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9일 목요일

이사야 49장 1~7절 "영광의 종"

주현절 후 두 번째 주일, 2017년 1월 15일, 부산진교회 청년예배 설교, 정대진 목사
이사야 49장 1~7절 "영광의 종"

기원
온 세계를 정의와 진리로 환히 비추시는 영광의 하나님
이 시간 드리는 예배를 통해 주님의 빛 앞에 서게 하시고 그 빛을 따라 걸으며 사는 삶을 다짐하게 하여주시며 진심으로 고백하며 회개하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성경 – 이사야 49장 1~7절
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5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설교 전 기도(성령의 조명을 구하는 기도)
영광의 하나님.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성령님께서 비추시는 빛을 따라 진리를 올바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설교 - “영광의 종”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사야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설명 드리겠습니다. 성경 대부분들, 특별히 그 안에서도 상당한 분량을 가진 책들은 한 사람이 차분히 자리에 앉아 전체를 다 기록하기 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말씀과 이러저러한 문서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수집되고 편집되어 오늘 우리가 가진 형태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지층이 쌓이듯이 각 성경 안에 뚜렷한 구분과 경계가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사야서입니다. 물론 전체를 아우르는 일관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관련해서 여러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대부분의 구약학자들은 이사야서의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먼저 1~39장은 주전 8세기 예루살렘에 살았던 실제 “이사야”라는 이름을 가진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0~55장은 주전 6세기 바벨론 포로기 시절에 활동했던 “제 2이사야”로 불리는 어느 이름 모를 예언자의 외침을 다룹니다. 마지막 56~66장은 험난한 포로생활을 마치고 다시 고국에 돌아온 백성들을 향한 여러 예언자들의 말씀을 모은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사야 49장은 남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히고 포로로 끌려갔던 절망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활약했던 “제2이사야”의 말씀 가운데, 이사야의 다른 곳에는 언급되지 않은 독특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주님의 종”입니다.

이 사람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듭니다. 어쩌면 “제2이사야”와 같은 인물일수도 있고 별개의 다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특정한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비슷한 성격의 여러 사람들을 뭉뚱그려 지칭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됐든 분명한 점은 이러한 “주님의 종”은 비극의 시대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용하시는 지를 알려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그러한 “주님의 종”에 대한 여러 기록 중 하나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기에, 그의 목소리가 1인칭으로 생생하게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그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그가 스스로 고백한 구체적인 내용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3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1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분 내키는 대로, 우연히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어머니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이미 선택하셨습니다. 그의 이름과 존재를 기억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3절 말씀에 보면 그를 가리켜 “종”으로 부르시며 바로 그를 통해 당신의 찬란한 영광을 드러낼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예정과 선택”이라는 소중한 복음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동시에 안타깝게도 가장 오해받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미리 정하여 부르시고 선택하신 것은 폐쇄적인 운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서 어떤 사람들만을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지옥에 가도록 버려두셨다는 의미도 더더욱 아닙니다.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우리 모두를 선택하시며 당신의 사랑 안에 품으셨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대신 하여 버림받은 단 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렇기에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 안에 숨 쉬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워가는 또 다른 주의 종으로 이미 부름 받았음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그 부르심 안에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안에 예정된 생명의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배 후 집에 갈 때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 저녁에 밥은 무엇을 먹고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영화 시나리오처럼 결정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계속된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게 되며 좀처럼 씻을 수 없는 수치와 굴욕에 뒤엉켜 스스로를 책망하며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완성됨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한 앞날을 두려움 가운데 헤쳐 나아가지만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당신의 종으로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삶의 순간들을 깊은 은혜 안에 하나하나 이으셔서 위대한 작품 그려 가심을 신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입니다.


문제는 이처럼 하나님의 종으로 오래전부터 선택받았음에도 그들의 처지가 그리 화려하거나 대단하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2절에 보면 주님의 종이 자신의 사명을 위해 부여받은 것은 놀랍고 신비한 이적이나 명석한 두뇌 혹은 많은 돈과 뛰어난 체력이 아닙니다. “날카로운 칼”과 같은 “입”입니다. 더욱 정확히는 그 입술로 외치며 전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 묘사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숨기시고 감추십니다.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주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이 세상 속에 이루시기 위해 누군가를 선택하셨다면 누가보기에도 대단한 스펙과 능력을 갖추고 당당히 높은 자리에 올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수월하고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삽니다. 

공부 많이 해서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가고, 또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하고 승승장구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라는 얘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이야기들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거창한 성공을 거두고 어마어마한 업적을 거두었기에 주님의 이름이 세상에 더 빛나고 반대로 실패와 좌절은 은연중에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모습은, 감히 말씀드리지만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욕망을 성경구절을 빌려와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비롯하여 성경이 말하는 “부르심”은 일관되게 크고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철저한 소외와 허탈함과 좌절이 부름 받은 이들의 정확한 현실입니다. 때문에 4절에 이어지는 주님의 종의 가슴 절절한 고백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적십니다. 4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여기서 다시금 기억해야할 것은 지금 이 고백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애쓰고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선택받아 그 뜻을 전하는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쓰라리기만 합니다. 진리를 전하고 있음에도 억울한 일들은 쉼 없이 찾아올 뿐만 아니라 상처와 번민에 휩싸이며 자존감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신의 사역이 “헛수고”이며 “무익한”일로 여겨지는 공허함에 사로잡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로 고백하며 그 분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이렇듯 본문에 기록된 험난한 여정을 걷는 것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따라서 항상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 받을 거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진리는 필연적으로 인기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4절 후반부에 담긴 “주님의 종”의 깨달음에 온 마음을 다해 함께 끄덕여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일꾼들에 대한 진정한 “판단”이 그 어떤 누구도 아닌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복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판단”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단어가 일반적으로 “정의”로 번역되는 <미쉬파트>를 뿌리로 가진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낱말은 “재판하다”라는 뜻을 가진 <샤파트>에서 파생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사사기에 기록된 드보라, 기드온, 삼손과 같은 “사사”(士師)들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이스라엘이 왕정국가가 되기 전에 굉장히 독특한 정치지도자들이 등장했는데 바로 “사사”들입니다. 그들은 대를 잇지 않고 한시적으로 종교적 사명과 함께 정치적 책임과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가리키는 호칭이 바로 <쇼프팀>이고 직역하자면 “재판하는 사람들”입니다. 국가권력의 삼권이 분립된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와 다르게 “재판”은 정치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정의”의 가장 일차적인 의미는 약자를 억울하게 하지 않는 공정한 “재판”과 정치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본문 4절에서 주님의 종이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다고 고백한 것은 단순한 감정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이것을 달리 이해하면 “나에 대한 엄중하고 공개적인 재판이”, “나를 향한 정의로운 다스림이” 하나님께 있다고 외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은 위대한 성찰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편견과 공허한 수군거림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이 정해 놓은 유치한 성공의 기준들을 과감히 물리치시길 바랍니다. 대신, 온 우주적인 재판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편이 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그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께서 저마다를 향한 가장 엄중하고 정확한 공의의 판결을 내리시고 늘 다스리십니다. 그리하여 5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 역시도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심을 항상 고백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을 지켜가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올바르게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6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6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 말씀을 더욱 생생히 이해하기 위해 공동번역 개정판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6 "네가 나의 종으로서 할 일은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살아 남은 이스라엘 사람을 돌아오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나는 너를 만국의 빛으로 세운다. 너는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이르게 하여라."(공동번역 개정판)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부르시고 일으키신 까닭은 단지 그가 속한 이스라엘 민족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사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의 빛”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을 땅 끝까지 전하는 일입니다. 아마 여러분 대부분은 이 말씀을 전혀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실 겁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마태복음 28장 18~20절과 사도행전 1장 8절을 비롯하여 여러 신약성경의 구절들은 온 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할 것을 분명히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예언자를 통해 직접 들었던 바벨론의 이스라엘 포로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이고 불쾌한 말씀이라는 사실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이스라엘 밖의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상종 못할 죄인들이었고, 하나님의 구원은 철저히 이스라엘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외국인들과의 결혼을 엄중한 죄로 여기며 단호하게 처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빛을 온 세계를 향해 비추라는 주님의 명령은 두 가지 차원의 부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교회 안을 진리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더욱 정확히는 교회가 그리고 우리 자신이 선교의 대상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안에 익숙한 하나님과 이별하며 낯선 하나님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은 진리가 가진 폭력성을 경계하며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구원의 종으로서 경계를 넘어서 천대당하는 이들을 향한 복음 전파와 사랑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만의 잔치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믿는 사람들끼리, 기독교인들끼리만 똘똘 뭉쳐서 편을 가르길 바라지 않으십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담을 넘고, 혐오와 전통의 담을 넘어 깊고 넓은 도약으로 낮고 소외된 이웃들에게로 다가가길 바라십니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온 우주를 향해 비추시는 주님의 빛을 잇는 진리의 참된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끝으로, 7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7절은 앞선 1~6절에 기록된 주님의 종에 대한 내용들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기 위해 세우시는 사람들은 강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아님을 더욱 분명히, 거듭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입니다. 한 마디로, 패배자들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종은 사람들의 화려한 선망 대신 멸시를 당하며 백성들의 환호와 인기 대신 미움을 받으며 권력자들로부터 억눌린 이들입니다. 즉,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고난당하는 백성들을 구하기에 전혀 적합해 보이지 않는 어딘가 모자라고 성가신 사람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룩하고 신실하신 주님께서 그런 그들을 선택하시어 당신의 뜻을 세상 속에 전하게 하시며 참된 영광으로 감싸 안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벨론 포로기”라는 절망과 비극의 한 복판에서 주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절정에 바로 예수님께서 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진정한 “주님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어둡고 지저분한 말구유 위에서 무력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사회의 가장 낮고 외진 곳에서 약자들의 친구로 어울리며 살아가셨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처절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죽음을 죽음으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께서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나라가 얼마나 생명력 있고 따스하며 위대한지를 온 우주 가운데 드러내시며 영광의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그 빛 아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광채를 이어가는 또 다른 종으로 부름 받았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이기에 여전히 힘겹고 고단한 길을 걸어갑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무의미하고 허무한 삶이 아니라 진정한 구원과 영광을 드러내는 길입니다. 우리 존재와 생명의 진정한 주인 이신 하나님께서 진실로 거룩하시며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설교 후 기도 
우리를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의 종으로 부르신 하나님
때때로 여전히 계속되는 삶의 고단함과 패배감에도 주님의 뜻이 끝내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그 믿음 안에서 주님의 영광의 빛을 온 세계에 비추는 일꾼으로 삼아주시옵소서.
진정한 영광의 종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봉헌기도 
영광의 하나님
한 주간도 주님께서 예정하신 깊은 뜻에 따라 선한 길로 이끄셨음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삶으로 구별한 예물을 드립니다. 기쁨으로 받으시어 주님의 진리와 생명을 온 세계로 전하는 일에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예담청년들을 진심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좌절과 절망의 시간을 지날 때에도 스스로에 대한 사랑과 소중함을 잃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소망을 날마다 더욱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겨울 추위 가운데 몸과 마음의 건강 지켜 주시고 주님의 빛 안에서 밝음과 따뜻함을 끌어안으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파송의 말씀
목사: 사랑하는 여러분 평안히 돌아가십시오. 복음의 말씀을 들었으니 온 세상에 빛을 비추는,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십시오. 이미 오래전부터 모든 사람들을 당신의 품안으로 부르시고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

아멘: 힘겨운 현실로 인해 쉽게 좌절과 허무함에 빠지곤 했던 어리석음을 뉘우칩니다.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세상의 빛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주님! 정의로운 다스림으로 날마다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축도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여러분을 지켜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얼굴을 여러분을 향해 비춰 주시고,
여러분을 은혜롭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얼굴을 여러분을 향해 드시어, 
여러분에게 평화 주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사귐이 
주님의 종으로서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길 다짐하는
예담 청년들과 항상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댓글 2개:

  1. 마태복음 28장 28절과 사도행전 1장 8절 좋은 말씀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마태복음28장 19절 이나 마태복음 28장 18-19절로 정정하셔야 할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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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정했습니다 ^^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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