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9일 토요일

신명기 22장 13~30절 "결혼과 가정의 거룩함을 위하여"

2018년 6월 9일, 토,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정대진 목사
신명기 22장 13~30절 "결혼과 가정의 거룩함을 위하여"

13 누구든지 아내를 맞이하여 그에게 들어간 후에 그를 미워하여 14 비방거리를 만들어 그에게 누명을 씌워 이르되 내가 이 여자를 맞이하였더니 그와 동침할 때에 그가 처녀임을 보
지 못하였노라 하면 15 그 처녀의 부모가 그 처녀의 처녀인 표를 얻어가지고 그 성문 장로들에게로 가서 16 처녀의 아버지가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내 딸을 이 사람에게 아내로 주었더니 그가 미워하여 17 비방거리를 만들어 말하기를 내가 네 딸에게서 처녀임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나 보라 내 딸의 처녀의 표적이 이것이라 하고 그 부모가 그 자리옷을 그 성읍 장로들 앞에 펼 것이요 18 그 성읍 장로들은 그 사람을 잡아 때리고 19 이스라엘 처녀에게 누명을 씌움으로 말미암아 그에게서 은 일백 세겔을 벌금으로 받아 여자의 아버지에게 주고 그 여자는 그 남자가 평생에 버릴 수 없는 아내가 되게 하려니와 20 그 일이 참되어 그 처녀에게 처녀의 표적이 없거든 21 그 처녀를 그의 아버지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서 악을 제할지니라 22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23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24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25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으면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 26 처녀에게는 아무것도 행하지 말 것은 처녀에게는 죽일 죄가 없음이라 이 일은 사람이 일어나 그 이웃을 쳐죽인 것과 같은 것이라 27 남자가 처녀를 들에서 만난 까닭에 그 약혼한 처녀가 소리질러도 구원할 자가 없었음이니라 28 만일 남자가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만나 그를 붙들고 동침하는 중에 그 두 사람이 발견되면 29 그 동침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를 아내로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30 사람이 그의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여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내지 말지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정”은 한 국가의 토대를 이루는 가장 소중한 공동체입니다. 각 가정이 얼마나 화평을 누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가화만사성”이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같은 문장을 통해 가정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거대한 대가족을 이루었기 때문에 한 가족의 문제는 곧바로 그들이 속한 가문과 지파, 더 나아가 온 나라의 문제로 금세 확대되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가정을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십계명 중 제 칠 계명, “간음하지 말라”를 비롯해 구약 곳곳에서 각종 율법을 정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3~21절은 부부 사이의 갈등에 대해 다룹니다. 어느 남편이 결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를 마음에 들지 않아하며 헤어지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가 택한 방법은 비겁하게 누명을 씌우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처녀가 아니라고 비방을 하고 다녔습니다. 

요즘 시대에도 이른바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여성으로 공동체 가운데 낙인찍힌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하물며 여성을 천대하던 고대 중동 사회에서 그러한 악평은 곧 사회적 살인 행위입니다. 설령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불미스럽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해당 여성과 그녀의 가족으로서는 무척 힘겨운 상황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스스로 명예를 보호할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5절에 따르면 “처녀인 표”를 성문에 있는 장로들에게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첫날 밤 처녀막이 파열된 혈흔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대부분입니다. 당시 첫날 밤 침실에 깔았던 천을 신부의 부모가 보관했던 풍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경 연구의 권위자인 고든 웬함은 “처녀”를 뜻하는 히브리어 <브툴림>이 ‘사춘기 여자’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처녀인 표”이란 사춘기 여자의 표적, 즉 월경을 뜻한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둘 중 확실한 정답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간에 이 단락에서 중요한 점은 억울하게 모함당한 여성의 부모들에게 반론 기회를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결백이 입증되면 성읍 장로들은 그를 때리고 벌금을 받는 처벌을 하였습니다. 이는 여성 인권을 철저히 무시했던 당시 문화를 염두에 두면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25~27절은 여성을 강간한 남성에 대한 형벌을 소개합니다. 생각하기도 끔찍한 상황이지만 만약 어떤 남자가 어느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강간했다고 율법은 가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 “들”로 옮긴 히브리어 <사데>는 개간하지 않아서 풀이 무성한 한적한 땅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남성의 무시무시한 폭력에 저항하지도 도움을 구하지도 못한 채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향해 26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처녀에게는 아무것도 행하지 말 것은 처녀에게는 죽일 죄가 없음이라” 사실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그 여인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몹시 두렵고 고통스런 범죄의 피해자일 뿐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범죄 피해자를 향한 노골적인 2차 범죄가 적지 않게 일어납니다. 엄연한 피해자를 마치 가해자처럼 취급하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물며 신명기가 기록되고 편집될 당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자주 일어났던 일입니다. 가해자인 남성을 두둔하고 도리어 피해자인 여성을 비난하는 상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 율법은 그 남자는 단호히 사형에 처하고 여성은 무죄하다고 판결합니다. 이는 앞서 살펴본 13~21절 말씀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 남성우월주의 문화에 비추어볼 때 분명 매우 파격적인 선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율법들을 통해 당시 천대받던 여성들을 향한 주님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본문 안에도 여전히 한계와 아쉬움은 녹아있습니다. 우선 성적 순결을 여성에게만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20~21절을 보면 남편이 아내의 순결을 의심할 때 처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녀는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또한 23~24절은 약혼자가 있는 처녀와 다른 남자가 성읍 안에서 동침할 경우 둘 다 돌로 쳐 죽이라고 명하는데 단지 소리를 질러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간의 가능성은 전혀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분명히 현대인의 시선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이렇듯 종종 접하는 과격한 내용들 때문에 사람들이 구약성경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심지어 구약의 하나님을 부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아마도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꼭 명심해야할 사실은 성경은 하늘에서 툭하고 떨어진 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기록되고 최종 정리될 당시의 치열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그 시대의 문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윤리로는 납득하기 힘든 거친 표현들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굳이 미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본뜻을 놓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 건강한 가정 공동체의 확립입니다.

고대 중동의 우상 숭배가 가진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성적 타락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성전에는 신전 창기들이 있었고 그들과 성관계를 맺는 것이 제사의 일부였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매혹적이었고 동시에 위험했습니다. 성의 문란의 곧 가정 파괴로 이어졌고 이는 더 나아가 이스라엘 국가 공동체를 파탄으로 몰아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문 말씀의 진정한 의도는 단순히 성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잔인하게 벌을 내리는데 있지 않습니다. 거룩하고 구별된 이스라엘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도록 화목한 결혼생활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문화는 몇 년 사이에 급격히 개방되었습니다. 지나친 정죄와 엄숙주의를 벗어난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너무나 멀리 선을 넘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각종 미디어를 통해 마음 무겁게 확인하게 됩니다. 그 결과 책임 있는 가정을 이루고 아름다운 생명을 잉태하고 인격적인 깊은 교감을 나누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성 생활이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만 전락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또한 그만큼 가정이 쉽게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마음에 경종을 울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정을 더욱더 소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부부 간에 보다 더 사랑을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부모님과 자녀들 그리고 형제자매들 사이에 어느 샌가 벌어진 틈을 십자가의 은혜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각 가정 가운데 따뜻이 함께 할 줄 믿습니다. 또한 그 가정들로 모인 우리 교회와 대한민국이 보다 더 평안하고 건강해 질 줄 믿습니다. 그 믿음 따라 날마다 가정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의 씨앗을 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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