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0일 금요일

사도행전 10장 34~48절 “부분을 넘어서는 복음”

2025년 6월 20일, 승리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사도행전 10장 34~48절 “부분을 넘어서는 복음”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새벽을 깨우고 기도의 자리로 모인 성도님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사도행전 10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교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온 세계로 향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만남을 소개합니다. 바로 로마 장교 고넬료와 사도 베드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전혀 알지 못했던 두 사람에게 각각 신비로운 방식으로 다가오셔서 그 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이러한 만남을 통해 베드로가 깨달은 진리를 결론적으로 요약합니다. 34~35절에 함께 읽겠습니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이 때,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신다.’에 해당되는 신약 원문은 ‘하나님은 사람을 부분적으로 보지 않으신다.’로 직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외모” 혹은 “부분”은 직접적으로 민족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랫동안 아브라함의 혈통을 타고난 자신들만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신념이 그들 신앙의 핵심이자 전부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분적으로 보지 않으신다.”라는 베드로의 성찰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깨달음을 안겨 줍니다. 인간이 보기에 전부라고 여기는 것이 실상 얼마나 협소한 인식의 결과인지를 알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아집과 오만을 내려놓고 온 우주와 진리의 참된 전부이신 주님을 더욱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이렇듯 베드로는 고넬료와 신비로운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보다 넓고 깊게 이해하였습니다. 그 깨달음을 가지고 고넬료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내용이 바로 본문 37~43절입니다. 이 일곱 절은 사도행전을 지은 누가가 쓴, 누가복음의 요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복음이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잘 정리 돼 있습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고넬료와 마찬가지로 이방인인 우리가 거듭 귀 기울여야할 복음의 핵심을 잘 담고 있습니다. 오늘 시간 되시면 다시 한번 차근히 소리 내어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먼저 37~38절 함께 읽겠습니다.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베드로는 먼저 세례자 요한의 활동을 소개합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의 사역을 정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성령과 능력을 바탕으로 선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 선한 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위한 치유입니다. 주님은 유대인이나 남자나 부자나 권력자만을 위해, 혹은 당신과 친하고 도움이 되는 사람들만을 고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억압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협소한 기준으로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참된 해방을 안겨 주셨습니다. 이어서 39~41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이어서 베드로는 복음의 핵심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말씀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증인”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비롯한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목격한 증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증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이어지는 42~43절에 기록된 사명과 연결됩니다. 42, 43절 함께 읽겠습니다.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증인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무엇일까요? 바로 “증언”입니다. 인간의 좁은 편견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깨달았다면, 그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참으로 마주했다면, 이 복음 안에 담긴 하나님의 무궁한 뜻을 고백한다면, 주님의 명령에 따라 그분의 권능과 구원을 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으십니까? 우리는 비록 그분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일관된 기록을 통해 주님께서 이 땅 위에서 행하신 삶과 가르침을 발견합니다. 그 안에 담긴 너무나 놀랍고 위대한 구원과 사랑을 느낍니다. 이것은 단지 옛날 어느 훌륭한 한 성인의 업적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진정 살리고 회복시키는 참 생명의 진리입니다.

따라서 베드로를 비롯한 복음의 증인은 자신의 온 삶을 다해 복음을 증언하였습니다. 또한 시대 시대마다 증인들의 증언은 온갖 위험 속에서도 계속 이어져 왔고 마침내 오늘날 우리에게 까지 전해져 왔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는 것과 그것을 증언하는 것은 곧 같은 의미입니다. 믿기만 하고 전하지 않는 다는 것은 모순이며, 그 믿음이 건강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겸손과 지혜로, 삶을 드려 날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처럼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의 가족,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였을 때, 그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44~45절 함께 읽겠습니다.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베드로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모든 사람에게 성령님께서 임재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사건이 여기서 반복되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로마 출신 혹은 로마 문화권 소속입니다. 그런 그들이 유대 사람인 베드로와 그 무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외국어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방 언어로 하나님을 높이는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구원이 분명 유대인의 혈통을 넘어선다는 진리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 전까지 절대로 그럴리 없다고 믿었던, 고넬료와 같은 이방인들에게도 주님이 뻗으시는 능력의 손길이 제한 없이 미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 줍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감격하며 그들을 교회 공동체로 받아들이는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통해 성령 충만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님을 내면 가득히 모시는 “성령 충만”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간절히 구하고 사모해야 할 일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성령 충만에 대한 오해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신비롭고 특별한 체험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은 본질적으로 온갖 경계를 넘어서는 용기를 의미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이 중요한 근거입니다. 성령께서는 인간이 오랫동안 사로잡혔던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과 차별과 멸시를 무너뜨리고, 참된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러한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를 구한다면 마땅히 다른 사람을 외적인 조건으로 평가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학벌과 주거환경과 연봉 등의 유치한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 섬기는 것이야말로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생겨난 교회 공동체는 세례를 통해 믿음을 함께 고백하고, 이 세상과 전혀 다른 포용과 나눔을 꾸준히 실천해야 합니다. 교회의 교회 됨은 결코 크기나 규모에 있지 않습니다. 그 교회 안에 얼마나 힘 있고 유명한 사람들이 모이는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소득이 달라도, 아무리 살아온 환경과 여건이 다르다 할지라도 서로 주저 없이 하나 되어 한 몸을 이루며 화합하는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부디 우리 승리교회가 지금껏 그러했듯이 참으로 더욱 성령 충만한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눈길을 닮아가며 다른 누군가의 부분이 아닌 전체를 바라보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더욱 온전히 이해하고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축원합니다.

기도
만유의 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들이 움켜쥐는 일부분을 넘어 온 우주를 덮는 전체를 향하고 있음을 말씀을 통해 거듭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드넓은 뜻 앞에 날마다 겸손히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을 들은 증인으로서 마땅히 증언하는 복음 전도의 사명을 다짐합니다.
또한 인간의 어리석고 편협한 기준을 넘어서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누리고 전하는, 참된 성령 충만을 이루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