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8일,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민수기 27장 12~23절 “공동체를 세우는 영의 사람”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13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
니 14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15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이르되 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19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20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21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로써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따라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22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23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니 14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15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이르되 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19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20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21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로써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따라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22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23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어제 함께 읽은 민수기 27장 1~11절 말씀은 슬로브핫의 딸들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온 회중 앞에서 요구한 사건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당돌히 나아가는 기도의 생명력을 묵상하였습니다.
이어지는 12절부터의 말씀은 출애굽 공동체의 여정에서 매우 중대한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리더십의 교체입니다. 어느덧 가나안 입성을 앞둔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아바림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거기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20장에 기록된 므리바 사건을 다시금 언급하시며 그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3~14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13 그 땅을 본 다음에는, 너의 형 아론이 간 것같이, 너 또한 너의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14 너희 둘이 신 광야에서 나의 명을 어겼기 때문에, 그 땅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온 회중이 므리바에서 나를 거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 너희들은 물을 터뜨려 회중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한 권능을 보였어야만 하였는데, 너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은 신 광야에 있는 가데스의 므리바에서 물이 터질 때의 일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또 다시 등장하는 므리바 사건을 이미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광야 여정을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자 모세에게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반석을 향해 명령하여 거기에서 물이 흘러나오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분노를 참지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백성들에게 뭔가 강력한 시각 효과를 주기 위함인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말씀으로만 물을 내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과 달리 자신의 지팡이로 두 번 바위를 내리쳤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반석에서 많은 물이 솟아나오긴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때 그의 행동을 가만히 두고만 보지 않으셨습니다. 모세의 오랜, 그리고 간절한 소망인 가나안 입성을 엄중히 금지 시키셨습니다. 민수기 20장 12절 제가 읽겠습니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출애굽이라는 찬란한 구원 사건의 중심인물은 단연 모세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는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며 갖은 고난과 어려움에도 약속의 땅을 향해 최선을 다해 지휘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본문에서 거듭, 지난번의 그 가혹한 결정을 상기시키면서 그 뜻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때문에 이렇듯 한 순간의 실수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잔인한 결정은 사실 납득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민수기 본문에 대해 여러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지만 어느 하나 완벽한 답을 주긴 어렵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감히 다 이해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본문을 통해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주님의 구원 사역은 결코 영웅적인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이 때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은 모세가 없다면 나머지 광야 여정은 실패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실제로 출애굽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모세가 시내산에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자 그들은 불안함에 싸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으로 섬기는 심각한 죄악을 저지르기도 하였습니다.
때문에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단지 그 개인의 불행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를 동요시키는 위기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와 같은 단호한 결정을 굽히지 않으신 까닭은 출애굽의 주체는 모세라는 걸출한 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심을, 오직 주 하나님만이 출애굽의 진정한 지도자임을 명백히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분명히 적용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나 기둥 같은 인물들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런 훌륭한 일꾼들이 가정이나 회사의 여러 사정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사갈 때 종종 이제 ‘우리 부서 어떻게 하나?’ 혹은 ‘우리 선교회 어떻게 하나?’라고 걱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제 우리 교회 어떻게 하나?’라고 염려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경험해 보셨듯이 특정인의 존재 유무로 크게 요동하지 않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의 신비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분명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도자가 사라졌다고 그 교회가 큰 위기에 빠졌거나 혹은 빠졌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 교회가 건강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우리 교회가 참 자랑스럽습니다. 부임한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나서 말씀드리게 참 조심스럽지만, 우리 교단을 대표하는 존경받는 어른이신 김태범 목사님께서 은퇴하시고 물러나셨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리거나 소란하지 않고 다른 교회에 모범이 될 정도로 훌륭한 리더십 교체를 이루며 더욱 하나 된 우리 성도님들의 모습에 저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 교회 지체들이 리더를 기꺼이 존중하고 섬기지만 동시에 신앙의 자립을 이룬 성숙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지도자를 세우시되 그 지도자에게 의존하길 바라지 않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각각 맡은 자리에서 리더의 위치에 계시다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 대신 공동체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며 그 뜻에 겸손히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지도력의 핵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18절 제가 읽겠습니다.
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주님께서는 오랫동안 모세를 수행한 여호수아를 차기 지도자로 지명하며 그에게 안수하게 하였습니다. 이 때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여호수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바로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입니다. 사실 이러한 개역개정성경의 번역은 상당한 의역입니다. 해당되는 구약 원문의 문장은 관계대명사를 사용하여 세 단어로 매우 단순명료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간단히 직역하며 “그는 영이다.”입니다.
이러한 여호수아에 대한 설명을 보다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에서 흔히 “영”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단어의 1차적인 의미는 “호흡” 혹은 “바람”이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본문 18절에서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라는 문장을 “그는 참으로 나와 함께 호흡하는 자”로 바꾸고 싶습니다. 즉, 여호수아는 자신의 호흡을 통해, 그의 가장 자연스러운 일상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력을 누리고 또 전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진정한 성령 충만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흔히 오해 하듯이 “성령 충만”은 뭔가 대단하고 신비한 이적을 일으키는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에 그러한 묘사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 자체를 부정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성경 전체를 봤을 때 하나님의 영이 온전히 함께 한 사람의 분명한 특징은 매일 매일 들이쉬고 마시는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의 삶 속에서 주님의 은혜와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위해 세우신 영의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신앙으로 포장하지도, 지체들을 닦달하거나 다그치지도 않고 잠잠히 주님의 뜻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넓혀나갑니다. 그렇게 애써 고집하지 않고 무리 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며 주님의 구원에 동참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을 이 시대의 여호수아로 세우시며 이 시대의 참된 이스라엘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참된 영의 사람이 되어 건강한 리더십과 공동체를 세우고 이루어 나가는 모두가 되기를 온 마음 다해 바라며 축복합니다.
기도: 우리의 참 인도자 되신 하나님
혼란한 광야 길을 걸으며 오직 주님만이 우리 삶을 이끄시는 분임을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불러 모으신 삼덕교회 신앙 공동체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게 하시고 다른 그 무엇이 아닌 성령님의 자유롭고 따스한 숨결을 의지하며 한 몸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이 시간 다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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