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1일, 승리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사도행전 16장 19~32절 "주 예수를 믿으라"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하나님의 촉촉한 은혜를 사모하여, 황량한 마음을 안고 이 자리에 나아오신 성도님들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한 가지 질문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기에 이 새벽에 잠을 깨우고 예배당에 왔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기에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뻔하고 당연하게 들리는,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이 지닌 무게와 질감을 본문 말씀을 통해 묵직하고 거칠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은 사도행전 16장 1절부터 시작하는 이야기 흐름과 긴밀하게 이어집니다. 바울은 원래 소아시아에 선교하려 하였으나 성령님에 의해 길이 막혔습니다. 그러다 밤에 환상 중에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케도니아 사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뜻에 순종하여 네압볼리를 거쳐 빌립보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역설을 발견합니다. 주님께서 지시하신 곳을 향해 내 의지를 꺾고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편하고 즐거운 순간을 맞이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예상 밖의 시련과 고난을 연거푸 겪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6~18절 제가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어느 날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러 가는 길에 “점치는 귀신들린 한 여종”을 만납니다. 그 여인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무속인이 아닙니다. 자기 뜻대로 점을 치고 복채를 받지 않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노예’입니다. 그녀가 행하는 점술의 실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악한 이들이 그녀의 능력을 알아보고 소유하여 돈벌이로 삼았습니다. 16절의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라는 기록은 누군가를 향한, 성경에 나오는 가장 슬픈 소개입니다.
그런 그녀가 바울 일행을 보고,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며 목소리 높여 외칩니다. 이런 일이 며칠 동안 반복되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여 그 가련한 여인을 사로잡았던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누가 봐도 칭찬받아 마땅한 선하고 옳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뜻밖의 시련이 바울을 덮쳤습니다. 조금 길지만, 본문 19~23절 함께 읽겠습니다.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여종의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치안을 담당하는 관원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들이 위험한 사상을 전파한다며, 자기들 속내를 감추고 고발하였습니다. 그러자 관리들은 바울에게 심한 매질을 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돈을 숭배하는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 지를 확인합니다. 한 여인이 귀신 들려 정신과 의지가 속박당한 채 살아가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입니다. 당연히 많은 관심과 도움을 받아야 할 안타까운 처지입니다. 하지만 그가 귀신으로 인해 점을 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런 그를 이용해 돈 벌 생각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여종이 귀신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은 주인들에게는 암담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부당하게 얻은 많은 돈을 챙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문에 등장하는 익명의 주인들은 한마디로 돈을 구원으로 믿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돈을 향한 욕망에 사로잡힌 채 다른 사람의 존엄과 아픔 따위에는 전혀 관심 두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자신들의 수입을 가로막은 바울에게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품으며 로마 제국의 사법 당국에 넘겨버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무언가를 구원으로 믿고 여기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빌립보 감옥의 교도관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로마 제국 공무원입니다. 로마 질서와 가치관을 철저히 따르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는 황제를 믿고 의지하였습니다. 로마 제국은 그리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지배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 속의 “제우스”와 “포세이돈”을 비롯한 강력한 신들을 “구세주”로 불렀습니다. 로마 황제 역시 그들과 같은 권력으로 백성을 보호하고 돌보는 구세주로 선전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그 간수는 로마 제국 질서의 한 위치를 굳게 지키며, 황제로 대표되는 강력한 힘과 풍요를 구원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그에게 중대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근무하고 있던 감옥에 웬 이교도 둘이 잡혀 왔습니다. 그들은 제국이 허락하지 않은 불법 종교를 전파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내용은 로마 반역범으로 처형당한 이스라엘 시골 갈릴리 사람 예수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진정한 주님이라는 지극히 불온한 사상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의 통치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위험 세력입니다. 따라서 그 교도관은 명령 받은대로 깊은 감옥에 바울과 실라를 가두고, 발에 차꼬를 단단히 채웠습니다. 위대한 로마 제국의 떠받드는 일꾼으로서 맡은 일을 든든히 수행하였습니다. 자기 역할과 신념을 견고하게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뒤흔들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25~26절 함께 읽겠습니다.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한밤 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감옥이 흔들리고 문이 열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죄수들을 묶어뒀던 수갑과 차꼬가 풀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당연히 죄수들이 이 기회를 틈타 달아났을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그것은 곧 교도관으로서 치명적인 업무상 과실입니다. 사형에 처해도 할 말 없는 엄중한 중죄입니다. 그런 까닭에 간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다짐하고 실행에 옮기려 하였습니다. 로마 제국을 향한 그의 확고한 신념을 명확히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그러자 바울은 큰 소리를 질러 그의 행동을 제지 합니다. 모든 죄수가 다 제자리에 있다며 안심시켰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교도관은 등불을 들고 달려가 바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순간 둘의 관계는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더 이상 그에게 로마 반역범이 아니라 진리를 알고 전하는 참된 예언자입니다. 따라서 그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30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지진과 함께 몸도 마음도 함께 흔들린 간수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그는 불과 조금 전까지 황제를 구세주로 믿었습니다. 제국이 보장하는 안전과 그가 베푸는 빵을 구원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날 겪은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구원이 더 이상 구원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세계관이 모두 무너졌습니다. 자기 앞에 죄수로 붙잡혀 있던 그들이 복음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화려하고 웅장한 로마 문명도 답을 주지 못했던, 오랫동안 가슴에 품은 질문을 건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바울은 이렇게 답합니다. 31절 함께 읽겠습니다.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사랑하는 여러분 반드시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나와 우리 가정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뻔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살았던 시대, “구원”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습니다. 그 당시 ‘구원’은 단지 종교적 의미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사람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통치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귀신 들린 여종을 착취했던 주인들에게는 돈이 구원이었습니다. 로마 질서 안에서 기득권을 누린 사람들에게는 제국의 힘과 풍요가 구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라고 외칩니다. 십자가의 희생과 고난이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하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는 세상을 구원하는 부활을 여는 은혜의 열쇠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복음의 생생한 핵심입니다.
부디 마음에 새기시길 바랍니다. 구원의 범위는 절대로 영혼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구원의 영역은 결코 내세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온 몸과 마음은 물론이고 현세와 내세 그리고 온 세계와 우주를 아우르는 다스림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길은 오직, 십자가와 부활을 온 인격과 전존재로 살아내신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믿고 전하는 삶은 좀 더 낮아지고 비우는 섬김을 뜻합니다. 그 길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부르심에 응답하여 바울처럼 예수님을 본받아, 삶의 여러 시련과 고난을 묵묵히 이겨내며 복음을 전하는 모두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설교를 시작하며 꺼낸 질문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저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때로 귀신 들린 여종을 노예 삼았던 사람들처럼 많은 돈이 손짓하는 유혹에 흔들리곤 합니다. 어떨 때는 강한 권력과 높은 지위에 마음이 뺏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만이 진정 온 세상의 주님이심을 이시간 거듭, 마음 깊이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다른 무엇이 아닌 그 놀라운 희생과 사랑을 삶의 견고한 기준과 토대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그런 나 자신과 우리 가정을 주님께서 참으로 구원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구원하시는 주 하나님
귀신 들린 여종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었던 사람들에게서 저희의 어리석은 탐욕을 발견합니다. 제국의 질서에 충실하게 복종했던 어느 한 간수에게서 권력 앞에 흔들리고 선망했던 저희의 우매함을 깨닫습니다.
오직, 죄인을 위해 고난 당하시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온 우주의 참된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그 믿음을 받으시어 진정한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이 놀라운 생명의 복음을 바울처럼, 그윽한 삶의 향기로 힘써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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