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6일 월요일

체성분 검사를 확인하고.


3개월 만에 체성분 검사를 했다.

옆에서 확인한 트레이너, 윤광원 목사가 무척 놀라워했다.


아마도 지금까지 내 인생 최대 근육량일 거다.
1년 훌쩍 넘기도록 꾸준히 운동한 보람을 느낀다.

어느새 운동은 가장 즐기는 취미이자 습관이 되었다.
이렇게 나를 세미하게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한다.

센터에서 땀 흘리며 깨달은 중요한 교훈이 있다.
바벨에 깔리면 다치지만 밀어 올리면 더 강해진다.

앞으로도 여러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를 거다.
때때로 몸이 무너지고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세를 고쳐잡고 다시 바벨을 움켜쥘 거다.
이런 마음가짐이 운동을 통해 얻은 제일 소중한 결실이다.

살아오며 마주한 제일 의미있는 숫자를 통해 분명히 확인했다.

2025년 1월 4일 토요일

영화 "묵공"(墨攻, 2006) 후기

"묵자"를 다 읽은 기념으로 이 영화를 오랜만에 찾아보았다.
사실 조금 지루했다.
이른바 흥미진진한 전쟁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지금껏 내가 본 가장 절절한 반전(反戰) 영화다.
전장의 활극 대신 처절함을 보여준다.
그 비극의 토대가 되는 부패한 정치의 본성을 드러낸다.
이를 배경으로 중간중간 등장 하는, 묵가 철학을 바탕으로 한 대사들이 날카롭게 마음을 파고든다.

혼란한 시대 속에서 붙잡아야 할 진리가 무엇인지, 참으로 이긴다는 것은 무엇인지,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 건강한 지도자의 자질은 무엇인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풍성하게 안겨준다.
게다가 안성기, 최시원 배우의 출연으로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여러모로 어수선한 시기에 이 영화를 추천한다.
철학적 바탕이 되는 "묵자" 또한 거듭 권한다.
부디 저마다의 전쟁에서 굳세게 살아남기를 축복한다.



2024년 12월 26일 목요일

『묵자』(을유문화사, 2019) 서평

『묵자』(을유문화사, 2019) 서평

2년을 조금 넘겨 마침내 묵자 독서를 마쳤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을 거다. 묵자는 교과서를 통해 만난 인물이다. 그의 핵심 주장을 묻는 문제에 ‘겸애’(兼愛)라고 답을 적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만난 그의 가르침은 이를 훨씬 넘어선다. 예수님의 복음과 비슷해 보여 흥미를 끄는 ‘사랑’은 묵자의 광대한 사상 일부이다. 엄밀히 말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배경에서 다른 의미로 사랑을 외쳤다. 묵자는 1세기 서아시아가 아닌 춘추전국시대 중국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당연하게도 같은 시기 활약한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 등과 많은 내용을 공유한다.

묵자는 거친 혼란 한복판에서 무엇이 진정한 이로움인지를 묻는다. 즉, 참으로 이기고 성취하고 번영하기 위해 온 백성을 차별 없이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도자가 권위를 내세우고 자기 이익을 앞세우며 폭압을 휘두르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냉정하게 지적한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사랑은 감성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가르침이다.

묵자의 가르침 중에서 두 가지가 흥미로웠다. 우선 그는 ‘인재 등용’을 강조한다. “묵자”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군주가 한 나라를 다스리는 데 그 나라 안의 어진 선비를 아껴 주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마지막 71편에서도 신하들의 기질을 살펴 “명성과 실제가 상응”하도록 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처럼 묵자는 훌륭한 인물을 등용하고 그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을 수미상응을 이루는 책의 시작과 끝은 물론이고 곳곳에서 힘주어 말한다. 

즉, 묵자는 “인사가 만사”라는 보편적인 가르침을 가장 실질적이고 호소력 있게 외친 사상가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지도자 자신의 마음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관련해서 다음 문장에 내게 크게 와 닿았다.

"좋은 인재는 부리기가 어렵지만 군주로 하여금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 때문에 큰 강은 개울물이 자신에게 흘러 들어와 차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니, 커질 수가 있다."
良才難令 然可以致君見尊
是故로 江河 不惡小谷之滿己也 故 能大
제1편 中, 최환 옮김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책의 후반부에서 성을 방어하는 기술을 자세히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도구와 병력 운용 방식 등이 세세하게 상당한 분량으로 언급한다. 이를 통해 묵자의 사상은 세속의 거친 소용돌이에서 한 걸음 벗어난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드러내 준다. 그와 제자들이 참혹한 전장을 누빈 결과다. 전투에 직면해서는 현실적인 방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이 모든 내용을 확인한 후에 묵자가 외친 ‘사랑’이 더욱 묵직하게 마음을 두드리는 걸 느꼈다. 참으로 성을 지키고 승리하기 위해, 공동체 구성원을 차별 없이 보듬고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에게 의견 통일을 숭상하도록 하려는 자가 백성을 사랑하는 데 힘쓰지 않으면, 백성을 부릴 수 없다.
반드시 힘써 백성을 사랑해야만 비로소 그들을 부릴 수 있고, 그들에게 믿음을 나타내어야만 비로소 그들을 도울 수 있으며, 
부귀로써 그들을 앞에서 인도하고 정확한 벌로써 뒤에서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是故 子墨子曰 
凡使民尙同者 愛民不疾 民無可使 
曰 必疾愛而使之 致信而持之
富貴以道其前 明罰以率其後
제13편 中, 최환 옮김

묵자는 치열한 세상 속에서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가 어떻게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아는지를 알려 준 스승이다. 그는 사랑이 무시와 조롱을 당하는 시대에 그럼에도 꿋꿋이 사랑으로 다스려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 주었다.

지금껏 그러했듯이 나에게 동양 고전 읽기는 앞으로 목회를 위한 준비다. 부목회자와 동역하는 담임 목사가 될 경우를 그려본다. 그에게 현실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진실한 사랑을 베푼 담임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그러한 태도를 지켜야 진정 교인들을 사랑한 목회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새로운 포만감을 느끼며 묵자 읽기를 마쳤다. 다른 이들에게도 적극 추천한다. 다음으로 읽을 동양 고전은 묵자와 대척점에 선 “한비자”로 골랐다. 벌써 기대된다. 생각과 마음의 크기가 더욱 커지길 소망한다.

2024년 12월 23일 월요일

사무엘상 20장 12~23절 "사랑이 그를 움직이다"

2024년 12월 23일, 승리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사무엘상 20장 12~23절 "사랑이 그를 움직이다"

1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언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아버지를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네게 알리지 않겠느냐
13 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는데도 내가 이 일을 네게 알려 주어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14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17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18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
19 너는 사흘 동안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20 내가 과녁을 쏘려 함 같이 화살 셋을 그 바위 곁에 쏘고
21 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22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23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하니라  


사무엘상 20장은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격정적인 대화를 기록합니다. 지금 두 사람의 처지는 완전히 정반대입니다. 다윗은 목숨을 위협받으며 왕에게 쫓기는 신세입니다. 그의 위험한 상황을 온 나라가 알고 있습니다. 다윗을 보호했다는 이유로 심지어 사무엘에게까지 사울이 군대를 보냈습니다. 하물며 평범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작은 호의라도 보였다가는 어떤 화를 입을지 모릅니다. 따라서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에서 철저히 고립되어 절망에 빠졌습니다.

반면에 요나단은 이스라엘 왕세자입니다. 아버지 사울에 이어 머지않아 왕관을 머리에 쓸 사람입니다. 장차 권력을 물려받을 실세입니다. 게다가 블레셋과 전투에서 부하 한 명만 데리고 무려 적군 20명을 무찔렀습니다. 왕으로서 훌륭한 자질을 몸소 증명했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어리석은 명령으로 굶주린 군인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따뜻한 인격까지 두루 갖추었습니다. 따라서 많은 백성이 요나단에게 기대를 걸었을 겁니다. 궁궐 안에 여러 대신들 역시 그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을 것입니다. 요나단은 누구에게도 아쉬울 게 없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이 부와 권력을 가득히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다윗은 오늘 본문 바로 앞 단락에서 요나단의 호의를 간청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권력자의 생각은 최고급 정보입니다. 사울이 정말 자기를 죽일 마음인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만약 왕의 살기가 진심이라면 부디, 앞서 맺은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리고 혹시나 어떤 허물이 빌미가 되어 자기가 결국 죽게 된다면 차라리 요나단이 직접 처리해 달라고까지 당부합니다. 다윗의 처절한 무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의 절박함을 발견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 요나단을 향한 그의 깊은 신뢰를 새삼 알게 됩니다.

그러자 요나단이 다윗을 안심시킵니다. 일단 다윗이 가장 궁금해하고 불안해하는 점을 정확히 다시 확인시킵니다. 그를 향한 아버지의 뜻을 분명히 파악해 보겠다고 알려줍니다. 요나단의 적극적인 경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있습니다. 공포에 떨고 있는 그의 내면을 먼저 따뜻하게 보듬어 줍니다.

이것만으로도 요나단의 훌륭한 성품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사실 요나단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게 훨씬 현명해 보입니다. 다윗을 없애는 게 여러모로 요나단에게 유리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기꺼이 보호합니다. 심지어 아버지에 맞서면서까지 다윗의 편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요나단의 더욱 놀라운, 성숙한 인격을 알려줍니다. 본문 14~16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14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맥락을 덮어두고, 사람 이름을 지우고 이 세 절을 차근히 곱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새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14 그 대신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내가 주님의 인자하심을 누리며 살 수 있게 해주게. 내가 죽은 다음에라도, 15 주님께서 자네 다윗의 원수들을 이 세상에서 다 없애 버리시는 날에라도, 나의 집안과 의리를 끊지 말고 지켜 주게." 16 그런 다음에 요나단은 다윗의 집안과 언약을 맺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다윗의 원수들에게 보복하여 주시기를 바라네.”

만약 이름이 적혀있지 않다면 마치 도망자가 권력자에게 호의를 구하는 걸로 들립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요나단이 다윗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금 요나단과 다윗의 처지는 정반대입니다. 요나단은 부유한 왕세자이며 존경받는 장군입니다. 반면 다윗은 초라한 반역범 신세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자기가 약자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다윗에게 주님의 인자하심을 누리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아닌 요나단이, 도리어 ‘의리’를 지켜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떻게 이런 놀라운 상황이 펼쳐졌을까요? 요나단이 눈부시게 찬란한 신앙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던 데로 살고 싶어 합니다. 특히나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귀찮아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달콤한 아부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싫은 소리하는 사람들을 배척합니다. 요나단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요나단은 내면에서 욕망을 타고 들려오는 소음과 주위 사람들의 공허한 칭찬을 물리쳤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뜻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먼저 헤아렸습니다. 철저히 자기를 비우고 낮춰야 가능한 일입니다. 날마다 진리를 통해 자신을 정확히 마주한 결과입니다. 그런 까닭에 요나단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휘감은 부와 권력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본질을 꿰뚫어 봤습니다. 다윗이 비록 지금 당장은 겁에 질린 눈길로 자기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초라한 패배자입니다. 하지만 요나단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다윗이 결국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예견하였습니다. 그가 위대한 지도자로 주님의 뜻을 이스라엘 가운데 펼칠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요나단의 태도 덕분에 다윗은 분명 커다란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동시에 무척 놀라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런 다윗을 향해 요나단은 자신의 결심을 거듭 다짐하며 약속합니다. 이 때, 그런 요나단을 묘사하는 성경의 기록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17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17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요나단의 도무지 이해 못할, 위대한 행동과 태도를 성경은 간명하게 정리합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아하바>입니다. 사무엘상하에 총 여섯 번 나옵니다. 그중에서 무려 다섯 번이 요나단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사무엘상하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 중에 요나단이 가장 훌륭한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요나단을 통해 성경이 알려주는 사랑의 모범을 발견합니다. 진실로 닮아가야 할 사랑의 본질을 깨달았습니다. 요나단에게 사랑은 충동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맹목적인 집착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지혜를 통해 내린 가장 바람직한 결단입니다. 건강하고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위대한 신앙이 맺은 아름다운 결실입니다. 사랑이 그로 하여금 기꺼이 희생하게 했습니다. 사랑이 그를 움직여 섬김의 길을 걷게 했습니다. 사랑이 그를 뒤흔들었습니다. 그 결과 아버지 사울처럼 탐욕에 눈먼 괴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훌륭한 복음의 사람으로 일생을 살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단과 같이 사랑을 품고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날마다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사랑의 꽃을 피우며, 사랑의 열매를 맺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시길 소망합니다. 사랑만이 이 냉혹한 세상을 이겨내는 힘이며, 사랑만이 어리석은 거짓에 속지 않게 나를 일깨우는 온전한 진리인 까닭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참 사랑을 전해주셨습니다. 그 사랑의 무게와 깊이를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사랑을 실천하고 전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 부르심 가운데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 저마다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실 겁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사랑의 향기를 더해가길 축복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소명을 충실히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런 우리의 사랑 어린 발길을 분명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비록 다윗 같은 화려한 영웅이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요나단처럼 수많은 손해와 아픔을 겪는다 할지라도, 사랑을 이루는 우리의 걸음이 마침내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행진으로 완성된다는 소망을 품으시길 바랍니다. 저마다의 가슴 속에, 상처로 얼룩진 멍든 사랑의 흔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눈부신 생명과 희망의 증거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기도
위대한 사랑의 주 하나님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여, 사랑의 눈으로 다윗을 돌아보고 섬긴 요나단의 모습을 말씀을 통해 확인합니다. 저희 역시 세상의 헛된 탐욕을 물리치고 주님 뜻을 온전히 따르기 원합니다. 사랑으로 사랑을 알아가고 실천하길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몸소 보이신 위대한 사랑을 깨닫고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24년 12월 21일 토요일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 후기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이 소설을 향한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다.

마침, 이 책의 배경인 성탄절을 앞두고 있다.
마침, 잠깐 여유가 생겼다.
마침, 부담 없이 적은 분량이다.

리디북스에서 결재하고 전자책을 내려받았다.
매력적인 문장과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었다.
현실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돌아보는 생생한 울림을 느꼈다.
"앵무새 죽이기"(하퍼 리) 이후 참 오랜만에 받은 감동이다.

마침,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 중이다.
마침, 영화 또한 호평을 받고 있다.
마침, 적절한 상영관을 발견해 감상했다.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전날 다 읽은 책의 장면을 바로 다음 날 영상으로 감상했다.
아일랜드의 질감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촬영과 킬리언 머피를 비롯한 배우들의 호연에 감동이 증폭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리디북스의 TTS 기능으로 책을 다시 '들었다.'

매년 겨울, 성탄 트리에 불이 켜지고 캐럴이 들릴 때마다 이 책과 영화가 떠오를 것 같다.
주인공 빌 펄롱처럼 따뜻함과 배려를 지니고 용기를 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자 클레어 키건처럼 굳건한 문장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마침, 낯설게 반가운 성탄의 온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왔어.' 펄롱이 기운을 돋웠다. '조금만 가면 집이야.'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