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8일 금요일

포항-일산 이사를 마치고.



나에겐 고향이 없다.
굳이 따지면 '대전'이다.
성장기 대부분을 거기서 보냈다.
하지만 좋은 기억이 거의 없다.
짙은 소묘 같은 일상이 이어졌다.

첫 번째 그림부터 그랬다.
좁은 용달 트럭의 진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부모님은 경남 섬마을에서 나고 자라 부산에서 사셨다.
낯선 대전에 어린 두 남매를 데리고 이사하셨다.
단칸방의 어두운 공기가 다섯 살 아이 마음에 목탄화처럼 새겨졌다.
지워내고 덧칠하는 데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이사를 마쳤다.
어제(17일) 오전 포항에서 이삿짐을 포장하고 일산으로 향했다.
아쉬움에 일부러 장사 해변을 들린 뒤 꽤 먼 거리를 달렸다.
6살 아들 기억에 오래오래 생생히 남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전 나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사하게 된 이유와 준비하는 과정 모두가 그저 감사하다.
교회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쾌적한 사택으로 원활하게 잘 이사했다.
가는 길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세 가족이 싼타페를 타고 오붓하고 편하게 이동했다.

물론 알고 있다.
아들이 느끼는 건 전혀 다르다.
포항에서 차가 출발할 때, 가는 길 중간중간 인하는 "이사 가기 싫어!"라고 소리 질렀다.
어쨌든 그 아이에게는 이별과 새로운 환경이 슬프고 두려울 것이다.
어른의 눈높이로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이곳에서 펼쳐질 삶이 인하에게는 화사한 빛깔의 수채화 같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내가 아들에게 푸른 물감 같은 아빠이길 소망한다.
부디 인하에게는 고향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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