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5일 일요일

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 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장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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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여름, <기독교사상>에서 처음 이 시를 읽었다.
그 후로 기회가 될 때마다 나의 꿈은 “동네 목사”라고 말하고 다녔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목사로 불리게 되었고 소박하게 생각했던 그 꿈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실감하고 있다.

험악한 시대를 살아가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 보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시인의 고뇌를 차마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그가 추억하는 이 동네 목사를 조금이나마 닮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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