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6일 토요일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민음사) 간단 서평

소설이 읽고 싶었다.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도무지 없었다.
사임하고 임지를 옮길 때가 좋은 기회였다.

일부러 중편을 골랐다.
하지만 여전히 여유는 없었다.
이사 준비로 바빴다.
중간 정도 읽고 부임했다.
부임 후에도 적응하느라 정신없었다.

이 책 자체가 읽기 난해하기도 했다.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 이름의 많은 인물들이 어지럽게 등장했다.
사건을 단락으로 나누지 않고 한 호흡으로 잇는 바람에 흐름을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러나 다시 책을 펼치고 끝내 다 읽게 하는 굳건한 힘을 느꼈다.
척박한 환경 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본성.
그리고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사람다움을 꿋꿋하게 지키는 것의 위대함을 깨닫는다.

그중에서도 잠깐 등장하는 어느 노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아래).
나 역시 그처럼 품격을 지닌 '꼿꼿함'을 지키고 싶다.
치열한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려 분투하는 이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위대한 소설이다.

덧. 위키피디아 등을 통해 간략한 인물 소개를 확인하고 읽기를 권한다.

"슈호프는 오늘 처음으로 그를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수용소 내의 죄수들이 모두 새우등처럼 허리를 굽히고 있는 반면에, 이 노인은 유독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의자에 앉은 모습을 보니, 의자에 뭘 기대고 앉은 것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다. 

머리카락은 이미 모두 빠져서 이발할 필요도 없어진 지 오래다. 수용소에서 하도 잘 먹은 탓에 머리가 모두 빠진 모양이다. 그는 식당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듯, 슈호프 머리 너머 어느 곳인가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끝이 다 닳은 나무 수저로 건더기도 없는 국물을 단정한 모습으로 먹는다. 다른 죄수들처럼 국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먹는 것이 아니라, 수저를 높이 들고 먹는다. 이는 아래위로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 뼈처럼 굳은 잇몸으로 딱딱한 빵을 먹고 있다. 

얼굴에는 생기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그래도 어딘가 당당한 빛이 있다. 산에서 캐낸 바위처럼 단단하고 거무스름하다. 쩍쩍 갈라진 거무스름한 손은 그가 걸어온 수십 년의 감옥살이를 통해, 한 번도 가벼운 노동이나 사무직 같은 것을 얻어 일한 적이 없이, 생고생만 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하지만 그는 전혀 굴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타협도 하려 들지 않는다. 300그램의 빵만 하더라도, 다른 죄수들처럼 더러운 식탁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지 않고, 깨끗한 천을 밑에 깔고 그 위에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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