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7일 일요일

시편 34편 "하나님의 기도 응답"

시편 34편 "하나님의 기도 응답"
2021년 3월 1일,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1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12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6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17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21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22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오늘 읽을 단련교재의 주제는 바로 ‘하나님의 기도 응답’입니다. 이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다윗이 지은 시편 34편 4절을 주제성구로 선택합니다. 제가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다윗이 몸소 겪은, 기도응답에 대한 진솔하고도 가슴 벅찬 고백입니다. 그래서 본래 이 구절 앞뒤로 짧게 설교 본문을 정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설교 준비를 위해 미흡하나마 본문을 묵상하고 연구하면서 도무지 일부만을 잘라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 전체가 굉장히 정교하고 아름다운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시편 34편은 각 절의 시작이 히브리어 알파벳 자음 순서에 따릅니다. 한글로 예를 들면, 1절은 ‘ㄱ’으로, 2절은 ‘ㄴ’으로, 3절은 ‘ㄷ’으로 시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히브리어 알파벳 개수인 22개에 맞춰 22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각 절 마다 세 개의 단어가 두 묶음으로 등장하는 운율을 가집니다.

이런 히브리 문학 형식을 조금 어려운 말로 ‘답관체’라고 부릅니다. “머리장단에 맞춘 노래”라는 뜻입니다. 참고로 시편 119편과 예레미야애가도 이러한 답관체로 쓰여 졌습니다. 따라서 오늘 함께 읽은 시편 34편은 다윗이 아무렇게나 즉흥적으로 지어낸 노래가 아닙니다. 자신의 이성과 감성을 총동원해서 이룬 신앙 고백의 절정입니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찬양의 배경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가지고 계신 성경에서 시편 34편의 앞머리에 있는 글귀가 보이실 겁니다. 바로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입니다. 본문 외에도 시편 곳곳에는 이런 머리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의 편집 때문에 흔히 이런 문장이 각 시편의 부제 혹은 보충 설명 정도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약 원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해당 시편의 첫 구절에 해당됩니다. 본문의 경우 방금 말씀 드린 답관체 형식이기 때문에 1절과 합해서 표기되지만 히브리 성경의 다른 시편은 구절 수가 하나 더 많습니다. 그만큼 시편의 표제는 굉장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34편은 이러한 배경이해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무엘상 21장 10~15절에 기록된 사건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12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사울의 집요한 추격을 피해 달아나던 다윗은 도움을 요청하러 가드 왕 아기스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아기스의 신하 중 일부가 그를 경계합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겨루어 눈부신 승리를 거둔 이스라엘의 영웅입니다. 그는 온 백성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이웃나라에게까지 이름을 떨쳤습니다. 이 사실을 가드 왕궁 대신 몇몇이 임금에게 다시금 언급합니다.

다윗은 왕궁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은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습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처형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때문에 다윗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충격적인 행동을 합니다. 바로 미친 척 입니다. 성 문짝에 아무렇게나 글자를 써 갈기고 수염에 묻을 정도로 침을 흘렸습니다.

그러자 아기스는 다윗을 정말 미친 사람으로 여기고 내쫓았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다윗의 연기는 어설프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가 봐도 확실히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그만큼 그는 한 없이 비참했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이 장면이 기도응답과 과연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물론 죽을 뻔한 위기에서 살려주셨으니 아예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다윗의 근본적인 기도제목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날, 가드 궁정에서 그가 겪었던 위기는 그 훨씬 전부터, 그리고 이 후 한참동안, 아니 평생 겪었던 힘겨운 시련의 일부일 뿐입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 왕궁에서의 치열한 권모술수, 사울의 광기어린 눈빛, 그 모두를 관통하는 삶의 고난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를 갈구 했습니다. 동시에 기도응답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기도가 철저히 무시당하는 좌절을 수도 없이 경험하였습니다. 어쩌면 더 이상 기도할 이유도 필요도 찾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다윗을 덮친 현실은 너무나 잔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가드 왕궁으로 찾아갔습니다. 다윗은 순진무구한 바보가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 밖에서도 자칫하다가는 금세 목숨을 잃을 처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아기스에게 찾아간 것은 나름의 충분한 계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성경이 자세히 알려주지는 않아 조심스럽지만 가드의 권력층 일부와 다윗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교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이 아닌, 가드 왕국과 아기스 임금이 가진 힘과 재물에 기대어 마음 편히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치권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극한의 위기로 그를 몰아 붙였습니다. 그 결과 미치광이로 몰려 쫓겨나는, 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굴욕을 겪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비극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문 18~19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18 주님은, 마음 상한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고, 낙심한 사람을 구원해 주신다. 19 의로운 사람에게는 고난이 많지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져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상하고 낙심한 다윗을 가까이 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에게 닥쳐온 모든 고난으로부터 건져 주셨습니다. 마치 십자가의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부활의 영광은 한 없이 찬란하듯이 깊고 깊은 고난 속에서 그 이상으로 눈부신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님의 기도 응답으로 구체화 됩니다. 해당되는 본문 구절들을 읽어드리겠습니다.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7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이를 통해 다윗이 깨닫고 찬양한 기도 응답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소원을 들어주는 것을 기도응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간구와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위대한 기도 응답임을 절망 가운데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앞길이 보이지 않고 불안하고 초라하지만 마음 깊이 찾아오는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한 순간의 감정적인 체험이 아니었습니다. 막연하고 모호한 자기 위안이 아니었습니다. 온 실존을 담은 진정어린 고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그 놀라운 은혜를 답관체라는 세밀한 형식으로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포항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다윗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굳게 믿고 고백하신다면, 시편 34편의 찬양을 나의 고백으로 받아들인다면 기도응답의 의미를 말씀에 근거해서 온전히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

물론 가난과 질병을 비롯한 힘겨운 삶의 문제를 두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간구가 속히 응답받길 원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마음을 애써 부정하는 태도가 오히려 위선이고 거짓입니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방식의 기도 응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섭리를 믿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정확히는 부르짖기 전에 이미 우리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존재만으로 응답, 그 이상의 은혜라는 사실을, 이것이 바로 기도의 위대한 신비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많은 고난으로 인해 상하고 낙심한 마음의 회복을 경험하며 하루를 열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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