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4일 토요일

영화 Arrival(2016, 드니 빌뇌브) 후기



*스포일러 포함

"히브리어에는 시제가 없습니다."
스승께서 늘 강조하셨다.
내 글에서 시간 관련 표현이 나올 때마다 지적하셨다.
시간 개념을 바로 알아야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초라한 목동(과거, 현재)인 다윗을 가리켜 "한 왕을 보았다."(미래)라고 말씀하신 이유다(삼상 16:1)
히브리어 문법은 이를 가리켜 "예언적 완료형"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이 경험하는, 직선의 시간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드니 빌뇌브의 찬란한 필모그래피 중에서 내가 유독 이 영화에 끌린 까닭이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여기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은 원형의 시각 언어로 그들의 초월적인 시간 관념을 표현한다.
주인공은 그들의 언어를 배우며 시간 개념까지 함께 익힌다.
이를 통해, 훗날 경험할 사건으로 지금 닥친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앞으로 겪을 시련을 알면서도 현재를 받아들인다.
결국 이 영화는 '외계인의 도착'이라는 거대한 소재를 통해, 가장 소소하고 친숙한 일상의 신비를 주목하고 곱씹게 한다.

나는 내 개인사가 앞으로 어떻게 흐를지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하나님의 언어'에 날마다 친숙해 가길 바랄 뿐이다.
시간을 아우르며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더욱 신뢰하길 다짐한다.

오랜만에 이 영화를 보고 또다시 감탄하며 얻은, 뜻밖의 통찰이다.
드니 빌뇌브가 거장인 이유다.
"듄2"를 진심으로 기대하며 그의 전작들을 다시 찾아보고 싶어진다.

덧, 직관적이면서 핵심을 담은 원작 제목 Arrival, 대신 비슷한 소재의 과거 흥행작 '콘택트'(1997)를 흉내낸 개봉명 '컨택트'는 두고두고 몹시 아쉽다. 수입사의 치명적인 오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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