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1일 일요일

영화 "트레이닝 데이"(Training Day, 2001) 리뷰




*스포일러 포함

이 영화의 매력은 '모호함'이다. 중후반까지 악역 '알론조'(덴젤 워싱턴)의 정체성을 불명확하게 다룬다. 그가 분명 선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름의 명분과 합리성은 지닌 것처럼 보여준다. 그 바탕에 알론조의 탁월한 언변이 있다. 이를 이용해 팀원들을 휘어잡고 경찰 조직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영화 초반, 제이크(에단 호크)가 알론조와 함께 일하게 되어 무척 기뻐하며 설렌 이유다. 제이크만이 아닐 거다. 영화상 설정이지만 그 또래, 막 경력을 시작한 경찰 대부분 그를 부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알론조의 추악한 밑바닥이 금세 드러난다. 역설적으로 그 중심에 달변이 있다. 매끈한 말솜씨로 신입 경찰을 노련하게 겁박하고 회유한다. 심지어 살인과 갈취도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그러나 영화 전개가 절정을 향해 갈수록 그가 호의 인척 말한 모두가 거짓이라는 걸 씁쓸하게 알게 된다. 그에게 제이크는 자기 야망을 위한 이용 대상에 불과했다. 결국 알론조는 자기 본심과 정반대 얘기를 매우 설득력 있게 하는 데 능숙한 인간이다. 그의 궤변이 매끄러우면 매끄러울수록 실상 그가 얼마나 천박한 인격을 지녔는지를 알려준다.

지금 나는 알론조와 제이크 사이 어딘가에 있다. 알론조와 같은 부와 권력은 없다. (초반) 제이크처럼 순박하진 않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 한쪽에 꿈과 야망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두 인물을 오가며 숱하게 방황하고 좌절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기에 내 주위 제이크를 향해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다. 더 이상 알론조에게 속고 휘둘리지 말고 부디 자기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영화는 그 자체 미덕과 별개로 각별하다. 내게 "트레이닝 데이"가 그렇다. 계속 감탄 나오는 덴젤 워싱턴의 연기는 그가 왜 할리우드 최고 배우인지를 증명한다. 에단 호크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감각적인 화면과 음악도 인상적이다. 탁월한 스릴러 영화로서 손색없다. 적극 추천한다.

한편으로 작품 자체의 의도와 별개로 다양한 상징으로 내게 다가왔다. 제이크의 각성과 성장이 뭉클하게 마음을 울린다. 동시에 여전히 기세등등한 현실 속 여러 알론조를 발견한다. 세련되게 포장한 그들 탐욕이 때로 참을 수 없이 거북할 때 다시금 이 영화를 찾아 한 호흡에 감상할 것 같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더 이상 알론조에게 기대지 않는다. 나는 내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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