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6일 수요일

창세기 39장 11~23절 "밑바닥에서도 여전히 함께"

2022년 10월 25일,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목사 정대진

창세기 39장 11~23절 "밑바닥에서도 여전히 함께"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어제 읽은 창세기 39장 1~10절은 요셉이 지닌 위대한 신앙을 보여줍니다. 그는 형들로부터 노예로 팔리는 극심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집트의 화려한 제국 종교에 둘러 싸였습니다. 그리고 극적인 성공을 통해 상당한 권력과 재물을 손에 쥐었습니다. 자칫 방탕해지기 쉬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르게 세웠습니다.


이런 요셉의 신앙은 유혹 가운데 빛납니다.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운 그에게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답합니다. 그의 고결한 신앙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더욱 혹독한 시련을 겪습니다.


보디발 아내는 탐욕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요셉이 보인 뜻 밖의 반응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지 모릅니다. 어느날 작정하고 계획을 꾸몄습니다. 하인들을 모두 집에서 내보내고 요셉을 기다렸습니다. 일하러 들어온 그의 옷을 붙잡고 또 다시 동침을 제안합니다. 


이 때 요셉은 단호하게 행동합니다. 죄를 지을 일말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습니다. 그녀와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지 않습니다. 욕망으로 불타오른 사람과는 더 이상 대화와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걸 요셉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의복은 사막 지역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한 벌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 아내 손에 자기 옷을 버려두고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곧바로 요셉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었습니다. 하인들을 집 안으로 불러모았습니다. 그들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진실과 정 반대로, 요셉이 자기에게 동침을 요구했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소리질렀더니 그가 도망갔다고 음해 해습니다. 보디발이 집으로 돌아오자 같은 모함을 반복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과연 보디발 아내의 말을 하인들과 보디발이 있는 그대로 믿었을까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시며 많이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보는 눈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노회한 군인이자 정치가인 보디발이 노예 요셉을 신임 하고 가정 총무로 세웠습니다. 그동안 요셉이 얼마나 성실하고 진실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 요셉에 대한 평가는 다른 하인들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주인 마님의 명령에 따라 집 밖으로 나갔을 때, 이 후 벌어질 상황을 충분히 예상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녀의 대담한 행동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적 방종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무척 높습니다. 


심지어 보디발 조차 자기 아내의 행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결정적인 정황이 있습니다. 바로 요셉을 살려둔 것입니다. 아내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요셉은 얼마든지 즉결처분 대상입니다. 고대 사법체계에서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자체로 보디발의 상당한 선의가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처벌을 내리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보디발로서는 체면을 구기는 일입니다. 그런 까닭에 요셉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요셉 입장에서는 나름 호의를 입은게 사실입니다. 어쨌든 목숨은 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입니다. 형들에게서 살해 위협에 받은 후 낯설고 먼 땅에 노예로 팔려왔습니다.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부족함 없이 자라온 요셉에게는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고통을 딛고 일어났습니다. 좀 살만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런 죄 없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오랜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교정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감옥 안에서 보내는 삶은 분명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처참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이미 바닥을 경험했습니다. 노예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닥에서 더 밑으로 내려가는 상황을 감옥에서 맞이했습니다. 누구라도 쉽게 살아갈 의욕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곳에서 또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놀라운 반전을 거듭 맞이합니다. 본문 21~23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은 앞서 보디발의 집에서 경험한 상황을 감옥에서도 다시 겪습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신뢰했습니다. 자기 집 운영 대부분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마찬가지로 간수장이 요셉을 신임합니다. 감옥 행정 전반을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셨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와 동행하시고 한없는 사랑과 긍휼로 품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반드시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어떤 절망도 결코 절망이 아닙니다. 인생의 그 어떤 밑바닥 속에도 주님께서 늘 풍성한 사랑으로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명백한 증거입니다. 십자가의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부활의 빛은 더욱더 찬란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부활의 생명은 더욱더 아름답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과 같은 인생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늘 명심해야할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겪는 절망과 고통을 딛고 이루시는 주님의 참된 형통을 소망하시길 바랍니다.


관련해서 시 한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문재 시인의 시 “농담”입니다.


농담


–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시의 마지막 연을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에 대해 조심해야 합니다. 함부로 평가하거나 훈계하지 말아야합니다. 마찬가지로 아픔 자체를 미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부러 아플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어떤 면에서 자기 학대입니다. 하지만 살아가며 도무지 피할 수 없고 납득하기 힘든 고난이 찾아올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의미 없는 고통은 없습니다. 주님의 넓은 품 안에서 분명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내밷는 신음을 절대로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인간의 예상을 훌쩍 넘어서는 주님의 광대한 은혜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아픔을 통해 주님께서 온 세상에 들려주실 청아한 종소리를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그 믿음 가운데 요셉처럼 하나님의 참된 형통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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