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요일

신명기 3장 23~29절 "사랑이라는 해답"

2024년 5월 7일, 승리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신명기 3장 23~29절 "사랑이라는 해답"

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29 그 때에 우리가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주하였느니라

성경은 난제로 가득합니다. 물론 성경은 온 세상을 구원하는 명확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동시에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문제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많은 의문과 혼란을 안겨줍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도 그중 하나입니다. 모세에게 내려진 가나안 진입 금지명령입니다. 모세는 구약성경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성경 속 그 누구보다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수백 년 동안 이집트 제국의 압제에 시달렸던 하나님 백성을 구출해 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담은 율법을 선포했습니다. 이렇듯 모세는 고난을 겪은 이스라엘 가운데 주님의 뜻과 말씀을 생생히 전해준 위대한 영웅입니다.

그러한 모세가 정작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이유입니다. 바로 민수기 20장 2~13절에 기록된 ‘므리바 사건’ 입니다. 힘겹게 사막을 지나던 어느 날 백성이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들어 물이 부족하다며 거칠게 따졌습니다. 이스라엘은 두 지도자를 향해 왜 자신들을 여기로 데려와서 고생 끝에 결국 죽게하느냐며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백성을 불러 모으라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이 터져 나오게 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지만 분노에 사로잡힌 그는 잠시 이성을 잃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치고 말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거기서 물이 쏟아져 나와 온 백성들이 목마름을 해결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모세가 보인 행동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 대상이 되었습니다. 관련하여 민수기 20장 12절 말씀 읽어드리겠습니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이 이해되십니까? 이 날 모세가 분명 잘못했습니다. 그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지도자로서 지극히 미숙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랜 소원인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하지 않습니까? 그런 까닭에 모세는 한 참 시간이 흘러 가나안 입성을 앞둔 백성을 향해 이 사건을 다시 언급합니다. 그러면서 억울함과 원망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본문 25~26절 다함께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우리는 이러한 모세의 마음을 쉽게 공감합니다. 누구나  삶 속에서 온갖 좌절을 경험하며 분노하기 때문입니다. 별거 아닌 실수 탓에 그동안의 헌신과 노력이 모두 무시당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드넓은 사랑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주님을 앞으로도 더욱 신뢰해야 하는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회의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므리바 사건은 성경의 대표적인 난제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지를 두고 오랫동안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이 논쟁의 정확한 답을 앞으로도 계속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매우 인상적인 일을 몇 년 전에 경험하였습니다. 그 때 제가 섬긴 교회에서 열 분 정도 되는 성도님과 함께 모세오경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오늘 본문에 나온 므리바 사건 난제에 대해 설명 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모세가 왜 가나안에 못 들어갔는지, 그 이유에 대해 각자 의견을 여쭈어봤습니다. 다양한 생각이 오갔습니다. 잠시 후 평소 조용히 계시던 은퇴 권사님 한 분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하나님이 모세를 참 사랑해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만약 모세가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출애굽을 완성한 공로로 사람들의 지나친 열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상이 되면 그 자신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세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그 비극을 막으시려고 가나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으신 게 아닐까요?”

어떻게 들리십니까? 그 때 저는 여느 딱딱한 신학책이 담아 낼 수 없는, 깊은 연륜이 묻어나는 향기로운 묵상과 깨달음을 만났습니다. 사실, 모세의 가나안 입성 금지가 개인숭배를 막기 위함이라는 해석은 이미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성찰에는 미처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사랑에 비추어 이 말씀을 곱씹어 보면 볼수록 너무나 정확한 해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젊은 시절에는 너무나 훌륭한 일들을 하여 많은 존경을 받다가 안타깝게도 노년에 추하게 변질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한때는 청년의 롤모델로 추앙을 받다가 어느 순간 씁쓸한 조소의 대상 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군중의 열광과 환호 소리에 취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지 못합니다. 대중이 그려낸 허상에 자기를 동일시합니다. 그 결과 자신은 물론이고, 공동체를 어려움으로 몰아넣는 것을 역사와 오늘의 현실 가운데 쉽게 발견합니다. 어쩌면 화려한 성공과 거대한 성취를 이루지 않는 게 어쩌면 그에게는 더 좋은 일 일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오래고 간절한 소원과 달리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하신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점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한결 같이 사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스라엘의 우상이 되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우상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반드시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의 가나안 입성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습니다. 저마다의 요단 저쪽, 아름다운 땅과 산과 레바논입니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당연히 들어주셔야 한다고 바라는 소원입니다. 내가 이렇게 헌신하고 봉사 했는데, 내가 이토록 열심히 충성하고 희생했는데, 주님께서 적어도 이 기도만큼은 응답해 주시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소망이 누구에게나 알게 모르게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대가 크면 클수록 좌절도 깊고 쓰라리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와 관련하여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할 갈등과 아픔,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노력했지만 끝내 이룰 수 없었던 진학과 취업, 인생을 다 바쳐 일군 사업체에 찾아온 크나큰 위기, 이 모두 앞에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절망에 사무쳐 몸부림칠수록,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위대한 진리에 온 몸과 마음으로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법이 연약한 죄인인 우리의 생각과 다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마다의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더 이상 걸음을 내디딜 수 없을 때, 그 허무함과 씁쓸함에도 불구하고 더욱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어리석은 소원을 넘어서는 진정한 은혜의 길로 신실하게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언덕에서 당신의 뜻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십자가’라는 이 세상 가장 거대한 난제 앞에 기도하셨습니다. 피하고 싶었던 그 잔을 마침내 마셨습니다. 그 결과 주님께서 짊어지신 고뇌와 혼란이 우리 모두를 구원하였습니다. 

인생은 난제로 가득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입니다. 지치고 낙담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마음 깊이 품으시길 바랍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드러내신, 주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나 자신과 고난을 비추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연약한 인간이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놀랍고 눈부신 은혜를 발견할 줄 믿습니다. 그 믿음 따라 인생의 광야 여정을 담대히 이어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참 사랑의 주 하나님
인생이라는 광야 길을 지나며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만납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흐릿하게 보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을 향해 원망이 솟구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통해 나 자신과 가정과 삶을 돌아보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난제를 넘어서는 사랑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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