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6일 월요일

[영화 리뷰]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Glass Onion: A Knives Out Mystery, 2022) 간략 후기




*약한 스포일러 포함

올해 성탄이 특별히 기다려졌다.
이 영화 공개일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성탄절 밤, 이 영화를 보기로 일찌감치 마음먹었다.
그만큼 전작이 내게 준 감동과 울림이 너무나 컸다.

하지만 정작 넷플릭스를 켜기 전에 망설였다.
개인적으로 급히 끝내야 할 일을 앞두고 사치스럽게 느꼈다.
IMDB 평점은 높았지만 몇몇 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밤늦게 보기 시작했다.
이미 많이 피곤했다.
중간에 몇몇 그냥 잘까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자세를 바로잡고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전편과는 결이 매우 달랐다.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은 같았다.
하지만 1편은 그들과 대조되는 한 인물의 위대한 희생을 보여주었다.
반면 2편은 등장인물들을 압도하는 탐욕스러운 인물의 속살을 드러낸다.
아무리 겹겹으로 둘러싸여도 핵심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유리 양파'와 같은 존재다.

'천재'로 칭송받고 많은 부를 움켜쥐고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열등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허영과 허세에 사로잡혔다.
그 결과 괴물이 되고 말았다.
끝내 철저히 붕괴하였다.

본질적으로 나 역시, 그 악역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 주변 사람들과도 비슷하다.
'황금 젖꼭지'를 탐할 때도 많다.

다만 새삼 다짐하는 게 있다.
앞장서 용기 있게 진실을 드러내진 못하더라도, 거짓에 얽매이진 말자.
참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라도 어울리지 않는 욕망과 단호히 멀어지자.

기회가 되면 나이브스 1, 2편을 연달아 다시 보고 싶다.
그런 여유가 속히 찾아오길 소망한다.

2022년 12월 17일 토요일

신발 모양 어둠 - 심재휘

신발 모양 어둠
- 심재휘
끈이 서로 묶인 운동화 한켤레가 전깃줄에
높이 걸려 있다 오래 바람에 흔들린듯하다
어느 저녁에 울면서 맨발로 집으로 돌아간
키 작은 아이가 있었으리라
허공의 신발이야 어린 날의 추억이라고 치자
구두를 신어도 맨발 같던 저녁은
울음을 참으며 집으로 돌아가던 구부정한 저녁은
당신에게 왜 추억이 되지 않나
오늘은 짙은 노을이 당신의 발을 감싸는 하루
그리고 하루쯤 더 살아보라고 걸음 앞에
신발 모양의 두툼한 어둠이 내린다

심재휘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창비, 2022)

출처: 어플 "시요일"

2022년 12월 7일 수요일

디모데전서 6장 11~16절, “너, 하나님의 사람아”

2022년 12월 7일, 포항제일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디모데전서 6장 11~16절, “너, 하나님의 사람아”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먼저 시 한 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 디트리히 본 회퍼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명랑하고 확고한지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간수들과 대화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사근사근하고 밝은지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불행한 나날을 견디는 내 모습이
어찌나 한결같고 벙글거리고 당당한지
늘 승리하는 사람 같다는데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나
목 졸린 사람처럼 숨을 쉬려고 버둥거리는 나

빛깔과 꽃, 새소리에 주리고
따스한 말과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
방자함과 사소한 모욕에도 치를 떠는 나
좋은 일을 학수고대하며 서성거리는 나
멀리 있는 벗의 신변을 무력하게 걱정하는 나
기도에도, 생각에도, 일에도 지쳐 멍한 나
풀이 죽어 작별을 준비하는 나인데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나인가? 저것이 나인가?
둘 다인가?
사람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자신 앞에선 천박하게 우는소리 잘하는 겁쟁이인가?
내 속에 남아있는 것은
이미 거둔 승리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패잔병 같은가?
 
나는 누구인가?
으스스한 물음이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

출처: 김순현 옮김 <디트리히 본 회퍼>(복있는사람)  

이 시를 이미 한 두 번 쯤은 읽어 보셨을 겁니다. 한 때 유행처럼 널리 알려져서 어쩌면 식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설교 준비를 위해 다시 소리내어 읽으며 새삼 가슴이 먹먹해 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올바른 자기 정체성은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나’, 혹은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닌 “하나님의 소유”임을 새삼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인생을 헤쳐갑니다. 하지만 정작 “나”라는, 그 배의 뚜렷한 실체를 잘 모릅니다. 그저 막막함과 불안함을 가지고 항해를 이어 나갑니다. 때문에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내 안 숨거나 나에게 속으며” 살아갈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를 묻는 것 못지않게, “내가 누구인지?”를 쉬지 않고 질문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입니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깨닫고 내면 깊이 간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며, 그 끝 무렵에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유념해야할 점은 이러한 호칭을 듣는 디모데가 주님을 모르는 불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는 바울의 뒤를 이어 에베소 교회를 섬겼던 신실한 목회자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디모데가 이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울이 엄숙하게 강조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이것은 “거듭 들어야할”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진리를 항상 마음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너무나 뻔하게 들릴지라도 이 복음 안에 담긴 놀라운 은혜를 끊임없이 명심해야 합니다. 여기에 진정한 정체성이 있습니다. 존재 근원이 주님께 있음을 온전히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당신의 소유가 되도록 자기 생명을 모두 내 던지며, 예수님이 안겨주신 사랑의 무게를 묵직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지금 처한 상황과 겉모습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 모두와 상관없이 내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날마다 변함없이 고백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 귀중한 정체성에 담긴 막중한 소명을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 성도는 온 우주 가운데 유일하게 찬양 받으실, 진정한 왕이자 영광의 주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다른 힘과 권력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헛되고 헛된 “성공과 풍요의 사람”이 아닙니다. “인기와 명예의 사람”도 아닙니다. 온 세상을 구하시려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 십자가의 처절한 실패와 절망을 부활 생명과 희망으로 바꾸신 하나님. 당신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가시는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를 향해,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단호하게 당부합니다. 11~12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이 말씀을 “피하라” 그리고 “취하라”, 이 두 개의 동사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먼저 “피하는” 사람들입니다. 정확히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그 대상을 본문 바로 앞에 있는 3~10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10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지켜야할 첫 번째 부르심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을 사랑하는 것을 피하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가난 자체를 결코 아름답게 포장할 수 없습니다. 가난은 분명히 잔인한 고통입니다. 따라서 정당한 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삶을 누리는 것은, 분명 귀하고 선한 일입니다.

대신, “돈을 사랑하고 추종하는 것”을 엄중히 경계해야 합니다. 설령 아무리 많은 헌금과 기부를 한다 할지라도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하나님 대신 돈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그 누구보다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많은 돈을 움켜쥐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짓밟으며, 심지어 신앙마저도 이용하려 한다면, 그것은 다른 그 무엇보다 돈을 따르는 삶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지나치게 소유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나누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은 자기 손에 돈을 들고 있으면서도 그 돈에 이끌리지 않고 살아가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돈 뿐만이 아닙니다. 돈은 탐욕을 대표하는 상징일 뿐입니다. 세상에는 권력과 명예를 비롯해 우리를 유혹하고 굴복시키려는 죄악이 흘러넘칩니다. 그 모두를 단호히 물리치는 것은 무척 힘든 결단을 요구합니다. 본문 12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것은 곧, “믿음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두 번째 명령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영생을 취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생’은 흔히 오해 하듯이, 단순히 무한하게 긴 생명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풍성한 생명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새로운 세대에 속한 참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영생을 취한다.”는 것은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진정한 부활 생명을 붙잡고 살아감을 뜻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생명의 영이신 성령님과 함께 호흡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본을 보이신대로, 이 세상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관련해서 소개하고 싶은 영화 속 한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 대부 3편입니다. 주인공은 악명 높은 마피아 보스입니다. 그는 고위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가톨릭 대주교까지 포함한 비리 문제에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신부 람베르토에게 고뇌를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람베르토 신부가 그를 데리고 작은 분수로 이동합니다. 그 안에 잠겨 있던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돌을 보십시오. 아주 오랜 시간 물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이 전혀 그 안에 스며들지 않았습니다.”
Look at this stone. It has been lying in the water for a very long time, but the water has not penetrated it.

그런 다음, 돌멩이를 깨뜨려 그 속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이 안이) 완전히 말라있습니다. 같은 일이 유럽 사람들에게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세기 동안 그들은 기독교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파고들어 그들 안에 호흡하지 않았습니다.”
Look. Perfectly dry. The same thing has happened to men in Europe. For centuries they have been surrounded by Christianity, but Christ has not penetrated. Christ doesn't breathe within them.

영화 “대부”시리즈에서 가톨릭 성례전은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속한 이탈리아계 마피아는 적어도 공식적이고 외부적으로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들은 살인을 비롯한 온갖 범죄를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비록 그들은 기독교에 둘러싸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돈과 힘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 결과, 영생 복음을 자신들 안에 깊숙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잠시 화면을 멈추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습니다. 깊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극단적인 예지만, 욕망으로 가득한 제 삶이 그들과 본질적으로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제 마음에 떠 오른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앞서 설교를 시작하며 들려드린 시를 지은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님입니다. 그는 무려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교수 자격 취득한 천재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편안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독일은 아돌프 히틀러를 메시아처럼 여기며 숭배했습니다. 심지어 교회역시 악행에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본 회퍼는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서슴없이 히틀러를 비판했습니다. 미국에서 안전하게 피신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끝까지 고난을 함께 겪었습니다. 그러다 사형 당하기 불과 몇 달 전 감옥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이라는 위대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탐욕을 피하고 영생을 취한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담긴 참 생명의 진리를 온 마음 다해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본 회퍼는 어둡고 어둡던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만이 밝힐 수 있는 영롱한 빛을 온 땅에 드러내 보여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복음이 지닌 희망을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절망을 딛고 일어나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그를 통해 다시금 발견하였습니다.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회가 본 회퍼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순교자로 기억하며 진심으로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무 거창하게 듣지 마시길 바랍니다. 본 회퍼 같은 위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친 비장함이 독이 되기도 합니다. 대신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의미를 말씀 가운데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받은 소명의 깊이를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단순히 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기독교라는 제도 종교의 힘을 늘려서 권력을 휘두르게 하려고 죄인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고 당신의 진정한 능력과 영광을 바라보길 원하십니다. 비록 소박하지만 의연한 일상의 헌신을 통해 주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넓혀 가도록, 당신의 자녀들을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사랑하는 포항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단지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 혹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기 보다 오늘날, 주님께서 찾으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위대한 소유격의 사랑 안에 온 마음 다해 안기시길 바랍니다. 그 정체성 가운데 참된 헌신을 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그 선한 싸움에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고 끝내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우리를 소유하셨습니다. 그렇게 참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진정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하며 축원합니다.


설교 후 기도
능력과 영광의 주 하나님
오직 주님만이 우리가 섬기고 따를 진정한 왕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오랜 시간 복음의 샘물 안에 잠겨 살았지만 정작 그 물결을 내면깊이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던 어리석은 욕망을 회개합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참된 부활 생명으로 호흡하길 원합니다. 교만과 탐욕을 멀리하여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온전히 소유하시려,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2년 11월 28일 월요일

[영화 리뷰] "미스틱 리버"(Mystic River, 2003)






* 스포일러 포함

'권선징악'은 역사 이래 가장 열광하는 주제다.

가장 보편적이지만 제일 배신 당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문학 혹은 영화에서 악인의 통쾌한 몰락을 기대한다.

이 영화는 그러한 사람들의 기대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그런 까닭에 엔딩 크레딧을 무거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한다.

그 어떤 영화도 주지 못한 불쾌함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그렇기에 인정하게 된다.

감독의 용기를.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왜 거장인지를, 이 영화가 왜 그의 단연 대표작인지를 인정하게 된다.

그는 사람들이 환호를 자아내는 결말로 향하는 유혹을 거부한다.

대신 단호히 서늘한 현실을 비춰준다.

너무나 비참했고 끝내 비굴했던 데이브의 죽음을 보여준다.

몹시 악랄했고 끝까지 이기적인 지미의 미소를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이 걸작은 내게 호소한다.

데이브를 잊지 말아 달라고, 그가 겪은 비극을 기억해 달라고, 함께 아파해 달라고.

역사 속 수많은 데이브들이 떠오른다.

근래 내 마음을 수없이 소용돌이치게 하는 '선감 학원', '형제 복지원' 희생자들이 대표적이다.

진실을 밝히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길은 여전히 멀다. 이제 겨우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때론 나 역시 지미 같은 악인이 되기도 한다.

다만, 계속, 함께 아파하길 다짐한다.

여전히 어둡고 어두운 비극을 이겨내고 있는 수많은 데이브들의 편에 서길 소망한다.

이렇듯 이 영화는 너무나 불쾌하고 아프기에 진정 걸작 반열에 올랐다.

영화 혹은 예술의 지평을 성큼 넓혔다.

오랫동안 먹먹한 마음으로 기억할 작품이다.

2022년 11월 9일 수요일

요한계시록 11장 18절; 21장 1절 “하늘과 땅을 새롭게”

2022년 11월 9일, 포항 YMCA-YWCA 국제친선주간 연합예배
요한계시록 11장 18절; 21장 1절 “하늘과 땅을 새롭게”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포항제일교회 정대진 목사입니다. 뜻 깊은 자리에 말씀 전하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오늘 설교 본문을 보고 조금 당황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요한계시록은 많은 성도들에게 경계 대상입니다. 그동안 심각한 오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단들이 악용 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본래 상황과 맥락을 무시한 문자 해석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계시록에 기록된 종말 심판을 확고부동한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연구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확실하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굉장히 유별나고 특이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다른 성경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당시 강력한 힘을 휘둘렀던 거대한 로마제국의 실상을 폭로합니다. 황제가 아닌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의 유일한 주님이시라는 위대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다양하고 화려한 상징과 비유를 통해서 1차적으로 로마가 곧 몰락할 것을 선언합니다. 즉, 계시록이 향하고 있는 심판의 최종목적지는 바로 ‘바벨론’으로 언급되는 로마 제국입니다.

이러한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종말 환상 이야기의 절정이 바로 일곱 번째 나팔입니다. 이제 세 번째 재앙이 시작합니다. 너무나 중요한 장면입니다. 소아시아 일곱교회 성도들이 이 책을 낭독하는 것을 들을 때 침을 꼴깍 삼키며 몰입해 들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계시록을 읽는 우리도 집중해야 할 순간입니다.

그런 까닭에 사도 요한은 바로 이 때, 독자들이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을 거듭 들려줍니다. 바로 하늘 어전에 있던 24장로들이 부른 찬양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오늘 함께 읽은 본문 11장 17~18절입니다. 17절 제가 다시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여기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먼저, 과거와 현재를 포함한 모든 시간을 초월하십니다. 또한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즉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이러한 찬양이 오늘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이 처음 기록되고 전해졌던 1세기 교회 상황에서는 절대로 단순하지 않습니다. 제국 반역범으로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가 곧 주님이시라는 외침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습니다.

특히나 역사상 가장 눈부신 제국을 이룬 황제를 주님으로 숭배했던 시대 상황 때문에 고난 받는 교인들조차 움추러 들었습니다. 심지어 신앙을 저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혼란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온 세상의 유일한 주님입니다. 이 복음을 이 시간, 다시금 마음 깊이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황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내 삶의 진정한 통치자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시길 소망합니다.

따라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러한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대상입니다. 18절, 제가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마지막 문장들 한 번 더 읽어드리겠습니다.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18절의 문장 구조를 주목해야 합니다. 신약 원문도 순서가 거의 비슷합니다. 먼저 전반부에 주님의 진노와 심판을 선언합니다. 그런 다음에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상을 노래합니다. 이 자체로 상과 심판이라는, 충분한 완결성을 가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접속사 ‘또’, 혹은 ‘그리고’가 굳이 등장합니다. 심판 받을 무리에서 특정 사람들을 떼어서 분명히 언급합니다. 게다가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 시킨다는 언어 기교를 사용하였습니다. 헬라어 원문도 같은 어근의 단어를 두 번 변형해 사용했습니다. 이토록 요한계시록이 엄중하게 심판을 경고하는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요? 바로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관련해서 요한계시록이 “땅”에 대해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헬라어로 땅을 <게>라고 부릅니다. 이 단어가 마태복음 27회, 마가복음 9회, 누가복음 16회, 요한복음 4회, 사도행전에서 18회 나옵니다. 모두 합하면 74번입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땅이라는 말이 몇 번 언급될까요? 무려 82번입니다.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합한 것보다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거칠게 정리하자면, 요한계시록에서 땅은 단순하게 자연 중 일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생태질서 전체를 대표합니다. 그러한 땅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심판의 가장 처참한 피해자가 됩니다. 관련해서 계시록 16장 1절 읽어 드리겠습니다. 

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자세히 읽지는 않겠지만 요한계시록 16장은 일곱 대접 심판을 묘사합니다. 그 대부분은 환경 파괴와 연결됩니다. 더 이상 생태 질서가 유지 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감탄한 창조세계는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세상은 도무지 사람들이 살만한 곳이 못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땅에 일곱 대접이 쏟아진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요? 자연이 심판 대상일까요? 역사가 끝날 때 환경이 어쩔 수 없이 파괴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설교를 시작하며 말씀 드렸듯이 계시록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해 운명론으로 오해한 결과입니다. 

죄는 인간이 지었습니다. 땅을 포함한 자연 질서는 인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심판에 희생 당한 것일 뿐입니다. 그런 까닭에 24장로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에게 멸망이 있습니다.”

앞서 했던 질문을 다시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직접 해당되는 사람들은 분명합니다. 바로 로마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 제국의 몰락을 우선 겨냥합니다. 특히나 17장에 기록된 큰 성 바벨론에 대한 여러 묘사들은 단연코 그 시대 일반적으로 이해했던 로마에 대한 상징들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가 영원하듯이 주님의 심판 경고도 한 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여전히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며 심판하시는 오늘날의 로마를 분별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분간해야 합니다. 현재 급속도로 진행되는 기후 위기에 두려움을 가지고 적극 대처해야 합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너무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당신을 여실히 드러내셨습니다. 따라서 자녀들의 잘못을 찾아내고 벌주기 위해 눈에 불을 켜지 않으십니다. 드넓은 은혜 가운데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주십니다. 그 놀라운 사랑을 역사의 마지막에 반드시 완성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당신의 공의 또한 분명히 세우십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것을 절대로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무너져 가는 생태질서를 결코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분노하고 심판 하십니다. 주님의 뜻을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중요한 점은 그러한 역사 종말이 하나님의 진노로 끝나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심판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완성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 다시 한번 다같이 읽겠습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사도 요한은 역사의 마지막에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처음 하늘과 땅과 바다는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물질적인 개념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새 사람이 됩니다. 이 때, 그 전의 몸은 완전히 사라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형체는 그대로지만 하나님 안에서 그의 전 존재가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 질서가 파괴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마치 잘못 구운 도자기를 가지고 도예가가 그러하듯이 마음에 안 든다고 깨서 버리지 않으십니다. 진정한 새로움의 근원이신 주님 품 안에서 하늘과 땅을 완전히 새롭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당신의 뜻 가운데 우리를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생태계를 지켜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심판을 두려워 해서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끝내 이루고자 하시는 가장 간절한 소망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하려 하지 않으십니다. 그 경고를 듣고 뉘우치고 돌이켜 당신의 창조질서를 회복시키길 바라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지금 이 곳에서, 바로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길 원하십니다.

그렇지만 이런 다짐 가운데 무력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너무나 연약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환경 보호를 위한 여러 실천을 결심하지만 금세 좌절하곤 합니다. 개개인의 작은 걸음이 대체 거대한 기후 위기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회의감에 사로잡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분명 사실입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거듭 명심해야할 복음이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은총 아래서, 하나님께서 극복하지 못할 절망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을 거듭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걸음을 맞추어야 합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온갖 종류의 불의와 폭력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새 하늘과 새 땅을 끝내 이루실, 주님의 참 생명이 우리를 통해 온 세상에 가득히 흘러넘칠 줄 믿습니다.

그 믿음 따라 담대히 걸음을 내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생명의 주 하나님
주님께서 선하신 뜻 가운데 지은 아름다운 창조 세계가 인간의 탐욕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급속한 기후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땅을 망하게 한 어리석은 죄악을 회개합니다. 하지만 끝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주님의 손길을 바라봅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놀라운 창조의 능력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생태 질서를 다시금 아름답게 만들도록 헌신하는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참사가 있었습니다. 무려 156명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갑자기 잃은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부상 당한 149명이 속히 치유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건을 목격하고 후유증을 겪는 이들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포항 YMCA와 YWCA가 지금껏 그러하였듯이 앞으로도 더욱도 주님의 공의와 정의를 이루는 데 앞장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시는 이들 가운데 한 없는 은혜와 평화를 덧 입혀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참고자료
안용성 [두 이야기가 만나다](새물결플러스)
구기정 "생태학적 관점에서 본 요한계시록의 땅 이야기"(신약연구 제 12권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