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4일, 승리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창세기 50장 15~21절 "선으로 바꾸사"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기도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성도님들께 차츰 다가오는 봄날과 같은 따뜻한 은혜가 함께 하길 축복합니다.
야곱이 죽었습니다. 총리 부친의 죽음을 추모하는 장엄한 장례로 온 나라가 들썩였습니다. 하지만 유족의 분위기는 무척 서늘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에게 애도는 사치입니다. 슬퍼할 겨를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상실보다 훨씬 더 큰 공포가 그들을 압도했습니다. 바로 동생 요셉의 복수입니다. 그들은 수십 년 전 자기들이 저지른 행동이 얼마나 추악한 짓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 형들은 아버지가 끔찍이 아끼는 동생, 요셉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러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미디안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넘겼습니다. 아버지에게는 피 묻은 옷을 들고 가, 그가 짐승에 물려 죽었다고 속였습니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살인 미수와 청소년 인신매매와 기만죄입니다. 그 결과 아버지와 동생에게 어마어마한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되어 그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시대, 어느 누구도 견줄 수 없는 막강한 권력자로 등장 해 형들에게 자기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큰 충격에 빠져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요셉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창 45:4). 짧은 문장 안에 그동안 겪었던 험난한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런 다음 곧바로 요셉은 형들을 안심시키며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45장 5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그들을 용서했습니다. 복수심을 접었습니다. 도무지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이 장면이 형들의 기억에 선명히 남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감정과 기대는 쉽게 깨지기 마련입니다. 형들이 보기에 요셉의 호의는 어쩌면 아버지 야곱을 위한 한시적인 배려와 위선일지도 모릅니다. 설령 진심이라 하더라도, 아버지가 안 계신다면 싸늘한 분노로 금세 바뀔 수 있습니다.
마침내 야곱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여러 복잡한 생각이 그들 마음을 헤집으며 소용돌이 쳤습니다. 본문 15절 말씀과 같이, 당대 최강 제국의 절대 권력자인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는다면 도무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은 요셉을 찾아가 간곡히 비는 겁니다. 16~17절 함께 읽겠습니다.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요셉의 화려한 총리 관저 안이 무거운 공기로 가득했습니다. 형들이 요셉 앞에 고개를 숙인 채 바들바들 떨며 야곱의 유언을 언급합니다. 아버지의 권위는 그를 설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명분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요셉에게 형들을 용서하라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그러니 제발 지난날 자기들이 행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사실, 믿기 어렵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할 중요한 말을 직접 하지 않고, 굳이 오랫동안 불신했던 다른 아들들에게 했을 리 없습니다.
요셉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립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형들에게 속 마음을 거듭 털어 놓습니다. 20~21절 말씀을 화면 보면서 새한글 성경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20 형님들이 뜻하신 것은 저를 두고 나쁜 일을 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이 뜻하신 것은 그것을 좋은 일로 바꾸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보시다시피 많은 사람의 생명을 보존해 주셨습니다. 21 이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제가 형님들을 계속 잘 모시고 형님들의 어린아이들도 잘 돌보아 드리겠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위로하며 형들의 마음에 와닿도록 말했다.
앞서 읽어드린 45장 5절을 반복하는 내용입니다. 그 날, 오랜 세월이 지나 형들을 다시 만나 요셉이 했던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그들을 용서하였습니다. 분노에 사로잡혀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광기에 휩싸여 원한을 갚으려 않았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성숙한 태도입니다. 너무나 놀랍고 기적적인 장면입니다.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었을 겁니다. 때때로 바람처럼 화가 마음에 불어왔을 겁니다.
너무나 당연합니다. 여러분이 요셉이라고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형들에게 사로잡혀 구덩이에 던져졌을 때, 상인들에게 끌려 낯선 땅에 도착했을 때,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할 때, 자기의 꿈 해몽으로 풀려난 왕실 관리가 은혜를 저버리고 방치 했을 때, 그의 마음에 몰아닥쳤을 분노를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한 사람이 도무지 감당하기 벅찬 고통의 절정입니다. 복수하고 싶은 여러 얼굴이 끊임없이 아른거렸을 겁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절망을 겪은 누구나 그렇듯 미움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을 겁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수없이 자책했을 겁니다. 아버지의 편애를 받고 기세등등 해 오만하게 굴었던 어린 시절을 두고 부끄러움에 사무쳤고, 보디발의 집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눈치껏 행동하지 못했던 완고함을 후회하며, 파라오의 술을 담당하는 신하에게 단단히 확답을 받지 못한 미련함을 괴로워하며 거듭 곱씹었을 겁니다.
하지만 요셉은 마침내 비극을 딛고 일어났습니다. 지난 날 겪었던 참혹한 폭력을 극복했습니다. 성숙한 인격과 신앙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하늘의 빛으로 세상의 어둠을 비추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미래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거기에서 진정한 회복과 반전의 길이 열립니다.
총리가 되기 전 요셉의 일생은 패배와 좌절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철부지로 자란 청년이 미숙한 판단으로 여러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순진하게 이용당하며 짓 밟혔습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자기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겪은 고난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그것은 모두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지나온 아픔을 새롭게 돌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미래가 인간의 과거를 변화시켰습니다.
요셉의 꿈풀이는 주술이나 점술이 아닙니다. 그는 여러 꿈을 꾸고 해석하며 주님으로부터 다가오는 미래를 느꼈습니다. 그 한 복판에서 하나님의 숨결로 호흡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그 어떤 악도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십니다. 그 어떤 어둠도 하나님은 빛으로 바꾸십니다. 그 어떤 절망도 하나님은 희망으로 바꾸십니다. 이러한 진리가 그로 하여금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버티고 살아남게 하였습니다. 찬란한 용서와 사랑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형들과 조카들을 끝까지 잘 돌보겠다고 약속하며 위로합니다.
20세기에 여러 처참한 전쟁 범죄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이른바 ‘홀로코스트’라고 부르는, 나찌 독일에 의한 유대인 학살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그리고 거대한 폭력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를 처절히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러운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토록 거대한 비극을 통과한 사람들이 어떻게 아픔을 이겨내었을까요? 그 끔찍한 상처를 딛고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영국 최고 랍비를 역임한 조너선 색스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이분은 구약 성경 연구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 받고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그는 유대인 대량 학살의 생존자들이 어떻게 삶에 대한 애착을 지킬 수 있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오랜 탐구 끝에 마침내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조금 길지만 그가 책에 쓴 내용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마침내 나는 깨달았다. 그들 대부분은 과거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혼인한 배우자들에게도, 또한 자녀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창조했다. 그들은 그곳의 언어와 관습을 새로 배웠다. 직업을 찾았고, 경력을 쌓았다. 혼인해서 아이들을 낳았다. 자기 가족을 잃은 생존자들은 서로에게 확대된 가족이 되었다.
그들은 앞을 바라보았지, 뒤를 되돌아보지 않았다. 우선 그들은 미래를 건설했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때로 40년이나 50년이 지나고 나서야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그 다음에는 세상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우리는 먼저 미래를 건설해야 한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과거를 슬퍼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미래로부터의 부르심으로 들어오신다. 마치 그 분이 시간의 먼 지평선으로부터, 우리로 하여금 여정을 떠나도록, 그리고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방식으로 우리가 그것을 위해 창조된 과업을 실행하도록 우리를 손짓해서 부르시는 것을 듣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것이 바로 소명의 참 뜻이다. 소명은 문자적으로 ‘부르심, 사명이며, 우리를 호출하는 과업이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가 여기에 있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며, 우리가 이루어야 할 과업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과업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으며 흔히 많은 시간이 걸리며 잘못된 출발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들 각자에게는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행하도록 부르시는 무엇인가가 있다. 아직 이루지 못한 그 미래의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완성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중략) 먼저 미래를 건설하라. 그 다음에 과거를 슬퍼할 수 있다.”
유대인 인종학살과 같은 참극은 아니더라도, 야곱과 같은 비극은 아니더라도, 땅을 밟고 살아가는 누구나 아픔을 품고 있습니다.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면 후회와 원망으로 가득합니다. 내가 겪은 끔찍한 폭력을 떠올립니다. 동시에 좀 더 강하고 현명하지 못했던 자신을 꾸짖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실패하고 끝난 삶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더욱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그 안에 담긴 놀라운 신비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곳에 나를 세우신 뜻을 살피며 부르심에 응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시간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미래 속에서, 과거의 그 어떤 절망도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눈물도 계속 흐르지 않습니다. 그 모두는 아름다운 변화의 재료가 됩니다. 그런 까닭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러므로 인생의 거대한 폭풍에 휩쓸릴 때,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깊고 깊은 아픔 속에 괴로울 때, 지나간 날에 대한 후회로 힘겨울 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행하신 놀라운 은혜를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몸소 사람이 되어 온갖 상처를 입으며 이 땅을 딛고 살아가신 예수님께서 열어 보이실 미래를 기대하며 다시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인생은, 세상은, 사람은 우리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생명과 구원과 희망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온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요셉이 험난한 인생을 거치며 피운 용서의 꽃을 바라봅니다. 그가 고단한 시련을 통과하며 맺은 사랑의 열매를 발견합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삶에도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열어가실 미래로 과거의 아픔을 넘어서며,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은혜로 현재의 고난 가운데 주시는 소명을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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