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2일 수요일

모교를 거닐며.

월요일, 대전에서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잠시 들러 교정을 거닐었다.
그 시절의 기억이 온몸으로 다가와 걸음이 무거웠다.
나는 학교에서 소문난 광신도였다. 비유가 아니다. 사실이었다. 그때 난 조금 미쳐있었다.
신학 공부를 하기 전 나는 세대주의와 근본주의를 비롯한 병리적인 신앙에 사로잡혀 10대를 보냈다.
그 밑바탕에 흐르던 암울한 성장 과정과 그로 인해 미숙했던 모습들이 떠올라 참 괴로웠다.
지금, 그때 보다 마음의 넓이와 깊이를 더하지 못했다. 여전히 허세와 자학 사이를 어지럽게 오간다.
하지만 졸업 후 19년 만에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아픈 기억의 현장에 방문한 것만으로 조금은 만족스럽다.
그렇게 꾸준히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기를, 고통과 유의미하게 벗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1년 9월 1일 수요일

마가복음 9장 2~9절 "산 위에서 산 아래로"

포항제일교회 수요기도회, 2021년 9월 1일, 목사 정대진
마가복음 9장 2~9절 "산 위에서 산 아래로"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 세 명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바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본문이 그들의 이름을 기록한 방식을 주목해야 합니다. 신약 원문에는 각각의 제자들 이름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헬라어 정관사는 영어 정관사 ‘the’와 비슷하게, 각각의 존재를 주목하는 기능을 합니다. 따라서 어색하나마 해당 내용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육일 후에 예수께서 ‘그를’ ‘베드로를’, 그리고 ‘그를’ ‘야고보를’, 그리고 ‘그를’ ‘요한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가셨다.

마가복음이 이렇게 이 세 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씩 힘주어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6일 전에 겪었던 사건과 본문 말씀이 매우 긴밀하게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이 고난을 겪으시고 죽임 당하신 후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복음의 핵심을 비로소 말씀하셨습니다. 

2021년 8월 29일 일요일

위기부천명(謂己不天命)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공격하며 명분으로 그의 죄악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으뜸가는 어진 이를 죽이며(剝喪元良, 박산원량),
간하고 보필해주는 신하를 해치고 학대하며(賊虐諫輔, 적학간보),
자기에게 천명이 있다고 하며(謂己有天命, 위기유천명),
경건함은 실천할 것이 못되다고 하며(謂敬不足行, 위경부족행),
제사는 이로울 것이 없다고 하며(謂祭無益, 위제무익),
난폭해도 해로울 것이 없다고 하니라(謂暴無傷, 위포무상)."
<書經> 泰誓 中

하나하나 곱씹어볼 게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내 마음 깊이 다가온 것은 "위기유천명"이다.
목회자들의 흔한 착각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목사들이 정신건강에 취약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일을 하므로 나는 전적으로 옳다는 생각은 너무나 위험하다.
그것은 곧 나에 대한 모든 비판과 도전을 악으로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핏대를 세우고 '이단' 혹은 '사탄'을 입에 올리는 이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대신, 목회자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연약한 죄인으로서 자신이 끊임없이 "위기부천명"(謂己不天命)하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치지 않을 수 있다.
그제야 비로소 나를 살리고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

2021년 8월 26일 목요일

[다큐 리뷰(추천)] "플레이북: 게임의 법칙"(넷플릭스)



각 스포츠 분야의 걸출한 지도자들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다.
반면교사를 다룬 다큐들에 질려갈 때쯤 우연히 이 시리즈를 발견했다.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깊이 감동 하고 큰 위로를 받았다.

이를 통해 얻은 리더십에 대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패배를 두려워하지 말고, 직면하여 성찰을 얻어야 한다.
2) 1)을 바탕으로 승리에 대한 자기만의 분명한 철학을 세워야 한다.
3) 2)의 철학을 선수들과 원활히 공유해야 한다.
4) 3)을 위해 겸손한 태도와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https://www.netflix.com/kr/title/81025735

2021년 8월 24일 화요일

[독서 후기] 자기 앞의 생

 "엄마는 중절수술을 받지 못했는데, 그땐 그것이 계획적인 살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로자 아줌마는 그 얘기를 늘 입에 달고 살았다. 그녀는 교육도 받고 학교도 다녔다고 했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문학동네) 256쪽.

기존의 사회 체계에서 밀려난 이들의 연대.
거대한 운명의 비극과 마주하는 용기.
그리고 살아감의 위대함.

이 모두를 탁월한 문체로 덤덤하게 그려냈다.
슬픔과 유머를 함께 담아내는 원숙한 문장을 펼쳐냈다.

단순히 저자와 관련된 극적인 이야기로 묻힐 책이 아니다.
마음 속 깊이, 오랜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