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5일, 금,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데살로니가전서 4장 1~12절 "거룩함과 사랑의 조화"
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당시 문화에 따라 정교한 구조의 편지로 교회를 향해 복음을 설명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두드러지는 특징은 전반부에는 교리에 대해 설명하고 후반부는 그리스도인의 윤리에 대해 당부한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함께 읽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은 이 편지 후반부의 시작으로서 교인으로서 가져야할 참된 삶의 태도에 대해 보다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바울의 견해가 그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2~3절 다시 한 번 다같이 읽겠습니다.
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바울은 성도로서 바른 윤리의 근거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단지 머리로만 잘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구체적인 삶의 실천으로 이어가길 바라십니다. 따라서 믿음과 삶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바로 믿어야 바로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온전한 삶이 신앙을 건강하게 합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여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사도는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바울은 한 가지 덕목에 집중합니다. 바로 ‘거룩함’입니다. 이 역시 그 혼자만의 생각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데살로니가전서가 신약성경 중 가장 먼저 기록된 책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이 때는 ‘신약 성경’이라는 개념 자체가 교인들에게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여전히 성경은 곧 구약이었습니다. 그 구약성경의 토대는 바로 모세오경이고 그 중에서도 핵심은 레위기입니다. 그리고 그 레위기의 중심주제는 분명 거룩함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교인들에게도 충분히 익숙한 진리였습니다. 이를 통해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구약 성경과 긴밀하게 이어져 있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유대인들이 공격하듯이 예수님과 자신이 구약을 무시하고 폐기하지 않았음을 변호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시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왜곡된 ‘거룩함’의 본질을 되찾아 알려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상의 회복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거룩함을 실천할 무궁무진한 영역 중에 바울이 ‘성윤리’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는 사실입니다. 4~5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앞서 같이 읽은 3절 후반부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바로 교회의 ‘거룩함’이라고 말한 후 곧바로 ‘음란을 버리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어서 다시금 ‘거룩함’을 말하고 여기에 ‘존귀함’을 덧붙여 아내를 대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이것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로 여겼던 당시 로마제국의 가부장적인 문화에 비추어 보면 굉장히 파격적인 주장입니다.
이를 통해 “음란을 버리라”는 바울의 말은 단순히 특정 성행위 여부에 대한 지적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가정으로 대표되는 일상의 영역에서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다스리라는 명령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을 거쳐 예수님과 사도를 통해 명하시는 거룩함의 핵심은 바로 일상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막연하고 관념적인 순백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를 억누르는 인위적인 결백을 강요하지도 않으십니다.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가장 구체적이고 치열한 희생과 섬김과 나눔을 바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원하시는 거룩함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오늘날 여전히 참된 경건과 성결에 대한 오해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신앙생활의 한 덕목에 대한 흠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주님의 뜻에 대한 왜곡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내면을 파괴하고 주님을 오해하게 만드는 위험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쉬운 예로 이른바 신앙 좋은 사람의 모습을 상상으로 그려보시길 바랍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금을 철저히 드리는 사람을 떠올리실 겁니다. 여기에 더해 교회에서 각종 봉사를 성실히 하고 술, 담배 따위는 절대 입에 대지 않고 매사 반듯한 행실을 지킨다면 누구나 그를 가리켜 정결한 사람으로 칭찬할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제가 방금 설명한 내용들은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살아 숨 쉬는 율법주의의 놀라운 마력을 발견합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보이지 않은 신비한 신앙의 영역을 당장 자신들의 감각으로 쉽게 느낄 수 있는 무언가로 바꾸길 원합니다.
물론 꾸준한 기도와 말씀 묵상과 같은 경건의 훈련은 너무나 귀하고 소중합니다. 절대로 무시하거나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신앙 행위를 통해 탐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에 다가서기보다는 다른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내세우고자 한다면 그것은 결국 얄팍한 종교생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결국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안기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려는 끊임없는 강박과 불안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굴절된 거룩함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함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앞서 확인했듯이 일상 속에 지켜내는 거룩함입니다. 애써 나를 꾸며낼 필요 없는 공간에 나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이들을 향한 일관된 겸손과 배려입니다. 그곳은 가정일수도 있고 학교일수도 있고 직장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배우자이거나 후배이거나 부하직원일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명백한 점은 바로 그 뻔하고 익숙하고 진부한 삶의 현장이 교회보다 더, 나의 거룩함을 확인할 수 있는 엄중한 자리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진리를 늘 마음에 새기며 날마다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을 향해 사랑으로 다가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문 9절 이하에 기록된, 데살로니가교회의 ‘형제 사랑’에 대한 사도 바울의 칭찬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9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앞서 3절에서 하나님의 뜻과 거룩함을 연결시킨 것처럼 9절에서는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형제사랑을 같은 맥락에 위치시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본문의 문장 구조를 통해 거룩함과 사랑이 한 쌍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 역시 바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구약 성경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값진 교훈입니다.
시간 관계상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레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본문 중 하나는 19장입니다. 거기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 명령이 다시금 나오면서 십계명의 실천하는 구체적인 법 조항들이 열거됩니다. 그리고 그 핵심인 18절에 바로 ‘이웃 사랑’에 대한 명령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하셔서 신명기 6장 5절과 함께 온 율법의 중심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함과 이웃사랑의 관계를 항상 마음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진정한 경건은 곁에 있는 이들을 얼마나 진실하와 사랑하는지를 통해 드러납니다. 누군가를 참으로 사랑하는 길은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게 나를 깨끗하게 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것을 명심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본문 시작과 끝인, 1절과 12절 모두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행하다’입니다. 둘 다 <페리파테오>라는 같은 헬라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낱말의 일차적인 의미는 ‘걷다.’입니다. 바울은 진심으로 사랑해 마지않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편지 하며 그들이 고난 가운데 매일 걷는 삶의 여정을 응원했습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이 반드시 명심해야할 하나님의 마음을 거룩함과 이웃 사랑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역시 소중히 간직해야할 진리입니다. 오늘 하루, 자신의 믿음을 일상 속에 거룩함과 사랑이라는 구체적인 발걸음으로 이루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와 주님께서 날마다 동행하시고 아름다운 완성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과 삶의 향기로운 조화를 이루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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