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5일 금요일

데살로니가전서 3장 1~13절 "고난 속의 위로"

2019년 7월 4일, 목,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데살로니가전서 3장 1~13절 "고난 속의 위로"

1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3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행전 17~18장에 기록된 상황을 바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지난 월, 화요일에 언급했지만 다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 찾아가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으나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심지어 적지 않은 귀족 부인들도 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러한 교회의 성장을 시기한 유대인들이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그 때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떠난 이후였고 그를 대신해 교회를 섬겼던 야손은 고발을 당하여 갖은 고초를 겪은 후 많은 보석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런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늘 마음 아파하며 미안해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 함께 읽은 본문 2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파송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봐야 할 점은 바울이 스스로 밝히는 사도로서 소명입니다. 2,3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3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2절 후반부와 3절을 통해 분명히 확인하게 됩니다. 바울은 환난 중에 흔들리는 교회를 위로하여 그들이 믿음을 지키게 하는 일이 자신이 부름 받은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당연히 바울만의 사명이 아닙니다. 목회자만의 역할은 더더욱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녀로 하나님께 부름 받아 교회를 이루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위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신앙이 건강하고 성숙한지 그 기준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종교 생활, 내가 얼마나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봉사를 잘하는 지를 내세우며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 대신 내가 과연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이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키도록 참된 위로를 건네는 사람인지를 돌이켜 봐야합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위로의 사명을 위해 바울이 ‘환난’을 어떻게 이해하는 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4절 제가 읽겠습니다.

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바울은 지난 날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회와 함께 있었을 때 했었던 말을 다시 언급합니다. 그것은 바로 앞으로 환난이 있을 거라는 예고입니다. 하지만 방금 확인했듯이 바울은 직전에 핍박 중에 교회가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이 하나님께 세움 받았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문장이 모순돼 보이지 않습니까?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위로는 그 환난이 머지않아 끝날 거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로 하여금 고난의 현실에서 도피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고통과 절망을 마주보게 하였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것이며 참된 희망을 발견하여 진정한 위로를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진리는 오늘날 저마다의 삶에서 고난의 언덕을 지난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안겨 줍니다. 간혹 기독교 신앙이 세속적 번영의 열쇠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꿈꾸고 소원하는 일들이 마침내 이루어질 것처럼 장담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명백한 거짓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심각한 모독입니다.

복음은 잠시 고통에서 벗어나 현실을 잊게 하는 마취제가 아닙니다. 신앙은 우리의 어리석은 욕망을 정당화하는 마법의 열쇠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환난을 피하지 말라고 알려줍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모든 고난 속에 주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통 자체를 정당화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특히나 불의한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고난을 무작정 피하지 말고 그것을 딛고 일어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 누릴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7~9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지난 날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교회를 위해 위로의 사명을 감당했던 바울은 시간이 흘러 그들에 대한 소식을 들으며 도리어 지금 자신이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방금 읽었듯이 이를 두고 바울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다.’고 편지합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며 얼마나 큰 고통과 좌절에 허덕였는지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 위로를 얻었을 때,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이었겠습니까? 교회가 이젠 아무렇지 않게 고난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요? 단지 외형이 커지고 많은 돈과 힘을 얻었기 때문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현실은 고달프고 삶은 버겁지만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궁극적인 힘과 용기를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교회의 모습을 통해 복음의 위대함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교회의 소중한 정체성입니다. 교회는 위로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를 위로해야할 때 보통 어떻게 말해야 하는 지를 고민하고 부담을 갖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칫 함부로 가르치려들게 되고 그 결과 위로는커녕 더 깊은 상처를 안기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알려주시는 참된 위로의 길은 다름 아닌 8절 말씀처럼 주님 안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위로의 힘과 근원은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직 위대하신 만유의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분 안에서 위로의 주체가 아닌 통로가 될 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진정한 위로를 받은 사람만이 비로소 다른 이들에게 위로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드넓은 품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안겨본 사람만이 다른 이들을 넉넉히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나눔과 섬김이 한 데 모일 때 교회는 마침내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고 전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참된 해방과 쉼을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나의 능력을 과시하며 인정욕구에 시달린다면,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성도들의 아픔과 눈물에 공감하지 않고 오로지 나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위로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서 한 참 벗어나 있음을 반드시 깨닫고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난이 닥쳐올 때, 낙심하고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애써 피하거나 도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것을 위해 진리를 왜곡하고 악용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 대신 우리를 사랑하시어 몸소 고난당하고 죽임 당하신 주님의 십자가 그늘 아래서 참된 위로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위로로 말미암아 서로를 진실로 격려하며 함께 주님 안에 굳게 서는 저와 여러분과 삼덕교회 되길 간절히 바라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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