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롭게 되고 있어”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뜻밖의 한자어를 사용했다. 어느 책에서, 혹은 어느 동영상을 보고 따라 한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아빠로서 뿌듯하면서 뭉클했다. 인하가 선물 받은 나노 블록을 조립하는 중에 한 말이다. 굳이 나를 앞에 앉혔다. 혼자서 하기 어렵다고 했다. 여기서 ‘어렵다’라는 의미는 사실 절반만 맞다. 블록 조각을 끼우는 건 어린아이의 작은 손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잘못 끼웠을 때다. 아직 여린 손으로 빼내기 어렵다. 그 ‘수정’을 위해 큼지막한 손을 가진 아빠를 맞은편에 두었다.
제법 고된 역할이었다. 촘촘하게 조립된 블록 조각을 분해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손에 상처도 입었다. 그 대신 아들은 조금씩 블록을 완성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밴드로 감싼 엄지손가락의 미세한 통증을 느끼며 아들에게 물었다. “잘 되고 있어?” 그러자 인하가 내게 대답했다. “응, 순조롭게 되고 있어.”
블록 조립을 시작하며 내게 했던 “어렵다”라는 말처럼, “순조롭다.”도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다. 엄밀히 말해 순조롭지 않았다. 중간중간 설명서와 다른 위치에 블록을 끼웠다가 빼내는 걸 반복했다. 만약 도와주는 아빠가 곁에 없었다면 완성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순조로움’의 밑바탕에 기꺼이 상처를 감수하며 기쁘게 돕는 아빠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 속 한 조각이라도 순조롭게 도울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내 인생 또한 알게 모르게 어긋난 숱한 순간을 바로 잡아준 많은 이들 덕분에 지금껏 ‘순조롭게’ 이어져 왔음을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그 어떤 실패와 좌절도 새롭게 하시며 마침내 순조롭게 하시기 위한 사랑임을 불쑥 깨닫는다.
완성한 블록을 뿌듯한 표정으로 내게 보여준 아들에게 나 또한 나직이, 순간 먹먹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해 주었다.
“맞아, 순조롭게 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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