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0일 토요일

챌린저 호 발사 전 날, 운명의 회의

나사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발사를 하루 앞둔 1986년 1월 27일. 플로리다에는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닥쳤다.

저녁 8시 45분, NASA와 고체 연료 제작 계약을 맺은 협력업체인 ‘티오콜’ 회의실에 기술자들이 모여 NASA와 원격회의를 진행했다. 티오콜 기술자들은 O링의 상태를 걱정하며 역대 가장 추운 날씨 때문에 최악의 사고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비록 위험이 어느 정도일지, 오류 발생 지점은 모르는 상태였지만, 성공이 아닌 실패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따라서 티오콜에서는 대부분 중지를 원했다. 나사에 상황을 설명하면 날씨가 풀릴 때까지 발사를 미룰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나사의 책임자 래리 멀로이는 날씨로 인한 추가적인 위험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티오콜 기술자들이 제시한 데이터가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제안을 거부하며 공식 입장을 요구했다. 티오콜의 기술 총책임자가 발사하면 안 된다고 거듭 말했다. 그러자 래리 멀로이는 나사의 기술 부책임자의 의견을 물었다. 그가 이렇게 답했다.
"모턴 티오콜에서 그런 제안을 할 수 있다니 당황스럽네요.
하지만 계약 업체의 의견에 반대하진 않겠습니다."
그때 티오콜의 기술 총책임자가 12도 이하에서는 발사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은 들은 래리 멀로이가 화를 내며 이렇게 되물었다.
"그러면 4월까지 미루라는 얘기요?"
그 고압적인 말투가 티오콜에게는 협박처럼 들렸다. 회의실 분위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 갑자기 발사 실패를 입증하라는 요구를 받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티오콜의 간부가 내부 논의를 위해 오프라인 회의를 요청해 진행했다. 5분으로 예고한 시간이 30분 넘게 늘어났다. 티오콜은 데이터를 살피면서 발사 취소 결정이 타당한지 다시 확인했다.
O링 부식 전문가인 수석 기술자가 테이블 상석으로 다가가 열띤 소리로 말했다.
"이런 날씨에 발사하면 안 됩니다!"
그 회의실에 있던 모든 기술자가 처음 내렸던 결론에 다시 동의했다. 그러자 티오콜 지사장이 투표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대신 간부들만 참여하게 했다. 지사장이 기술 총책의 의견을 물었다.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계속 우물쭈물하자 지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기술자 입장이 아니라 운영자 입장에서 생각해"
"take off your engineering hat and put on your management hat"
그 말을 듣고 티오콜 기술 총책은 나사의 멀로이와 똑같이 결론 내렸다. 날씨와 별로 상관없으니까 발사하라고 나사에 얘기하자고 말했다. 티오콜 간부는 나사와 다시 전화 연결해서 이렇게 보고했다.
"온도가 낮아서 걱정되긴 하지만 데이터를 재검토해 보니 날씨와 상관관계는 불확실합니다."
나사의 책임자 래리 멀로이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나사는 계획대로 우주선을 발사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나사의 부책임자가 말했다.
"우리는 그 제안을 서면으로 작성해서 티오콜 관계자의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나사도 꺼림직해서 책임을 회피하려 한 것이다. 결국 티오콜의 프로그램 총책임자가 서류에 서명하여 나사에 팩스를 보냈다. 밤 11시 45분이었다. 3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돌이킬수 없는 비극을 선택하고 말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챌린저: 마지막 비행”의 여운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3회에 묘사된, 발사를 결정한 회의 장면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너무나 상징적이다. 나사와 협력업체 사이의 수직적인 관계, 과정은 무시한 채 끊임없이 성과를 내보이려는 무모함, 현장의 의견을 묵살하고 경영 논리로 덮어버리는 고압적인 태도가 얼마나 끔찍한 판단을 하게 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결과, 7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남겨진 이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자책감을 남겼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을 진 래리 멀로이가 여전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척 소름 끼친다. 그는 이 사건이 거대한 진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자기 합리화한다.
많은 것을 돌이켜보게 된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다큐멘터리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순간마다 그 장면을 떠올릴 것 같다.
괴물은 멀리 있지 않다. 내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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