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9일 토요일

신명기 22장 1~12절 "삶의 한 복판에서"

2018년 6월 8일, 금,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정대진 목사
신명기 22장 1~12절 "삶의 한 복판에서"

1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2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또는 네가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려 줄지니 3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형제가 잃어버린 어떤 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 본 체하지 말 것이며 4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 5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 6 길을 가다가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의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보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7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되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8 네가 새 집을 지을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 9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10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11 양 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12 너희는 너희가 입는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


기독교 신앙은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인간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유일하신 구세주로 고백합니다. 따라서 믿음을 허공위에 붕 뜬 막연한 관념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합니다. 그 대신 사람으로 살아가며 경험하는 온갖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구약성경, 특별히 그 중에서 모세오경을 이러한 시각에서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살아갈 길을 알려주시며 모호한 종교생활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유한한 몸을 가진 존재로 경험하는 치열한 삶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 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먼저 본문 1~4절은 이웃의 재산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형제”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단어는 1차적으로는 동일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가족을 가리키지만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온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본문 속 형제는 가까운 이웃으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웃의 소나 양이 길을 잃은 것을 발견하였을 때 못 본 체 하지 말고 돌려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어서 2절은 소와 양을 잃은 이웃이 멀리 살거나 혹은 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때는 집에 잘 두었다가 찾아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3절은 나귀나 의복의 분실도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4절은 이웃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졌을 때 못 본 척 하지 말고 반드시 도와주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십계명 중 “도둑질 하지 말라”는 여덟 번째 계명과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열 번째 계명을 적용하는 구체적인 판례입니다. 그런데 사실 1절만으로도 나머지 내용들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구약 율법의 놀라운 특징은 그 뜻을 집요할 정도로 자세한 예를 들어 입체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주님께서 명령하시는 바는 분명합니다. 신성한 노동의 대가로 정당하게 얻은 소득 외에 이웃의 소유에 함부로 손을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말씀 앞에 아니라고 대답하실 분은 거의 없으실 겁니다. 유치원 때부터 배운 지극히 기본적인 도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타인의 손해를 전제로 어마어마한 불로소득을 얻을 기회가 찾아온다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저를 포함해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참된 신앙이 드러납니다. 비록 사람들은 보지 못했으나 하나님은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손에 쥐는 돈의 성격을 차분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비록 직접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혹시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착취한 결과는 아닌지 조심스럽게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조금 더 손해보고 나누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본문 5절은 이성의 옷을 입는 것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가증한 행동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그 시대의 복잡한 상황을 배경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이 구절이 단순히 의복 생활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고대 중동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혼잡해진 문화를 경계하라는 의미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5절은 자연스럽게 9~11절과 이어 집니다. 먼저 9절은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10절은 소와 나귀를 함께 묶어 밭을 갈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또한 11절은 양 털과 베실을 섞어 짜서 옷을 만들지 말라고 지적합니다. 

이 석 절도 5절과 마찬가지로 문자적인 내용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정 마음에 담아야 할 것은 그 이면에 담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순전히 섬기지 않고 우상숭배와 혼합하는 삶의 태도를 향한 질책입니다.

전쟁 중 눈에 확연히 띄는 적 보다 더 무서운 상대는 교묘하게 모습을 감춘 내부의 적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을 방해하는 가장 위협적인 대상은 타종교가 아닙니다. 어느새 슬그머니 자리 잡은 혼합 신앙입니다. 우리는 이를 물리치며 정결한 신앙을 바르게 세우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유일한 기준은 다름 아닌 십자가입니다.

그렇다면 본문 말씀을 통해 스스로에게 정직히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본받아 섬기고 낮추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혹시 나의 성공과 명예를 위해 신앙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비록 이성의 옷을 입지 않고, 씨앗을 섞어 뿌리지 않고, 다른 종류의 동물들을 같이 밭 갈지 않고, 털과 실을 섞어 옷을 만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는 혼합신앙의 모습을 따르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신앙으로 돌이켜 나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본문 6~7절은 새 둥지에서 어미 새와 아기 새를 동시에 데려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를 사냥하는 것 자체를 금지 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탐욕을 절제하며 생태질서를 보호할 것을 구약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성경을 사람 중심으로만 읽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세기 1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피조물 중에 사람에게만 당신의 형상을 두시고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사람만을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선택받은 피조물인 인간만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길 바라십니다. 바로 그 사명을 위해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더욱 가속화되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할 책임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8절 말씀은 새 집을 지을 때 난간을 만들어 추락 사고를 방지하라는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히 있어야할 난간을 두지 않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바로 돈입니다. 어느 시대나 안전장치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돈이 들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건물을 지을 때 돈을 아끼기 위해 안전을 소홀히 하려는 유혹에 사람들은 쉽게 빠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대신 돈을 선택한 끔찍한 결과를 우리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를 비롯한 각종 참사를 통해 가슴 아프게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8절 말씀을 통해 그 어떤 경우에도 이익보다 생명을 우선하여 억울하게 흘린 피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열 두절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이웃의 재산, 각종 혼합 문화, 생태계 보호, 생활 안전 등 각종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 삶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듭 말씀드리지만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막연하고 모호한 종교 언어들만을 늘어놓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기독교 신앙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현실의 여러 도전들 앞에 진실한 믿음으로 응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자면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너무나 버겁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참 하나님이시지만 몸소 참 인간이 되셔서 피와 땀으로 얼룩진 땅을 밟고 살아가신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우리의 모든 문제와 좌절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한 주님의 한없는 은혜를 의지하여 오늘 하루도 이웃의 재산을 탐내지 않고 타락한 혼합문화의 유혹 이겨내고 자연 질서를 지켜 보호하고 돈보다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기는 모두가 되시길 온 마음 다해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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