도: 회복의 하나님

우리를 날마다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한 주간 구별한 삶의 예물을 드립니다. 이 예물을 받으시어 억울하게 갇히고 억압당하는 이들, 굶주리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예담 청년들 각자 마음속에 무너지고 황폐한 삶의 흔적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위로하시며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저마다 나아가야할 인생의 진로를 하나님께 맡기게 하여 주시고 주님과 함께 걷는 기쁨을 매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보냄의 말씀

목사: 사랑하는 여러분 평안히 돌아가십시오. 복음의 말씀을 들었으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오랫동안 황폐했던 우리 삶의 자리를 회복시키는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십니다.

회중: 아멘! 주님의 마음과 뜻을 삶을 통해 이루어 나가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신앙을 과시하고 하나님을 조종하려 하였던 어리석음을 마음깊이 회개합니다. 거룩한 사순절을 보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절제와 나눔으로 십자가의 길을 따라 나서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일상을 주님의 기쁨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아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