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9일 금요일

창세기 35장 1~7절 "벧엘의 하나님"

2023년 12월 29일, 승리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창세기 35장 1~7절 "벧엘의 하나님"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그리고, 그리하여, 그럼에도,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글 성경은 생략했지만 구약 원문에는 1절 앞에 접속사가 붙어있습니다. 우리말 접속사는 ‘그리고’나 ‘그러나’처럼 순접 혹은 역접 의미가 명확합니다. 반면 한 글자로 된 히브리어 접속사는 뜻이 명쾌하지 않습니다.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 삶의 모호함과 모순을 드러냅니다. 다만 앞 단락과 긴밀하게 이어져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본문이 직전 사건과 역동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때 야곱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의 가족이 가나안 땅, 세겜에 정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입니다. 막내딸 디나가 그곳 추장의 아들, 하몰에게 몹쓸 짓을 당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오빠들이 사악한 꾀를 내어 세겜 남자들을 몰살시켰습니다. 

거대한 공포가 야곱을 사로잡았습니다. 이제 막 새로운 마을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먼저 살던 사람들과 원만히 잘 지내야 합니다. 거창한 명분을 떠나 가족 전체의 생존이 걸린 일입니다. 그런데 철없는 아들들이 혈기를 못 이겨 끔찍한 살육과 약탈을 저질렀습니다. 이제 복수는 시간 문제입니다. 세겜 성읍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평소 가깝게 지낸 다른 부족에게 도움을 청하는 순간, 그 즉시 모든 게 끝장입니다. 게다가 야곱은 이 사건을 통해 족장이자 아버지로서 자기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뼈아픈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야곱을 짓누른 한없는 절망을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불행 가운데 지쳐 쓰러진 야곱에게, 마치 문장과 문장을 잇는 접속사가 그러하듯 가장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거기에서 살라고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 또한 덧붙입니다. 벧엘은 지난날 그가 주님께 예배한 곳입니다. 본문 7절은 이러한 1절과 정확하게 대칭을 이룹니다. 야곱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벧엘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곳 이름을 ‘엘 벧엘’, 즉 “벧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을 명령한 게 아닙니다. 벧엘이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눈부신 은혜를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께서 벧엘과 함께 언급한 시간 배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절과 7절 모두, 야곱이 하나님을 예배한 그 시절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바로 ‘형의 낯을 피해 도망하던 때’입니다. 그가 과거에 경험했던 가장 어둡고 비참했던 시간입니다. 관련해서 창세기 28장 10절 이하 내용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때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와 모의하여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 쌍둥이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에서는 분노하며 동생을 죽이려 했습니다. 사냥으로 단련한, 풍채 좋은 근육질 몸은 그의 말이 허풍이 아님을 보여 주었습니다. 에서 손에 잡힌다면, 그의 사냥감이 된 토끼나 노루처럼 야곱이 피를 흘릴 게 분명했습니다. 리브가는 이 상황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야곱을 오빠 라반의 집으로 피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야곱은 유복한 족장 아들에서, 한순간에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윽고 밤을 맞이합니다. 그를 둘러싼 자연환경 자체가 암울한 자기 인생을 낱낱이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사방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 멀리 어디선가 정체 모를 섬뜩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언제 맹수가 덮칠 지 모릅니다. 어디서 강도떼가 튀어 나올지도 모릅니다. 설령, 외삼촌이 살고 있는 하란에 무사히 도착한다 할지라도, 어머니 바람처럼 그곳에서 안전할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야곱이 베고 누운 돌덩어리의 딱딱하고 싸늘한 촉감이 그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앞날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온갖 염려가 그의 내면에 엄습합니다. 어쩌면 그의 눈가에 흐른 눈물이 뺨을 타고 돌베개를 축축이 적셨을지 모릅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수없이 돌이켜 보며 자책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번민과 절망 속에 지쳐 잠들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 때, 꿈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조금 길지만 창세기 28장 12~15절을 화면 보시면서 다함께 읽겠습니다.

12 꿈에 본즉(보라!, 히 ‘베힌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보라!, 히 ‘베힌네’)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보라!, 히 ‘베힌네’)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보라!, 히 ‘베힌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꿈에서 야곱은 하늘에 닿은 계단을 보았습니다. 이를 두고 개역개정성경은 ‘사닥다리’라고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서아시아에서 발굴한 고대 유적처럼 층계나 경사면으로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거기를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꼭대기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공포에 사로잡혀 불안해하는, 영혼 가장 깊은 아픔을 어루만지고 위로하십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언약하신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그에게 땅과 자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은혜를 선언하십니다. 바로 언제 어디서나 야곱과 함께 하겠다는 ‘임재’입니다. 그런데 앞서 화면으로 보신대로 여기서 “보라!”라는 뜻의 히브리어 감탄사 <베힌네>가 무려 네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 느낀 경이로움을 강조 하는 표현합니다. 게다가 28장 11절에서 야곱이 ‘한 곳에 이르렀다.’라는 문장의 원문은,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 곳에 도착했음을 암시합니다. 
 
정리하자면 야곱은 가장 위험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마주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 그는 감격하기보다는 두려워하고 놀랐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지금 수천 년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거대한 문화와 체계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믿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야훼 신앙은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해 이제 겨우 3대에 이른 가족 종교입니다.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특별한 출생 과정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듣긴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생생히 경험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의 인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마침내 만났습니다. 그런 까닭에 야곱은 창세기 28장 16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그리고 나는, 나는 그것을 몰랐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화면에 밑줄로 표시한 마지막 문장,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를 원문에서 곧바로 옮기면 “그리고 나는, 나는 그것을 몰랐다.”입니다. 1인칭을 연달아 두 번 반복하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이를 통해 야곱은 자기가 하나님의 임재를 몰랐음을 거듭 강조합니다. 치명적인 무지함을 처절히 인정합니다. 그의 고백으로 말미암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누구보다 바로 나 자신을 넘어서야 합니다. 나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내 슬픔과 고통에 집착하는 걸 그만해야 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의 온 인격과 존재가 진실로 하나님을 향해 활짝 열립니다.

그 결과 야곱은 하나님과 함께 나그네 길을 계속 걸어갈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돌베개를 세워 그 위에 기름을 부으며 주님을 예배했습니다. 원래 ‘루스’로 불리던 그 땅 이름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인 ‘벧엘’로 바꾸고 진심 어린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 후 2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삶은 여전히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아들들이 세겜에서 범죄를 저질러, 이제 온 가족이 어떤 끔찍한 고초를 겪을지 모르는, 암담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또다시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벧엘로 돌아가라고 말씀 하십니다. 거기서, 그 옛날 형을 피해 도망칠 때 나타나셨던 당신께 예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순간 야곱은 아마도 과거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날 밤의 냉기와 허기와 피로가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그 때의 극심한 절망과 두려움이 다시금 가슴 깊이 사무쳤습니다. 그리고 그 모두를 압도하는 주님의 찬란하고 따스한 생명에 휩싸였습니다. 이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는 죽음에서 일으켜 세우는 위대한 생명과 능력이 있음을 반드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가족 모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3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3 이제 우리는 이 곳을 떠나서, 베델로 올라간다. 거기에다 나는, 내가 고생할 때에 나의 간구를 들어 주시고, 내가 가는 길 어디에서나 나와 함께 다니면서 보살펴 주신, 그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치고자 한다."

여기서 야곱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눈물겨운 신앙 고백을 남깁니다. 바로 주님께서 그가 고생할 때에 간구를 들어주시고, 가는 길 어디에서나 함께 다니면서 보살펴 주셨다는 간증입니다. 같은 은혜가 야곱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에게도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충격적인 사실을 본문에서 확인합니다. 바로 이어지는 4절을 보면 그의 가족들이 어마어마 양의 이방 신상과 장식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샌가 그들의 내면 속에 하나님이 사라진 증거입니다. 

그 대신 우상이 유혹하는 탐욕과 헛된 풍요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 했습니다. 더욱 정확히는 ‘나’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더 이상 주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자기 감정과 어리석은 욕망에 충실했습니다. 그 결과 야곱의 아들들은 돌이킬 수 없는 폭력과 죄악을 저지르고, 공동체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렇지만 먼저 다가와 말씀하시는 하나님, 지난날 함께 하신 언약을 되새겨 주신 그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들을 위험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5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은 세겜을 떠나며 몹시 근심하고 걱정했습니다. 어린 아이와 여성을 포함한 많은 무리가 멀리 이동할 때는 언제나 외부 공격에 약하기 마련입니다. 야곱 가족이 외적의 칼과 창을 무서워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주변 성읍 사람들이 야곱 가족에게 크게 겁을 내었습니다. 공포의 전환이자 두려움의 반전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결과입니다. 지난날 벧엘에서 도망자 야곱을 구하신 주님이 여전히 그와 동행하셨습니다. 시련에서 구하시고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구원을 완성하시고, 온 세상에 전하시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온 우주를 뒤덮는 공포의 절정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또 다른 루스에서 밤을 보내며 싸늘한 돌베게를 베고 누울 때가 있습니다. 여러 모양의 세겜을 지나며 두려움에 벌벌 떨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깊고 깊은 죽음과 절망 속으로 주님께서 따스하게 임재하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모든 절망을 뒤엎는 위대한 생명과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시련에도 쉽게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고생할 때에 간구를 들어주는 주님. 가는 길 어디에서나 항상 함께 다니면서 보살펴 주시는 주님만을 높여 예배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헛된 자아와 욕망을 날마다 더욱 내려 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세겜을 떠나 벧엘을 향해 날마다 묵묵히 발걸음 내딛길 소망합니다.

물론 그 길에 여전히 많은 아픔이 놓여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분명 설움에 사무쳐 눈물 흘릴 날이 찾아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리고, 그래서 벧엘의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기도
벧엘의 하나님
깊은 밤 돌베개를 베고 스산하게 잠들던 도망자 야곱에게, 온 가족에게 닥친 위기 가운데 두려워 떨던 야곱에게, 따스한 임재로 다가오신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또한 저희의 모든 실패와 좌절 가운데에도 항상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어리석은 아집과 교만을 물리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공허한 우상을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향해 온 마음을 열고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언제나 사랑으로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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