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8일, 삼덕교회 전도부 경건회, 목사 정대진
사도행전 2장 1~13절 "소통 공동체"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은 보통 교회의 특정 행사 때 자주 사용되는 본문입니다. 바로 ‘부흥회’입니다. 삼덕교회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어릴 때부터 자란 교회는 부흥회 분위기가 매우 강했고 ‘성령 충만’을 무척 강조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성령 충만’의 진정한 의미를 성경을 통해 차분히 배우기보다는 분위기에 많이 휩쓸렸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성도와 교회 가운데 임하시는 것을 특정한 이미지로만 좁게 이해했습니다. 바로 ‘불과 바람’입니다.
지난 2주에 걸쳐 살펴보았듯이, 본래 겁먹고 주눅들어있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담대하게 세상 속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대인들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오순절은 칠칠절 혹은 맥추절로 불리는 일종의 추수 감사 주일이었기 때문에 지중해 전역에 흩어져 있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축제를 벌이는 매우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또 다른 주요 명절인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면 이 상황이 매우 의미심장하다는 걸 이해하실 겁니다. 즉, 이 날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첫 번째 맞이한 유대 명절입니다. 온 사방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얼마 전에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라는 이름의 남자를 언급하며 그런 그를 아직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비웃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예수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났다는 궤변을 언급하며 경멸의 시선을 나누었음이 분명합니다.
이렇듯 교회 주변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거리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참된 진리가 아니라 낡은 율법주의와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 사상이 사람들 내면을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럼에도, 그 모든 고난과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예수님을 자신들의 유일한 주님으로 고백하고 예배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사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거짓 축제에 둘려 싸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잘 이해 안 되신다면 TV광고를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신상품을 제 때 구입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우리를 교묘하게 유혹합니다. 그 외에도 조금 더 많은 걸 손에 쥐고, 자녀를 좋은 대학 보내는 것이 마치 인생의 중요한 목적인양 속이는 목소리들을 쉽게 접합니다. 이것이 곧 본문 속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할 세상의 현실입니다.
바로 그런 그들에게 성령님의 임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엄밀히 말해 그날 성령님이 세상에 처음 나타나신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은 천지창조에 함께 하셨을 뿐만 아니라 구약 곳곳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과도 이미 동행하셨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다만 이 사건을 통해 성령님께서 자신의 존재를 세상 한 가운데에 분명히 드러내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령님에 대한 사도행전의 묘사입니다. 바로 설교를 시작하며 말씀드린 ‘불과 바람’입니다. 2~3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사도행전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어서 아마도 이 자리에 계신 집사님, 권사님들 모두 수도 없이 읽으신 말씀일 겁니다. 특히나 저처럼 부흥회 때 자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오순절 날의 뜨거운 장면이 다시 재현되길 구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성령님을 가장 오해하게 만든 본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 때 정말 급하고 강한 바람이 교회 안을 휩쓸고 진짜 불이 그들 머리 위에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2절 보시며,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다고 나옵니다. 또한 3절을 보면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교인들 위에 나타났다고 적었습니다. 이러한 간접적인 표현들이 의도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즉, 정말 말 그대로의 ‘바람’과 ‘불’이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것과 흡사한 무언가로 성령님이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인간의 언어로 함부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의 경험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러한 성령님을 마음 가득히 모신 성도들의 모습은 직접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4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날, 성도들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전에 사용했던 ‘개역한글판 성경’은 ‘다른 방언’으로 번역해서 오해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제 잘 아시다시피 여기서 말하는 ‘다른 언어’는 흔히 접하는 특이한 언어로 기도하는 은사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외국어’를 뜻합니다.
사실 좀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성령님께서 교회 공동체에게 임하신 겉모습은 바람과 불과 같다고 다소 모호하게 묘사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로 말미암은 교회 사건은 정확히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바로 ‘외국어 사용’입니다. 본문 9~11절을 보면 이 날 예루살렘에 모여든 사람들의 거주지가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바로 ‘바대, 메대, 엘람,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 리비야, 로마, 그레데인, 아라비아’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몹시 놀라고 당황해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중요할 때에 성령님께서 오셔서 외국어 사용 대신 모두의 병이 나았다거나 뭔가 대단한 초능력을 생기는 게 더 교회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갑자기 다른 나라의 말을 하는 것도 신비한 일이긴 하지만 구약에서 성령님의 임재로 일어난 화려한 사건들을 떠올려 보면 뭔가 시시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첫 번째 교회에 성령님을 통해 언어의 선물을 주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바로 복음 전파를 위해서입니다. 11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이 구절을 통해 첫 번째 교회 성도들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외국어로 외친 내용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큰 일’입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성령 충만의 핵심은 강한 바람과 뜨거운 불과 같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닙니다. 이상한 소리를 내어 요란하게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복음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사람들에게 들려지게 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도행전 전체의 핵심 구절이라고 볼 수 있는 1장 8절과 연결해 볼 때 의미심장해집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은 온 세상을 향한 교회의 복음 전파가 철저히 성령님의 권능 아래서 이루어 졌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의 능력을 사모합니다. 손을 댈 때마다 병이 낫고 앞일을 미리 예견하는 등의 화려한 기적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런 일들 역시 성령님께서 하시는 사역의 일부이고 굳이 부정하거나 배척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 전체에서 성령님의 그런 모습들은 철저히 비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우리가 본문을 통해 간절히 구해야할 성령 충만, 특별히 복음을 전하기 위해 무엇보다 사모해야 할 것은 바로 ‘소통’입니다. 성령님의 소통의 영입니다. 따라서 본문 말씀처럼 우리가 당장 외국인과 외국어로 대화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아픔에 진실로 공감하며 그 공감의 언어로 하나님의 크신 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언한다면 그 누구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와 같은 성령님과 더불어 거짓과 탐욕의 축제로 가득한 세상 한 복판에서 복음의 참된 증인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권능의 하나님
그 옛날 오순절 축제에 둘러싸인 교인들처럼 우리 역시 이 시대의 악한 질서와 가치관 한 복판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시어 복음 안에서 참된 진리를 지켜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소통의 영이신 성령님과 날마다 동행하며 이웃의 눈물과 아픔에 귀 기울여 공감에 언어로 복음을 전하길 원합니다. 진정한 성령 충만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 드린 이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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