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9일 토요일

신명기 21장 1~23절 "한 사람의 죄, 공동체의 속죄"

2018년 6월 7일, 목,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정대진 목사
신명기 21장 1~23절 "한 사람의 죄, 공동체의 속죄"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2 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3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4 그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5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6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7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8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9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10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손에 넘기시므로 네가 그들을 사로잡은 후에 11 네가 만일 그 포로 중의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12 그를 네 집으로 데려갈 것이요 그는 그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고 13 또 포로의 의복을 벗고 네 집에 살며 그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한 후에 네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의 남편이 되고 그는 네 아내가 될 것이요 14 그 후에 네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마음대로 가게 하고 결코 돈을 받고 팔지 말지라 네가 그를 욕보였은즉 종으로 여기지 말지니라 15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16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지난 화요일에 말씀드렸듯이 구약 성경에서 땅은 피조세계 중에서도 각별하게 거룩한 의미를 가집니다. 따라서 그 땅을 피로 더럽히는 살인은 하나님께서 무척 분노하시는 끔찍한 죄악입니다. 그런 까닭에 앞서 신명기 19장 1~13절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주님께서는 생활 속에서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사고로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생명을 뺏은 사람이 복수를 당해서 또 다른 피흘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피성을 정하셨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21장 본문 중에서 1~9절은 그러한 도피성 율법과 짝을 이루어서 살인을 경계 하시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단락은 범인을 알지 못한 채 살해된 시신을 발견한 경우를 가정합니다. 이는 매우 끔찍한 상황입니다. 동시에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비극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켜야할 율법을 엄중하게 명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피 흘림을 물리치시려는 당신의 확고한 의지를 우리는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본문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주목해야할 것은 책임과 해결의 주체입니다. 2절에 따르면, 빈들에서 피살된 시체를 발견되었다면 먼저 장로들과 재판장들이 현장으로 가야합니다. 이 때, “장로”는 잘 아시다시피 각 마을 공동체의 주요 결정에 참여하는 어른을 가리킵니다. 

반면 “재판장”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와 같은 단어로서 직역하자면 “재판하는 사람”입니다. 사극에 나오는 조선시대 마을 원님을 떠올려보시면 이해하기 쉬우실 겁니다. 오늘날과 달리 삼권분립이 되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서 행정과 입법과 사법은 함께 움직였습니다. 따라서 본문 속 재판장은 단순히 재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치지도자입니다. 또한 이들은 지역 원로인 장로들과는 달리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중앙정치 체제 안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5절에 보면 이후 진행하는 속죄 의식에 이스라엘의 신앙을 주관하는 지도자 들인 제사장들도 참여합니다.

그렇다면 살해당한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 장로들과 재판장들과 제사장들이 함께 관여한다는 것은 이 비극이 지역 공동체나 중앙정치 혹은 종교체제 중 어느 한 쪽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이스라엘 국가 공동체를 이끄는 주요 세력 전부가 해결에 앞장서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 모두 억울한 죽음을 미리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평안의 질서를 이룩해야 합니다.

마침 지방선거를 한 주 앞두고 있습니다. 건강한 민주정치는 중앙정부만의 몫이 아니라 지방정부도 함께 이루어가야 할 책임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민주시민인 우리는 이를 위해 중앙과 지방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바람직한 정치가 구현되도록 신앙의 눈을 통해 지속적으로 감시와 견제를 해야 합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당회를 너무나 훌륭한 장로님들이 섬기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합니다. 하지만 당회만으로는 건강한 교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 구석구석을 섬기시는 제직부서와 교회학교가 함께 협력하여 선을 이룰 때 보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죽음의 온갖 위협을 이겨내고 생명의 복음을 보다 향기롭게 전하는 우리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이어지는 구절들은 살인으로 벌어진 비극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의식을 소개합니다. 이 의식은 시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성읍이 책임을 집니다. 그 마을 장로들은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아직 멍에를 메지 않은 어린 암송아지를 데리고 가 죽여야 합니다. 이 모두는 더러운 죄에 물들지 않은 완벽한 정결을 의미합니다. 이 때 장로들은 죽은 송아지에 손을 얹고 이렇게 증언해야 합니다. 본문 7~8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이 사람이 살해되는 현장을 목격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속량하여 주신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에게 무죄한 사람을 죽인 살인죄를 지우지 말아 주십시오.”

그들은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물론 그들 중 실제 살인자가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죄를 고백하는 까닭은 살인은 단순히 한 사람의 잘못으로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무죄한 사람이 피를 흘리는 것은 곧 그 지역 공동체가 죄악으로 병든 결과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약 20년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탈옥수 신창원의 이야기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온갖 범죄를 저질렀고 급기야 강도행위를 하다 살인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 후 탈옥하여 무려 2년 6개월이나 도피생활을 하며 범죄를 계속 저질렀습니다. 그가 다시 붙잡힌 후 자신의 변호사에게 남긴 말은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토로하였습니다.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 번만 쓸어 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이 새끼야, 돈 안 가져 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하고 소리 쳤는데 그 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모범생으로 자랐습니다. 이러저러한 잘못은 종종 저질렀지만 크게 사고를 치거나 파출소에 가본 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 개인의 도덕성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비록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이었지만 범죄에 덜 노출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굳이 상세한 통계를 드리지 않더라도, 동일한 조건의 경우 빈민가 아이들이 상류층 아이들보다 범죄율이 훨씬 더 높다는 사실과 그 인과관계를 충분히 잘 아실 겁니다.

그렇다면 살인을 비롯한 각종 흉악한 범죄가 벌어졌을 때 단지 가해자만을 비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론 당연히 그 죄에 상응하는 형벌은 엄중하게 내려져야 합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 범죄가 벌어지도록 방치 했던 공동체의 무관심과 불의를 두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는 살인의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닐지 몰라도 넓은 의미의 방조자, 혹은 동조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 7절은 용서를 구하는 이스라엘을 가리켜 “주의 백성”이라고 두 번이나 수식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종종 범죄하고 타락한 모습을 보일지라도 출애굽이라는 위대한 구원을 경험했고 이후로도 경험해 갔던 이스라엘처럼, 때때로 폭력과 죄악의 유혹의 빠지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 아래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복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난 군중들 앞에 손을 씻으며 나는 죄가 없노라고 뻔뻔하게 책임을 회피한 빌라도의 잘못을 단호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그 대신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임 당하신 예수님처럼 평화로운 부활 공동체를 온 세상에 세우기 위해 이 땅 곳곳에서 들려오는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모두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