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30일 수요일

[영화 리뷰] 그을린 사랑(Incendies, 2010)

한 사람의 품격은 그가 타인의 비극을 대하는 태도로 드러난다.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삶의 불행을 원숙하게 빚어낼 때 비로소 훌륭한 작가와 작품이 된다.

어느새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른 감독 드니 빌뇌브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데뷔작 "그을린 사랑"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몰랐던 세계 현대사의 비극 속으로 이끈다. 바로 레바논 내전이다.

종교와 민족을 비롯한 여러 원인으로 끔찍한 참상이 오랫동안 이어졌고 그 한복판에 있었던 여인은 무력하게 짓밟힌다. 게다가 폭력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더욱더 충격적인 상황으로 그녀를 몰아넣는다.

충분히 자극적이고, 어떤 면에서 상업적으로도 효용 가능한 소재이다. 하지만 영화는 폭력을 함부로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그 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배려하며 어루만진다. 그 결과 끔찍한 절망에 대한 거부감을 딛고 일어나 그 모두를 넘어서는 숭고한 사랑과 희망의 이야기를 안겨주고 끝을 맺는다.

이로써 이 영화는 위대한 감독의 등장을 세계에 알렸다. 빌뇌브는 "프리즈너스"와 "시카리오", "컨택트"를 비롯한 후속작들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계속 입증했다. 그런 그의 영화들이 새롭게 이해된다. 그 모두를 관통하는 삶에 대한 태도가 새삼 경이롭게 느껴지고 다시 보고 싶어졌다.

결국 드니 빌뇌브의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할리우드의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 화려한 작품들보다 '날 것'으로 가득한 "그을린 사랑"을 보아야 한다. 이로써 나는 데이미언 세졜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주저없이 그의 이름을 말하게 되었다.

운명처럼 마주한 이 영화를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지금도 세상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폭력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그 현실 속에 수많은 이들이 희생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니 빌뇌브는 그러한 비극을 담아내고 넘어서는 영화가 가진 미덕과 책임을 충분히 알고 있는 감독이다. 그의 시선에 경이를 보내며 다음 작품들을 기대한다. 그의 원숙한 태도를 배우고, 닮고 싶다.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29720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