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9일 토요일

신명기 18장 15~22절 “부르시고 보내시는 하나님”

2018년 6월 4일, 월,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정대진 목사
신명기 18장 15~22절 “부르시고 보내시는 하나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16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
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20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21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22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길 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깊은 뜻에 감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더욱 주님과 눈을 마주치기 원합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을 직접 뵌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태양을 가까이 할 때 아무리 거대한 행성도 타들어가 없어지는 것처럼 유한하고 상대적인 인간은 전능하시고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로 이와 같은 경험을 하나님과 거룩한 언약을 맺기 위해 올라간 시내산 위에서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9장 16~19절을 보면 시내산 위에 천둥과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가득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에서 모세는 바로 그 사건을 회상하였습니다. 그 때, 그들이 무서움에 사로잡혀 주님께 간곡히 부탁한 내용이 무엇인지 본문 16절 읽겠습니다.

16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이것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기 원하지만 막상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마주하는 것은 커다란 소리와 거대한 불로 말미암은 공포입니다. 연약한 인간인 우리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사이에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어마어마한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께서 때때로 우리와 거리를 두시며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서 감추십니다.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는 단지 당신의 모습을 감추기만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대신 또 다른 은혜로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걸어오십니다. 바로 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우리 가운데 세우셔서 그를 통해 말씀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18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여기서 “선지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곤충을 가리키는 우리말 <나비>와 동음이의어입니다. 이 단어는 “부르다”라는 뜻을 가진 아카드어 <나부>에서 유래되어 “부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성경 속, 이들의 활약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마디로 “말씀을 맡은 사람들”, 즉 “예언자”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모세와 같이 당신의 말씀을 맡은 예언자들을 이 땅에 계속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예언자를 통해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거짓 예언자들의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참된 말씀을 온전히 전하시려 마침내 중요한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그 결과, 그 스스로가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유일하게 참된 예언자로 살아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무엇이 아닌 예수님을 통해 온전하고 완전히 이 땅에 찾아왔음을 마음에 새기시길 바랍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바로 이를 위해 우리 모두는 이 시대의 모세와 같은 예언자로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이 땅에 의미 없이 우연히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을 맡은 자로, 예언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보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늘 예언자로서의 자긍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시며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맡은 예언자로 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예언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를 명심해야 합니다. 20절 제가 읽겠습니다.

20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먼저 당신이 하시지도 않은 말을 멋대로 주님의 이름을 걸고 전하는 것을 엄하게 꾸짖고 계십니다. 여러분,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 할 때 신중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평생 하나님의 뜻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죽는 날까지 알아가는 과정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십계명 세 번째 계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경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예언자들이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경고하고 계십니다. 아마도 이런 경고가 여러분과 그리 상관없다고 생각이 들 겁니다. 우리 가운데 불교나 이슬람으로 개종해서 성불을 권하거나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칠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절 말씀을 단순히 타종교의 신을 섬기는 의미로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본문 말씀의 깊은 의도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대 중동사회에서의 종교는 오늘 우리보다 훨씬 더 깊숙이 생활양식에 자리 잡아 정신을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당시의 다른 종교들은 야훼신앙과 철저히 달랐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그 시대 이스라엘 주변 종교들은 돈 많고 강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약한 사람들을 억누르는 것을 동조하였습니다. 반면 구약의 야훼신앙은 탐욕에 눈이 멀어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엄하게 꾸짖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선언 했습니다.

따라서 그때, 하나님 대신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종교의 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대신에 돈의 이름을 더 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대신에 학벌을 들먹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대신에 높은 자리의 이름을 욕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제 아무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고 큰 소리 쳐도 눈에 보이는 성공에만 매달린다면, 결국 하나님의 매서운 질책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꼭 마음 깊이 새기길 바랍니다. 대신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하나님 나라의 정신 그대로 더욱 이웃을 섬기고 낮아지는 삶의 방식을 굳건히 지켜내시며 참된 희망을 호흡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른 다는 것은 그 분과 더욱 가까워지길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갈망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자이신 주님과 마주설 수 없는 분명한 한계를 지닌 인간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예언자들을 보내셨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참 예언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이 시대의 또 다른 예언자로 부르시며 말씀을 맡겨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신비를 날마다 더욱 깊이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스스로에 대해 보다 온전히 이해하며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다가오시는 방식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풍성히 깨달아 아는 모두가 되기를 마음 다해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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