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1일 월요일

[서평] 히브리성서 개론 - 존 콜린스

구약학을 전공 하긴 했지만 별로 아는 게 없다는 부끄러움과 책임감에 꾸준히 전공 서적을 읽기로 지난 4월에 결심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이 책을 책장에서 꺼냈다.

구약 성경 각 권의 주제 의식과 신학적 논점을 쉬운 문장으로 고르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게다가 교단 신학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비평적인 시선을 엿볼 수 있다는 것도 매우 유익했다. 각 장의 앞부분에 있는 요약과 풍부한 자료도 훌륭하다.

아쉬운 점은 예일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이다 보니 이미 익숙한 성경 내용을 재진술하여 지루함 면이 조금 있다. 게다가 번역도 매우 아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구약학의 기본기를 다지는데 매우 유익한 개론서로 충분히 추천할만하다.


"나는 (성경) 본문을 역사적 맥락에 두고, 본문을 시간의 역사와 연결하고, 고대의 문학적 관습을 존중한다.

그러나 성서를 역사적 맥락에 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다. 성서를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성서는 고대의 문헌일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현대 삶의 길잡이이기도 하다.

성서를 책임적으로 사용하려면 성서가 우리의 현대 상황을 염두에 두고 기록되지 않았으며 우리 시대와는 동떨어진 고대 문화를 배경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시작해야 한다.

성서를 역사적 맥락에 두고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성서가 참으로 이질적인 책이라는 점을 잘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위대한 문학도 그렇게 이질적이지는 않다.("어느 위대한 문학과 마찬가지로 이질적이지 많은 않다." - 문맥에 따른 수정) 고대 세계와 현대 세계 사이에는 항상 유비가 있다. 성서의 법과 예언자의 설교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를 반복해서 제기한다.

성서가 이 문제들에 대해 쉬운 답변을 주지는 않지만 그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씨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31쪽.


"히브리성서가 가장 지속적으로 말하는 주제 중의 하나는 우상 비판이다. 이것은 새기거나 녹여 만든 신상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창조된 질서의 일부일 뿐인 것을 절대화하려는 인간 성향에도 해당된다.

아마도 성서 역사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는 성서 자체가 너무 자주 우상으로 다루어져왔고, 성서의 메시지는 무시하면서도 성서 자체를 존경하고 숭상해 왔다는 것이다.

아브라함부터 욥까지 성서 속 인물들은 망성일 없이 전능하신 분과 논쟁한다. 성서의 독자들에게 기대하고 싶은 최소한의 태도는 이와 같은 비평 정신으로 성서 본문과 대화하라는 것이다." 464쪽.

2020년 12월 30일 수요일

[영화 리뷰] 그을린 사랑(Incendies, 2010)

한 사람의 품격은 그가 타인의 비극을 대하는 태도로 드러난다.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삶의 불행을 원숙하게 빚어낼 때 비로소 훌륭한 작가와 작품이 된다.

어느새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른 감독 드니 빌뇌브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데뷔작 "그을린 사랑"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몰랐던 세계 현대사의 비극 속으로 이끈다. 바로 레바논 내전이다.

종교와 민족을 비롯한 여러 원인으로 끔찍한 참상이 오랫동안 이어졌고 그 한복판에 있었던 여인은 무력하게 짓밟힌다. 게다가 폭력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더욱더 충격적인 상황으로 그녀를 몰아넣는다.

충분히 자극적이고, 어떤 면에서 상업적으로도 효용 가능한 소재이다. 하지만 영화는 폭력을 함부로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그 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배려하며 어루만진다. 그 결과 끔찍한 절망에 대한 거부감을 딛고 일어나 그 모두를 넘어서는 숭고한 사랑과 희망의 이야기를 안겨주고 끝을 맺는다.

이로써 이 영화는 위대한 감독의 등장을 세계에 알렸다. 빌뇌브는 "프리즈너스"와 "시카리오", "컨택트"를 비롯한 후속작들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계속 입증했다. 그런 그의 영화들이 새롭게 이해된다. 그 모두를 관통하는 삶에 대한 태도가 새삼 경이롭게 느껴지고 다시 보고 싶어졌다.

결국 드니 빌뇌브의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할리우드의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 화려한 작품들보다 '날 것'으로 가득한 "그을린 사랑"을 보아야 한다. 이로써 나는 데이미언 세졜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주저없이 그의 이름을 말하게 되었다.

운명처럼 마주한 이 영화를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지금도 세상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폭력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그 현실 속에 수많은 이들이 희생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니 빌뇌브는 그러한 비극을 담아내고 넘어서는 영화가 가진 미덕과 책임을 충분히 알고 있는 감독이다. 그의 시선에 경이를 보내며 다음 작품들을 기대한다. 그의 원숙한 태도를 배우고, 닮고 싶다.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29720

2020년 12월 17일 목요일

긴장의 방향

1년 전 일이다.
신학과 04학번 후배 윤대운 목사에게 연락이 왔다.
대구 근처 부대 군종 목사로 임지를 옮기게 되었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약속을 잡고 해당 군부대를 찾아갔다.

위병소 통과를 위해 대운이가 마중 나왔다.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장면을 목격했다.
'장교'인 군종 목사가 '사병'인 위병소 병사에게 경어를 쓰는 모습이었다.

군 교회를 둘러본 후 방금 있었던 일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자 대운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임관하고 군종병에게도 한 번도 말을 놓은 적이 없어요.
그렇게 되면 저도 모르게 함부로 대할까 봐 무섭거든요"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그 장면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한 사람의 진가는 그가 무엇에 긴장하는 지를 통해 드러난다.
그 긴장의 방향이 아래로 향하면 향할수록 내면이 깊어진다.
목사로서 성취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바라는 소원이다.

2020년 12월 7일 월요일

[영화 리뷰] 아픈 만큼 사랑한다(2018)

[영화 리뷰] 아픈 만큼 사랑한다(2018)

20살, 장신대 신학과에 입학하며 비장하게 순교를 각오했었다.
시간이 흐르며 '덜 넓은 길'을 걷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점점 더 넓은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드넓은 길을 꿈꾸기도 한다.
그런 욕망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비현실적인 금욕 뒤에 숨겨진 탐욕을 경계한다.
다만 그런 핑계로 마음의 무뎌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내게 이 영화는 소중한 일깨움을 주었다.
비록 전체적인 만듦새는 아쉬웠지만 '박누가'라는 한 위대한 인물의 아름다운 삶을 드러내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선교사님과 동일한 길을 걸을 자신은 전혀 없다.
아골 골짝 빈들에 갈 자신도 여전히 없다.
목회적인 야망을 애써, 완전히 뿌리칠 마음도 없다.
다만, 복음 전도자의 본질을 붙잡고 부끄러움을 알고 살고 싶다.
너무나 많은 울림을 느끼고 감동 한 시간이었다.
박누가 선교사님의 영상을 틈틈이 찾아보고 싶다.
부디 그분의 뜻이 더욱더 널리 전해지길 소망한다.

영화정보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54453

2020년 12월 5일 토요일

[영화 리뷰] "콜로니아"(2015, Colonia Dignidad) 후기

[영화 리뷰] "콜로니아"(2015, Colonia Dignidad) 후기

*스포일러 포함

엠마 왓슨과 다니엘 브륄이라는 화려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정식 개봉을 못한 채 묻혔다. 하지만 실제 있었던 컬트집단을 다루었다는 소재만으로도 나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마침내 올레tv로 보게 되었다.

영화는 칠레에 실존했던 '콜로니아 디그니다드'의 종교적, 심리적 문제 보다는 당시 칠레의 정치적 현실에 집중하고 그 맥락안에서 해당 집단의 패악을 조명한다.

치열한 냉전 속에 사회주의자 아옌데 대통력이 쿠데타에 의해 물러난다. 그렇게 정권을 잡은 독재 권력은 사이비 교주 폴 쉐퍼와 공생관계를 맞는다. 그 결과 권력의 비호 아래 콜로니아 디그니다드에는 끔찍한 범죄가 오랜세월 일어났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대중적인 접근태도를 보여준다. 폭력을 최대한 간접적으로 묘사할 뿐만 아니라 가상의, 이상적인 인물을 통해 나름의 해피엔딩도 연출한다.

그 과정에서 개연성이 허술해지고 인물묘사가 흐릿해진다. 전반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 감독의 고뇌와 관객에 대한 배려도 느껴진다. 있는 그대로 다루기에는 실제 사건이 너무나 참혹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역사적인 범죄를 드러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문장에 마음을 실으며 리뷰를 맺고 싶다.

"In memory of the victims of Colonia Dignidad."
"콜로니아 디그니다드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영화정보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48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