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1일, 승리교회 새벽기도회
요한복음 6장 47~51절 "생명의 양식", 목사 정대진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새벽 추위를 뚫고 생명의 양식을 구하려 나아온 성도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 혹시 배 고프십니까? 위 속이 허전하신가요?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고프신가요? 군복무 시절, 제가 선임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놀림이 있었습니다. “식탐”食貪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먹을 것에 욕심을 낸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마다 무척 불쾌해 했습니다. 아무리 군대라도 그렇지 없는 말로 사람 괴롭힌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전역을 하고 시간이 흘러 그 때를 곱씹어 보면 볼수록 문득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식탐이 있긴 했구나.’ 동시에 그 때 내가 왜 그랬을까를 궁금해 하며 의아함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은 곳에서 그 오랜 물음의 답을 찾았습니다. 어느날 라디오방송에서 음식량을 통제하지 못하고 무절제하게 먹는, 이른바 “폭식증”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뇌 속에 만족을 느낄 수 있는 호르몬이 세르토닌 등이 있는데, 이런 호르몬들이 주로 잘 분비되고 포만감을 느끼는 부위랑 사랑의 만족을 느끼는 부위가 인접해 있다는 게 사실 비극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에 고픈 건데, 그것을 배가 고픈 걸로 착각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설명이 이해되십니까? 사람들이 배고픔을 잘 못 참고 지나치게 먹을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려는 것은 단순히 소화기관으로서 배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과 인정에 대한 목마름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제 인생 중 유일하게 “식탐”을 가졌던 군 복무기간 동안, 다들 비슷하겠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스트레스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군대 안에서 딱히 스트레스를 풀만한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대신 PX가 생활관과 가깝고 규모도 제법 컸기 때문에 자주 갔습니다. 그러면서 더더욱 먹을 것에 집착했었습니다. 하지만 전역한 후 서서히 자존감을 회복하면서 식탐이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저는 배고픔과 애정결핍의 상관관계를 쉽게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다시 묻겠습니다. 혹시 배 고프십니까? 그렇다면 그러한 여러분의 배고픔은 적절한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한 몸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 인가요? 아니면 제가 그러했듯,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의 굶주림인가요?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성경 속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오병이어”입니다. 한 소년이 아낌없이 내어 놓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어른만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은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오병이어 사건 역시도 단순히 하나님께서 신비한 방법으로 많은 먹을 것들을 주신 신기한 일이라고만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우리는 오병이어 이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음식을 기대하며 찾아왔을 때, 그런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 말씀 읽어드리겠습니다.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손으로 사람들에게 건네는 어떤 먹을거리가 아니라 그분 존재 자체가 “생명의 떡”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들은 절대로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예배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고해서 굶주림이 즉각 해결 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하루 세 번 공복감을 느끼고 밥을 먹어야 합니다. 심지어 가난 때문에 제 때,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명의 떡”에서 떡을 수식하는 “생명”의 의미를 좀 더 자세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 성경을 기록한 그리스어에는 “생명”을 뜻하는 여러 낱말이 있습니다. 특별히 그 중에서 요한복음에서 자주 등장하며 강조하는 그리스어 단어가 바로 <조에>입니다. 쉽게 풀이하면 “하나님만의, 하나님 고유의 진정한 생명”입니다. 코끝으로 오가는 숨결에 달린 육체의 생명과는 대조되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조에>, 참 생명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 “참 생명의 떡”, 즉 <조에>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주님은 단순히 백성의 생물학적 배고픔만을 해결하는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몸을 가진 인간의 연약한 실존과 현실 속 필요를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겪는 고통과 그것을 채우는 것의 의미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치명적인 굶주림에서 구하는, 사람을 진실로 사람답게 하는 생명을 말씀 하십니다. 도무지 채울 길을 찾지 못해 비슷한 호르몬을 뇌에서 뿜어내게 하려고 필요 이상 꾸역꾸역 배를 불리면서까지 갈구하는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구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보이신 사랑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의 모든 배고픔이 넉넉하게 해결되는 은혜입니다. 그 근거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사랑에 있음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여러 모양의 배고픔으로 고통 받을 때, 그것을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모든 아픔을 먼저 아시고 참으로 먹이시며 돌보시는 주님의 위대한 손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저마다의 굶주림에 관한 관심을 넘어, 온 세계를 넉넉히 배 불리시는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다함께 51절 말씀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사람들을 참된 생명으로 살리시는 예수님의 방법은 바로 십자가임을 다시금 분명히 확인합니다. 마침 어제, 주일예배 시간 우리는 함께 성찬에 참여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가리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입니다. 그 떡이 십자가 위에서 찢겨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보혈의 은혜로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렇게 주님께서 죽임 당하시면서까지 이루시는 구원의 범위를 확인해야 합니다. 바로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특정한 개인이나 민족, 더 나아가 사람만이 아닌 온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 이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모든 세계를 다스리시고 사랑하시며 또 구원하시어 살리시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 개인만의 혹은 교회만의 생명과 구원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 어린 다스림의 대상을 쉽게 단정하거나 제한해서도 안 됩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과 창조 세계를 구별 없이 사랑하시고, 그들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한없이 드넓은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생명과 돌봄이 필요한 모든 사람, 심지어 우리가 멀리하고 배척하는 사람들까지도 기꺼이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이 땅에 가득히 흘러 넘칠 수 있도록 생명을 향한 여정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모든 걸음을 기쁘게 받으시어 주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이루어 가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배 고프십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배고픔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인간은 배를 불리면서 배만이 아닌 영혼 깊은, 존재의 굶주림마저 채우려 몸부림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모든 처절한 배고픔과 목마름에서 구하시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허기와 갈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온 세상을 살리는 참 생명의 떡으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친히 우리를 당신께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 주님 안에서 진정한 배부름과 넉넉함을 발견하시고 누리시길 바랍니다. 또한 여러 굶주림으로 고통당하는 온 세계를 먹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생명의 양식을 전하고 나누는 하나님의 사랑스런 아들, 딸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
자녀의 배고픔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사랑의 주 하나님
살아가며 때때로 여러 모양의 굶주림을 겪습니다. 먹을 게 부족해서, 숱한 좌절과 실패를 겪어서, 자존감이 떨어져서 영혼 깊은 허기를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저희 공허한 몸과 마음을 참으로 넉넉하게 채우시고, 죽음에서 살리시려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위대하고 풍성한 사랑을 찬양합니다. 따스한 품 안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날마다 겸손히 귀 기울이게 하시고, 주님의 높고 깊은 부활 생명을 날마다 기쁨으로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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