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일,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예레미야 26장 16~24절 “히스기야와 여호야김 사이에서”
16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느니라
17 그러자 그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8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19 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언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것이니라
20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21 여호야김 왕과 그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관이 그의 말을 듣고서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워애굽으로 도망하여 간지라
22 여호야김 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냈더니
23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
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를 도와 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어제 읽은 예레미야 16장 전반부는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여 위기에 처한 예언자의 모습을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이 곧 무너질 것을 예고하였습니다. 그 불편한 진실에 분노한 거짓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이 예레미야를 위협하며 죽이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자신의 선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임을 담대히 증언하며 죽음의 위협 앞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 말씀은 유다 백성 모두가 예레미야를 미워하지 않았음을 알려 줍니다. 그를 신뢰하고 보호해주어 대언 사역을 지속하게 도와준 이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16절에 등장하는 ‘고관들’입니다. 그들은 유다 왕국의 고위 정치 관리들입니다. 이들은 유다 주변의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면밀하게 살필 수 있는 권한과 정보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의 예언이 주님의 이름으로 대언한 것이라며 적극 변호합니다. 급성장하는 바벨론 제국에 항복하는 것이비록 잠시 굴욕적이더라도 유다의 앞날을 위해서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그 지방의 장로, 즉 지역 공동체의 존경을 받는 어른 몇 사람 역시 예레미야를 지지입니다. 주목해야할 것은 장로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전개하는 방식과 그 근거입니다. 바로 앞선 역사 속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8~19절 말씀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18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19 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언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해롭게 하는 것이니라
장로들은 약 백년 전 히스기야 왕 시대에 활약했던 미가의 대언을 인용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18절에서 미가의 예언 활동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단어의 문법형태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드문, 과거 미완료형입니다. 즉, 지난날 예언자 미가가 단한 번만 외친 말씀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대언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또한 예레미야가 주관적인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 미가의 예언사역을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내용이 일치합니다. 장로들은 여기에서 미가서 3장 12절을 인용합니다. 어제 읽은 26장 6절과 동일하게 미가 역시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이 황폐해 질 것을 경고합니다.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화려한 건물들, 그것들이 상징하는종교 질서와 정치권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만이 참된 구원임을 알려줍니다.
중요한 점은 그러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 말씀 앞에서의 반응입니다. 19절 말씀 읽어 드리겠습니다.
19 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언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것이니라
미가가 활동하던 시대 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와 백성들은 심판을 선언하는 미가를 윽박지르지 않았습니다.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협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주님을 두려워하며 회개하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재앙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대로 유다가 우상에서 떠나 다시금 당신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모든 것을 주도한 히스기야는 역사 속 위대한 임금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 왕 여호야김은 히스기야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본문 20절은 예레미야와 동시대에활동했던 한 예언자를 소개합니다. 그의 이름은 우리야입니다. 그는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을향한 심판을 선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호야김은 그 말씀에 격노 하였습니다.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는 이집트의 개입으로 정통성 없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극심한 열등감과 컴플렉스에 사로잡힌 사람의 손에 쥐어진 권력은 흉악한 무기로 돌변하기 마련입니다. 여호야김은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이집트로 도망간 우리야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22절의 기록에 따르면 그를 붙잡아 오기 위해 특수부대까지 파견하였습니다. 첩보 영화의 흥미로운 소재로 자주 등장하듯이, 외국에 피해 숨은 자국의 정치범을 데려오는 작전은 자칫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양국 간의 심각한 긴장과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당시 유다는 이집트의 속국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 강대국에서 과감한 작전을 벌였다는 것 자체가 예언자 우리야를 향한 여호야김 왕의 집요한 증오를 선명히 보여줍니다.
심지어 23절에 보면 마침내 데려온 우리야를 칼로 죽일 뿐 아니라 그 시체까지 모독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야라는한 개인에 대한 감정 표현이 아닙니다. 더욱 정확히는 그가 전한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해 강렬한 원한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위기의 시대 속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현명하게 나라를 이끌어야할 유다 왕 여호야김은 파국의 길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한 말씀을 경청하지 않고 무시했습니다. 더 나아가 거침없이 부정하고 공격했습니다. 그 안에 담긴 놀라운 은혜를 깨닫고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여호야김의 삶 전체에 대한 요약과 비참한 최후를 기록한 역대하 36장 5~6절은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5 여호야김이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다. 그는 주 하나님께서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6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이 올라와서 그를 치고, 쇠사슬로 묶어서, 바빌로니아로 잡아갔다(새번역 성경).
이렇듯 우리는 본문에서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임금 히스기야와 여호야김을 발견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대하는 정반대의태도와 마주합니다. 그 둘 모두 우리의 실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말씀 앞에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청종하는 히스기야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말씀을 멸시하며 증오를 서슴지 않는 여호야김이 되기도 합니다.
조금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둘 다 동일하게 외친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향한 심판 선언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계시의 절정이자 복음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나라 복음을대입해 본다면 주님의 말씀은 사뭇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눈부신 돈과 화려한 권력이 아니라 주님의 철저한 희생과 고난만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알려 줍니다. 주님의 부활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복음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이것은 또한 그러한 주님의 다스림과 뜻을 거부한 채 탐욕에 눈이 멀어 살아갈 때 끔찍한 심판과 마주한다는 엄중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다. 히스기야처럼 말씀을 따르시겠습니까? 여호야김처럼 말씀을 멸시하시겠습니까? 답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시대의 히스기야로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권력과 영향력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룰 책임을 가집니다. 말씀을 통해 공동체를 선하게 변화시킬 사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한 감정과 경험과 세계관을 뒤흔드시는 주님의 위대한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그 안에담긴 하나님 나라 복음에 온 몸과 마음을 내어 드리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두운 시대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고 전하는저와 여러분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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