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1일 화요일

마가복음 11장 1-11절 "함성을 뒤로 하고"

사순절 세 번째 주일, 2017년 3월 19일, 부산진교회 청년설교, 정대진 목사
마가복음 11장 1-11절 "함성을 뒤로 하고"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먼저 사진 몇 장을 함께 보겠습니다. 

 1934 뉘른베르그 나치 집회


 1935 뉘른베르그 나치 집회

 1937 뉘른베르그 나치 집회 

이 세장의 사진들은 20세기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인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고 본격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기 전까지 뉘른베르크에서 매년 시행한 나치 전당대회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여기에 평균 50만 명 정도의 당원들이 참석했고 1937년 집회의 경우 무려 100만 명 가량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당시, 이 집회를 참관하며 취재한 영국 기자 “버지니아 카울스”(Virginia Cowles)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총통이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군중은 점점 더 흥분했다. 몇 분이 흘렀고, 기다림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As the time for the führer's arrival drew near, the crowd grew restless. The minutes passed and the wait seemed interminable.

갑자기 북소리가 커졌고, 세 대의 오토바이가 바람막이 앞 유리에 펄럭이는 노란 깃발을 꽂고 문을 통과했다. 
Suddenly the beat of the drums increased and three motor-cycles with yellow standards fluttering from their windshields raced through the gates.

몇 분 후, 검은 차량 행렬이 신속하게 집회장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중 한 대에, 히틀러가 나치 경례로 손을 밖으로 내뻗은 채 앞자리에 서 있었다.
A few minutes later a fleet of black cars rolled swiftly into the arena: in one of them, standing in the front seat, his hand outstretched in the Nazi salute, was Hitler. 

(중략) 그 다음 히틀러는 연설을 시작했다. 군중은 갑자기 침묵했지만, 북소리는 계속 울렸다. 히틀러는 밤의 어둠 속으로 거친 목소리를 내뱉었고, 이따금 군중이 노도와 같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Then Hitler began to speak. The crowd hushed into silence, but the drums continued their steady beat. Hitler's voice rasped into the night and every now and then the multitude broke into a roar of cheers.

일부 청중은 앞뒤로 몸을 흔들며, 열광의 황홀경에 빠져 거듭 Sieg Heil(승리 만세!)을 외쳐댔다.
Some of the audience began swaying back and forth, chanting 'Sieg Heil' over and over again in a frenzy of delirium.

나는 주변 사람들의 얼굴들을 둘러 보았다. 사람들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I looked at the faces around me and saw tears streaming down people's cheeks.”

저는 역사를 올바르게 바꾸는 힘은 소수의 영웅들이 아니라 불의에 맞서는 보통 사람들의 끈질긴 연대와 저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은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좋은 뜻을 위해 함께 뭉치고 움직일 때, 마침내 위대한 결과를 낳았음을 역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일 때 쉽게 이성의 끈을 놓고 감정과 욕망에 휩쓸려가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방금 소개한 히틀러 시대의 독일입니다. 그는 절대다수의 독일국민의 지지 아래 유대인과 집시를 비롯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학살했고 전 유럽을 초토화시킨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아마도 여기까지는 이러저러한 기록과 매체를 통해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더욱 명심해야할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이러한 히틀러를 향해 당시 교회 역시 적극적인 열광과 환호를 보내며 그의 끔찍한 범죄 행위에 눈을 감고 동조한 일입니다. 관련해서 화면에 있는 사진 보시겠습니다.

이 사진은 우리가 앞서 본, 1934년 뉘른베르크 나치 집회에 있었던 한 장면입니다. 히틀러가 악수하고 있는 오른쪽 인물은 당시 독일 개신교를 대표하는 ‘루드비히 뮐러’ 목사 입니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사람은 가톨릭 지도자인 ‘애보트 샤흐라이트너’ 주교 입니다. 즉, 독일 기독교의 양대 교파 수장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히틀러를 지지하는 모습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사건이 단지 하나의 이벤트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때 대다수의 독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히틀러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함성을 보내며 심지어 그를 메시아처럼 섬겼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마지막 사진 보겠습니다. 

사진 속 장소가 짐작 되십니까? 놀랍게도 1935년도에 촬영된 당시 독일교회 예배당의 모습입니다. 강대상을 덮은 드림천에 십자가가 아닌 나치의 상징인 꺾인 십자가, “하켄크로이츠”가 크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벽면 장식에도 역시 하켄크로이츠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사진을 통해 히틀러의 범죄를 막아서도 모자를 당시 독일교회가 오히려 정반대로 열렬히 그를 따르고 지지함으로 세계를 비극으로 몰아넣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증오와 광기로 뭉친 군중에 의해 그 사회가 망가졌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변질시킨 어두운 역사는 그 전과 후에도 끊임없이 반복되며 세계와 교회를 어지럽혔음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또 다른, 눈먼 함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이 세 복음서는 모두 예수님의 공적인 삶을 고향 갈릴리에서 출발해서 예루살렘에 마무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그래서 이들 복음서는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예루살렘 여행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여정에서 당신께 모여드는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심지어는 야이로의 딸과 나사로를 비롯해서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리는 놀라운 일도 보여 주셨습니다. 게다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어른만 5천명을 먹이는 신비로운 일도 행하셨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발걸음과 더불어 그분에 대한 화려한 소문들도 함께 움직였습니다. 게다가 때마침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을 앞두고 지중해 곳곳에 흩어져있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예수라는 그 영웅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나누며 수근 거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가슴에는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감격이 벅차올랐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바로 그 ‘메시아’일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침내 그 예수님께서 지금 막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다는 소식이 들려와 삽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맞이하러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인물들에게 행하는 그리스-로마 관습에 따라 자신들의 겉옷을 길 위에 펴고 또 그 위에 잎사귀 무성한 나뭇가지들을 올려놓으며, 그 유명한 “호산나!”, ‘우리를 구해 주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이 때, 19절에 “소리 지르되”로 옮긴 그리스어 <에크라존>은 “외치다!”라는 뜻의 <크라조>의 ‘미완료형’으로서 “반복”의 의미를 가집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자리에 모여든 사람들은 “우리를 구해 주소서!”라는 외침을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애타게 거듭거듭 반복습니다. 마가복음 저자는 이를 정확한 시제로 기록함으로써 그날, 군중들의 흥분과 열광을 보다 생생히 묘사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이 모습은 굉장히 은혜롭고 감동적인 장면으로 보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이 경배하며 맞이하고 환호하는 모습은 오늘날 뜨거운 예배의 한 순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날 그 자리에 가득히 몰려든 사람들이 외친 함성 속에 자리 잡은 그들의 뒤틀린 탐욕을 주목해야 합니다.


다함께 10절 말씀 읽겠습니다.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우리는 여기에서, 그날 주님을 향해 많은 이들이 반복하며 외쳤던 “호산나”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입니다. 즉, 그들의 조상 다윗이 이룩했던 크고 강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윗처럼 용맹하게 군대를 지휘해서 지금 자신들을 괴롭히는 로마 제국을 물리쳐 줄 것을 간절히 소원하며 그것이 곧 이루어 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도 “그들 조상 다윗의 나라”를 가르치거나 선포한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오직 “하나님 나라”를 선언하셨을 뿐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전하신 하나님 나라는 순수한 의미로서의 다윗의 나라와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복음은 로마제국의 폭력을 비롯한 세상 속에서 실제로 부딪히는 온갖 어려움들과 맞서 이겨내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의 욕망을 그대로 이루는 그들만의, 다윗의 나라가 아닙니다. 인종과 성별과 출신 지역을 비롯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나누는 모든 경계를 허무는 하나님의 온전한 다스림입니다.

그렇기에 그날 예루살렘 성 입구에서 주님을 둘러싼 무리들이 외친 함성은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 복음을 신실하게 따르겠다는 순수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오랫동안 눌러왔던 자신들의 욕망을 담은 고함이었습니다.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는 결코 예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았고 그들의 간절한 바람은 하나님 나라의 길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불과 며칠 만에 빌라도의 법정에서 동일한 예수님을 향해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러므로 그날 그들이 아무리 열광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하고 허리 숙여 경배하다 할지라도 그 많은 무리와 주님은 결코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때 주님께서 하신 행동을 주목해야 합니다. 다함께 2절 말씀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예루살렘에 들어서자마자 어떤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들에 의해 어떤 일이 펼쳐질지 충분히 짐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 앞에서 하실 행동을 차근히 준비했습니다. 그것은 제자 둘이 맞은 편 마을에서 끌고 온 어린 나귀 위에 타고 성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날 예루살렘 성 입구에 몰려든 평범한 유대인이라고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 곧 예수님께서 다윗 왕처럼 용맹스럽게 군대를 모으고 이끌어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주리라 믿는다면 그분께서 여러분 눈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거라 기대하시겠습니까? 당연히 그 시대 다른 용감무쌍한 장군들과 마찬가지로 멋진 말을 타고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그들의 소망과는 정반대로 볼품없는 작은 나귀위에 올라타신 채 무심히 그들을 스쳐지나가셨습니다. 그 모습은 단지 멋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우스꽝스럽고 어이없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들의 부푼 기대와 바람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김을 빼는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예수님의 명백한 의도가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시며 말없이, 그러나 또각 거리는 나귀의 발굽소리와 더불어 깊은 울림으로 다음과 같은 당신의 뜻을 단호히 전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들이 바라는 그런 메시아가 아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리스도이다.

나는 너희들의 바라는 욕망을 이루는 일에 관심 없다.
나는 너희들의 욕망을 넘어서는 진정한 생명을 이루려 왔다.

나는 너희들이 바라는 조상 다윗의 나라를 세우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선언하며 세우려 왔다.”

그리고 당신을 향해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을 묵묵히 지나 그들의 함성을 뒤로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십자가의 길로 올곧게 걸어가셨음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코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때때로 굉장히 놀랍고 위대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일 역시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있을 때, 고민과 성찰을 멈추고 본능적인 욕망에 따라 움직일 위험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군중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참 뜻이 무엇인가 고민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그릇된 소원을 주님의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할 유혹에 더 많이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자 있을 때는 물론이고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있을 때, 심지어 함께 찬양하며 예배하는 중에도 신앙의 이름으로 덧칠한 욕망을 떨쳐내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로 향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아무리 그럴듯한 이유를 가지고 사람들이 모여 들고, 가슴 뛰는 세련된 감동이 흘러넘친다 할지라도 군중이 외치는 함성의 본질을 항상 부지런히 살펴야 합니다. 소위 ‘은혜 받았다.’고 말하는 그 감정의 실체를 조심히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안에 어떤 악한 본성들이 꿈틀거리고 있는지 파악하고 경계하는 것을 절대로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외부의 대형집회나 부흥회에 참석할 때, 앞에 마이크를 잡고 서 있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유도한다고 해서 무조건 아멘! 을 따라 외치면 안 됩니다. 아무리 가슴 뜨겁게 신앙 감정을 자극한다 할지라도 함부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선 안 됩니다. 그렇게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군중에 휩쓸려 갈 때, 마치 나치 시대 독일 국민과 교회들처럼 그리고 예루살렘 성 입구에 몰려든 많은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향해 열광은하지만 정작 주님의 마음과 정반대의 그릇된 욕망을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리는 사람들의 일그러진 함성을 뒤로하고 나귀 위에 올라탄 예수님처럼 묵묵히 섬김과 나눔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 여정에 많은 귀감이 되는 한 인물을 소개 하며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바로 나치 시대, 독일의 목사이자 신학자였던 “디트리히 본 회퍼”입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 만에, 우리나라 나이로 22살에 박사 학위를 받고 24살에 교수 자격 취득한 천재적인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만 먹으면 탁월한 신학자로서 얼마든지 편안히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 독일 교회가 광기에 휩싸여 히틀러의 죄악에 동참하고 메시아처럼 섬길 때, 그는 라디오 연설을 통해 나치와 교회를 서슴없이 비판했습니다. 또한 명문 신학대가 아닌, 히틀러를 반대하는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세운 “고백교회”의 작은 신학교를 맡아 섬겼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자 독일을 떠나 뉴욕에서 교수로 지내며 피해 있으라는 권유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찾아올 위험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고민 끝에 다시 독일로 건너갔습니다. 그 후 히틀러 암살 계획에 동참하다 나치 정부에 의해 발각되어 독일군이 연합군에 항복하기 3주전에, 불과 40살의 젊은 나이에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독일교회는 전쟁 후, 지난날의 잘못을 처절히 반성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히틀러에 저항했던 “고백교회”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두운 시대 담대히 십자가 본연의 길을 걸었던 본 회퍼를 진심으로 추모하며 그의 위대한 뜻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단지 독일 교회만의 위대한 순교자로 기억되지 않고 맹목적인 욕망과 폭력의 함성에 위협 당했던 십자가의 빛과 생명을 지킨 20세기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전 세계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걸어갈 때,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자신들의 욕망을 정당화할 때, 그 눈 먼 무리에 함께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에 참된 은혜와 생명이 있음을 항상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리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겸손히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한 주님을 본받아 큰 무리의 사람들이 외치는 함성을 뒤로 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마음 다해 소망합니다.

준비한 영상 함께 보며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설교 후 기도 
참 승리와 영광의 하나님
예수님을 향해 열광의 함성을 외치지만 정작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기 주저한 그 날 예루살렘에 몰려든 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의 어리석음과 욕심을 발견합니다. 거룩한 사순절을 보내며, 십자가의 길이 향하는 하나님 나라의 희생과 진리를 더욱 밝히 깨닫는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린 나귀를 타고 사람들의 함성을 뒤로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봉헌기도 
겸손과 온유의 하나님
죄인들을 구하시려 스스로를 한 없이 낮추신 위대한 십자가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한 주간 삶으로 구별한 예물을 드립니다. 기쁘게 받으시어 주님의 구원을 갈구하는 이들을 위해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예담 청년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새 봄을 맞이하며 창조주의 생명을 만끽하게 하시고 스스로를 더욱 긍정하며 이웃을 향한 사랑의 품을 넓혀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환절기를 보내며 몸과 마음의 건강 늘 지켜주시고 여러 좌절 속에 무릎 꿇지 않고 당당히 맞서 나아가는 용기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참고자료
http://kk1234ang.egloos.com/2479913
https://goo.gl/nuvAM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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