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9일 금요일

사무엘하 5장 1~10절 “만군의 하나님”

2024년 8월 9일, 승리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사무엘하 5장 1~10절 “만군의 하나님”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6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9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그는 혼자였습니다. 하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한 소년이 전쟁터에 서 있습니다. 참혹한 공간 속 매우 이질적인 존재입니다. 그는 군인이 아닙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먼 길을 떠나온 천덕꾸러기 막내에 불과합니다. 아무런 소속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큰 형이 노골적으로 불쾌해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자기 갑옷과 투구를 내어준 왕도 그를 껄끄러워합니다. 이스라엘 군대 어느 누구도 그에게 아무런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그저 이 불편한 상황이 얼른 끝나기 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다윗은 엘라 골짜기에서 가장 고독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반대 편에 서 있는 골리앗은 정반대입니다. 그는 블레셋 군대 지휘관입니다. 매서운 눈빛, 몸 이곳저곳에 있는 흉터,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탄탄한 근육들. 굳이 여러 설명을 하지 않아도 겉모습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용맹한 장수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부하들이 기세등등하게 그의 이름을 외칩니다. 보나마나 결과는 뻔합니다. 블레셋 군대로서는 잠시 쉬어가는, 흥미로운 구경거리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골리앗은 자기 눈 앞에 서 있는 앳된 소년을 우습게 여기며 블레셋 신들의 이름으로 그를 저주하였습니다.

이 상황에 놓인다면 누구나 벌벌 떨게 됩니다. 거대한 공포에 짓눌립니다. 온몸이 굳어져 꼼작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당당히 일어나 골리앗과 맞서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런 눈부신 승리가 가능했을까요? 과연 무엇이 그에게 그토록 놀라운 용기를 안겨주었을까요? 사무엘상 17장 45절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우리는 이 때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외치는 신앙 고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만군’으로 옮긴 히브리어 <츠바오트>는 ‘많은 무리’를 뜻합니다. 직접적인 의미는 땅에 있는 군대입니다. 동시에 수많은 별을 뜻합니다. 

오늘처럼 빛 공해가 없는 옛날 밤 하늘에는 별들로 빼곡히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고대 서아시아 사람들은 그 별들을 대상으로 상상력을 펼치며 신화와 종교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스라엘이 말하는 ‘만군’의 의미는 대적, 블레셋의 우상을 포함한 온 우주를 아우르는 군대입니다. 따라서 ‘만군의 여호와’는 단순히 많은 군대를 거느린 것을 넘어 땅과 하늘을 아우르는 하나님의 권능을 높이는 호칭입니다. 

다윗은 부모에게 외면당하고 쓸쓸하게 양 떼를 돌보던 광야에서 만군의 주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맹수의 공격에서 자기를 보호하신 주님, 인생의 햇볕을 막아주는 그늘이자 싸늘한 밤공기를 물리쳐준 온기가 되신 주님, 신비로운 길로 자신을 점점 강하게 단련시켜 가시며 항상 함께 하신 주님의 돌보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만군의 하나님 이름으로 다윗은 골리앗과 맞서 싸워 마침내 눈부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이후 다윗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한 순간에 온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왕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탄탄대로가 놓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인생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삶에는 항상 굴곡이 있습니다. 어김없이 파도가 몰아칩니다. 다윗은 사울의 시기를 받아 비참한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목 끝에 누군가 칼을 겨누는 것 같은 서늘한 살기를 느끼며 오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십 수년이 흘렀습니다. 소년은 청년이 되었습니다. 목동이 용사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장로가 다윗에게 몰려왔습니다. 그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습니다. 마침내 왕관을 머리에 썼습니다. 너무나 극적인 인생 변화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책이나 영화에서 흔히 보는 단순한 성공 이야기가 아닙니다. 위대한 영웅 신화도 아닙니다. 다윗의 삶을 이끄신 하나님의 손길을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 2~3절 함께 읽겠습니다.

2 전에 사울이 왕이 되어서 우리를 다스릴 때에, 이스라엘 군대를 거느리고 출전하였다가 다시 데리고 돌아오신 분이 바로 임금님이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네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며, 네가 이스라엘의 통치자<히, 나기드>가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실 때에도 바로 임금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으로 왕을 찾아오니,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언약을 세웠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사울이 장남 요나단과 함께 전쟁터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뒤를 이어 왕이 된 이스보셋도 부하들에 의해 살해 되었습니다. 온 나라에 공포와 혼란이 뒤 덮였습니다. 이대로 나라가 분열되어 나뉘거나 이 틈을 타 외적이 침입하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지도자들이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그가 단순히 싸움을 잘하거나, 요나단의 친구이자 미갈의 남편으로서 왕실 배경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어떤 상황 속에도 늘 함께 하신 것을 이스라엘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부르시고 날마다 동행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관련해서 하나님이 다윗을 향해 부르는 호칭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목자’와 ‘통치자’입니다. 여기서 ‘통치자’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나기드>입니다. 이것은 백성을 형제로 섬기는 지도자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은 주변 다른 나라 왕들과 다릅니다. 그들처럼 권력을 휘두르며 군림하지 않습니다. 대신 목자이신 주님을 대신 해 백성을 사랑으로 돌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따라서 다윗은 왕실에 앉아 한가롭게 즐길 시간이 없습니다. 의기양양하게 왕관을 쓰고 우쭐거릴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중요한, 그렇지만 몹시 위험한 사명을 서둘러 완수해야 합니다. 바로 예루살렘 함락입니다.

예루살렘은 그동안 분열 해 있던 이스라엘을 통합하기 적합한 새로운 도읍지입니다. 우선 현재 여부스 사람들, 즉 이방인들이 살고 있어서 어느 지파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적인 공간입니다. 게다가 계곡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군사 요지입니다. 역설적으로 이 상황은 다윗으로 하여금 거대한 위협으로 내몰았습니다. 도무지 함락하기 힘든 땅을 차지한 이방민족과 싸워 이기는 것으로 이스라엘 왕으로서 첫 걸음을 내딛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또 다른 골리앗과 마주하는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이 자세히 묘사하진 않았지만 작전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뇌에 빠졌을 겁니다. 본문 6절은 그런 다윗을 향한 여부스 사람들의 야유를 기록합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6 다윗 왕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에 사는 여부스 사람을 치려고 하니, 그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너는 여기에 들어올 수 없다. 눈 먼 사람이나 다리 저는 사람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 그들은, 다윗이 그 곳으로는 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제 막 왕으로 등극한 다윗을 움츠러들게 하는 일종의 심리전입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내전이 끝난 직후였고 열두 지파는 각각 개성과 주관을 강력하게 유지하는 집단이었습니다.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쩌면 다윗의 결정을 비웃고 무시하는 권력 실세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분명 엘라 골짜기에서 경험한 것 그 이상으로 그는 거대한 고독과 압박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결국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습니다. 여호수아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약속한 땅을 완전하게 차지했습니다. 이후로 예루살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신앙과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 찬란하게 기록된 다윗 왕조가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무엘 역사가는 이 사건을 두고 매우 의미심장한 평가를 남깁니다. 10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다윗이 점점 강대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덕분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이 그 하나님을 가리켜 부르는 호칭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만군의 하나님’입니다. 이 자리에 ‘전능하신 하나님’이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같은 다른 수식어를 사용해도 내용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게다가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은 성경 중 사무엘서에 처음 등장합니다. 모세오경과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구약 전체 흐름에 보면 전에 없었던, 새로운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마침내 왕이 되어 거둔 의미심장한 첫 승리를 묘사하며 사무엘서가 굳이 ‘만군의 여호와’를 언급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바로 다윗이 지난날 골리앗과 맞서 싸울 때 고백한 그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양 떼와 밤을 새며 수많은 별을 올려다보던, 어린 다윗의 심장 깊은 곳에 새겨진 하나님, 그리하여 도무지 말도 안 되는 대결을 자원하며 고백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대로 다윗은 도망자로 외롭게 지낼 때도 자신과 늘 함께 하시고 도우시는,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권능을 경험하였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숱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또다시 도망자가 되는 처량한 신세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하나님은 결코 그를 홀로 외롭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일생을 신실하게 지키고 돌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홀로 울부짖으셨습니다. 그 순간 주님은 철저히 외로운 존재로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따라서 부활은 역설적인 진리를 알려줍니다. 고독할 때야 말로 진정 하나님과 함께 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온 우주를 참으로 다스리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만군의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혼자입니다. 하지만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누구나 다양한 모습의 거대한 골리앗과 마주합니다. 여러 성벽을 부들거리며 오릅니다. 때때로 고된 외로움에 지쳐 쓰러지곤 합니다. 그렇지만 다윗의 평생 동안 항상 함께 하신 주님,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걷는 자녀들과 동행하시는 주님께서 또한 온 우주의 피조물과 더불어 우리에게 임재 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다윗처럼, 주님의 선하신 품에 안겨 참된 승리를 거두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만군의 하나님.
주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골리앗과 맞서는 용기를 주셨고, 고단한 도망자 신세를 이겨내게 하셨고, 담대하게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하셨음을 말씀을 통해 확인합니다. 온 우주를 아우르는 만군을 지휘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또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저희 일생을 신실하게 이끄시고 돌보심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임재 안에 머물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이루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가장 외로운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시어 온 세상을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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