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7일, 승리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신명기 19장 1~10절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여러 민족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그것을 받고 그들의 성읍과 가옥에 거주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가운데에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4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5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6 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원한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나 두렵건대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
7 그러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기를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하노라
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때
9 또 너희가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의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이같이 하면 그의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장마철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위로를 사모하며 기도의 자리로 모인 성도님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구약 성경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바로 “땅”입니다. 구약에서 땅은 단순한 지형지물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땅은 태초부터 변하지 않고 사람들과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거룩한 피조물입니다. 또한 땅은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할 가장 기초적인 삶의 터전입니다. 특별히 가나안 땅은 주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약속하시고 선물하신 곳입니다. 따라서 땅의 고결한 의미를 탐욕으로 변질시키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일관적인 가르침입니다.
이런 맥락에 따르면 구약에 나오는 살인 금지는 곧, 땅을 피로 더럽히지 말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을 향해 꾸짖으신 말씀은 그러한 땅과 피의 역동적인 관계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창세기 4장 10~12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제 6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라고 엄중히 명령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당신 뜻을 새롭게 이룰 이스라엘이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할 말씀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의지를 더욱 확고히 드러내는 율법이 바로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 기록된 “도피성”입니다. 도피성에 대한 규례는 본문 외에도 민수기 35장 9~34절과 여호수아 20장 1~9절에 무려 두 번이나 더 언급됩니다. 그만큼 이 제도는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확고하게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본문 2~3절 함께 읽겠습니다.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가운데에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도피성 규례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을 기준으로 동편과 서편에 각각 세 곳의 도피성을 정하셨습니다. 그 여섯 도피성의 위치는 이스라엘 전역에 고르게 흩어져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길도 넓게 닦여 있어서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백성 중 의도치 않게 실수로 누군가의 목숨을 잃게 한 사람이 거기로 도망쳐 안전히 숨게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본문은 보다 명확한 이해를 위해,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생생한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5절 제가 읽겠습니다.
5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어떤 사람이 이웃과 함께 숲에 나무를 베러 가서 도끼질한 경우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도끼질을 하다가 도끼날이 자루에서 빠져 곁에 있는 사람을 그만 숨 지게 했습니다. 이 때 그는 전혀 살인을 의도하지도 계획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산업현장에서 비슷한 사건이 간혹 일어나곤 합니다. 엄연히 실수이고 사고입니다.
하지만 세상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앞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사고를 저지른 당사자는 결백하다고 말할지라도 피해자 가족의 심정은 다르기 마련입니다. 순순히 사실을 받아들이고 용서한다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목격자가 없다면 당연히 가해자의 속내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다 도무지 억누르지 못한 분노에 휩싸여 보복하려는 상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복수하려는 유가족으로 말미암아 또 다시 땅을 피로 더럽히지 않도록 도피성을 정하셨습니다. 6절 함께 읽겠습니다.
6 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원한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나 두렵건대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
모세는 실수로 살인자가 된 사람을 향한, 복수심에 불타올라 뒤쫓는 사람을 언급합니다. 그를 가리켜 “그 피를 보복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그는 1차적으로는 피해자의 가족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는 그들에 의해 고용된 살인 청부업자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복수는 치밀하고 집요 합니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주제가 ‘복수’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거창하진 않더라도 복수심에 불타올라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목격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세심한 제도 장치를 통해 더 이상 억울한 피 흘림이 없게 하셨습니다. 사고에 의해 억울하게 살인자가 된 사람을 보호할, 든든한 도피성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묵상해 보면 이 도피성 제도에 담긴 하나님의 더욱 깊은 사랑을 발견합니다. 이 율법은 단지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그 한 사람만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원한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살인을 자행할 지 모르는, 피해자의 가족들을 죄의 유혹에서 지켜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을 끊고, 죽음의 저주가 아닌 생명의 질서를 이스라엘 가운데 굳건하게 세우시려는 주님의 단호한 의지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을 통해 더 이상 땅이 피로 얼룩지지 않고 생명을 싹 틔우는 세상을 이루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탐욕은 그러한 주님의 마음을 외면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조차 분노의 노예가 되어 살기 어린 눈빛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 적개심의 방향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하나의 흐름을 이루어갔습니다. 그 결과, 진리를 외친 수많은 예언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희생의 정점입니다. 주님은 억울하게 피 흘린 사람들의 대표입니다. 참 하나님이시지만 몸소 참 인간이 되신 예수님은 이 세상의 광기 어린 분노에 둘러싸였습니다.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비참하게 죽임 당하셨습니다. 따라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사람의 고통과 무관한, 허공 위의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우리의 모든 눈물과 아픔에 함께 하십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가 위대한 부활 생명을 안겨주었습니다. 십자가는 온 우주 가운데 가장 찬란한, 참된 도피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안에 용서받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 어떤 살인자도, 그 어떤 죄인도 진정한 도피성인 십자가 그늘 아래 쉼과 평안을 누린다는 진리를 부디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와 부활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믿고 따른다면, 피의 보복이 아닌 생명의 질서를 일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먼저 분명히 다짐해야 할 것은 살인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가운데 형법적 의미로서 살인을 했거나 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살인의 의미를 더욱 넓게 풀어 설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1절과 22절 상반부를 화면 보시면서 함께 읽겠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이어서 요한1서 3장 15절에서 함께 읽겠습니다.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예수님과 사도 요한은 ‘살인’의 정확한 의미를 보다 넓고 깊게 알려줍니다. 바로 ‘미움’입니다.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항상 원만할 수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 안에는 상대를 향한 적개심이 담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내면 속 미움을 덜어내기 위해 자신을 늘 살펴야 합니다.
그것은 내 의지와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죄인인 나를 위해 죽임 당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궁무진한 사랑을 가슴 깊이 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내가 얼마나 놀라운 용서를 받았는 지 진심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비록 고되고 힘들지만 다른 사람을 향한 용서의 여정을 걸어갑니다. 용서는 내 신앙을 점검하는 가장 분명한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와 비유를 통해 끊임없이 용서를 가르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누군가의 ‘도피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가혹한 현실을 견뎌내는 사람들의 시원한 그늘이 되어야 합니다. 온갖 멸시를 겪는 사람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의 청량한 샘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은 분명합니다. 바로 십자가가 알려주는 바와 같이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섬기는 것입니다.
주어진 힘을 휘두르고 사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이 기대어 쉴 여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열등감을 감추려, 내면에 공허하게 쌓아 올린 허상을 지워내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 자신을 참으로 마주하고 품어야 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삶의 여러 위협으로부터 숨을 헐떡이며 도망쳐온 누군가를 지켜 보호 할 수 있는 도피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록 그 길이 험하고 지칠 지라도 우리 주님께서 몸소 앞서 가셨음을 명심하며 날마다 새 힘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마다 주어진 삶의 자리를 피로 얼룩지우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씨앗을 파종하는 모두가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신실한 사랑의 주 하나님
분노와 복수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도피성을 세우신 놀랍고 위대한 뜻을 마음에 새깁니다. 십자가에 올라 온 우주의 진정한 도피성이 되신 예수님의 복음을 품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쉼과 평안을 주는 도피성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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