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보니 성서학을 전공했다.
구약학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지닌다.
하지만 입학 직전에 급하게 선택했다.
원래는 "역사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역사에 대한 오랜 관심 때문이었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모색하는 "기독교와문화"도 임성빈 교수님 수업 영향으로 큰 매력을 느꼈다.
열광주의적인 집회 문화를 극복하는 예배예전의 아름다움을 느껴 "예배학"에도 꾸준한 애정을 가졌다. 예배학 박사과정 진학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왜곡된 종말론과 성령론에 대한 상처 때문에 "조직신학"을 통해 갈급함을 해소하며 신학적 치유를 경험했다.
관련해서 "신약학"에서 요한계시록과 요한복음을 연구하고 싶기도 했다.
일본과 인도네시아에서 각각 1년간 보낸 경험을 통해 "선교학"에 흥미를 갖기도 했다.
스캇 펙과 리처드 로어의 영향으로 "상담학"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그런데 사실 가장 먼저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영성신학"이었다. 강박적인 기도의 굴레를 처절히 짊어졌던 지난 아픔을 넘어 성경과 전통에 근거한 건강한 영성을 탐구하고 싶었다.
어제, "기도"를 주제로 서리집사 교육을 준비하며 문득 내가 지나온 신학 편력이 떠올랐다.
신학 범주 안에 있는 전공 대부분에 관심을 가졌다.
모두 내 한계와 결핍과 연결된다.
그런 탓에 무엇 하나 진득하게 연구하지 못했다.
딱히 이렇다 할 신학적 성과를 이루진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신학이라는 거대한 바닷속 곳곳을 계속 기웃거릴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신학에 얼마나 큰 빚을 졌는지 고백하며, 이 학문에 대한 애정을 이어갈 것이다.
갑작스럽게 깨닫고 진심으로 고백하는, 목회자로서 참 감사한 은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