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5일 일요일

창세기 3장 14-15절, 이사야 65장 17, 25절 "상함에서 회복으로"

부산진교회 오후예배(6.25 금식기도회), 2017년 6월 25일, 정대진 목사
창세기 3장 14-15절, 이사야 65장 17, 25절 "상함에서 회복으로"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지금 저는 6.25 설교와 고별 설교를 동시에 해야 하는 참 어려운 숙제를 가지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부산진교회에 부임한 후 첫 번째 오후예배 설교를 작년 1월 말에 여전도회 주관 예배 때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설교 역시 여전도회에서 주관하시는 6.25 금식기도회 시간에 하게 되어 참 뜻 깊게 생각합니다. 우리교회의 어머니들이신 여전도회에 정말 많은 마음의 빚을 졌습니다. 그 귀한 은혜를 앞으로 제 목회 여정 가운데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나머지 인사는 나중에 다시 이어서 하겠습니다.

1263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스페인 국왕 아라곤은 기독교 신앙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공개적인 토론을 열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위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도미니칸 수도승 파블로를 내세워 당시 최고로 존경받던 랍비 나흐마니데스와 논쟁을 시켰습니다. 이른바 “바르셀로나 논쟁”이라고 불린 유명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 때 주요 논점은 과연 예수님께서 메시야 인가? 였습니다. 여기서 랍비는 이사야 2장 4절 말씀 인용합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그는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기독교 교리를 이 말씀을 근거로 반박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언자 이사야에 따르면 메시야께서 오실 때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의 나라가 완성되는데 여전히 세상에는 폭력과 불의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기독교 국가와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더 열심히 전쟁에 앞장서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그들이 믿는 예수는 절대로 메시아일 수 없다고 랍비 나흐마니데스는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이후 대대적인 유대인 탄압을 피해 스페인을 떠나야 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다만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분명 주님께서는 “이미”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지만 아직 그 나라와 구원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이 세상에는 슬픔과 어둠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기독교인들조차 이 땅의 비극을 더욱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실재적인 죽음의 세력을 분명히 깨닫고 맞서기 위해 깊이 묵상해야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창세기 3장입니다. 여기에는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들과 그로인한 심판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을 덮친 근원적인 고통의 본질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뱀을 향한 하나님의 저주와 그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4~15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그가 앞으로 진흙 속을 배로 휘저어 다니며 살게 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 뱀과 사람들은 평생 원수가 됩니다. 왜냐하면 뱀은 흙에서 노는 아이들의 발꿈치를 물어서 상처를 입히거나 죽게 하고 그런 아기들의 어머니들은 분노하며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고대 중동사람들의 일상적인 공포에 근거한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흙 속을 기어 다니며, 자신들의 사랑스런 자녀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목숨을 빼앗는 뱀은 가장 깊은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 사람들은 그럼 뱀에게 인류의 근원적인 죄악 경험을 비추었고, 그 결과 성경 속 아담과 하와 이야기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3장 15절에 기록된 사람과 뱀 사이의 오랜 갈등과 긴장은 단지 생태계 속 먹이사슬 관계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죽음과 폭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이해할 때 함께 읽은 이사야 본문의 의미를 비로소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65장 17절 이하의 말씀은 주님께서 완성하실 당신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훗날 반드시 이 땅에 임할 그 나라는 아직 우리를 할퀴고 지나가는 온갖 결핍과 폭력이 사라진 세상입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의 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세계입니다.

예언자는 그 날의 아름다운 모습을 하나의 그림 같은 장면으로 소개 하고 있습니다. 다함께 25절 읽겠습니다.

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그 나라는 한 마디로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사라진 나라입니다. 살벌한 먹이사슬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 더 이상 서로가 서로를 짓밟거나 약탈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어울려 뛰놀고 사자가 힘없는 다른 동물을 사냥하지 않고 소처럼 풀을 먹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파충류가 등장합니다. 바로 뱀입니다. 방금 읽은 창세기 3장 15절에 기록된 말씀대로 뱀은 오랫동안 사람들을 “상하게”하는 대표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새 하늘, 새 땅에는 그러한 뱀이 여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해함”도 “상함”도 없습니다. 즉, 더 이상 뱀으로 대표되는 폭력과 죽음이 사라진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장면은 이사야에서 65장에만 나오지 않습니다. 11장에도 비슷한 모습을 더욱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린아이와 뱀에 관한 8절 말씀 읽어드리겠습니다.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여기에 보면 그 날에는 젖 먹는 간난 아기가 독사가 사는 굴 앞에서 장난치고, 젖 뗀 어린 아이는 심지어 그 안에 손을 넣어도 전혀 다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과 의도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 그 에덴동산에서 준엄하게 선포한 저주가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뱀이 아이들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지 않고 아이들의 어머니도 더 이상 뱀을 두려워하며 그들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불안과 폭력이 완벽히 사라진 세상이 마침내 완성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전 8세기 혼란의 시대 한 복판에서 울려 퍼진 예언자 이사야의 외침이었습니다. 또한 험난한 바벨론 포로기를 거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백성들 마음 깊이 품은 위대한 희망의 중심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의 길을 따라 예수님께서 오시어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완성될 생명과 평화의 왕국을 가리켜 요한계시록 역시도 이사야처럼 “새 하늘 새 땅”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처참한 “바르셀로나 논쟁”을 이어가며, 온갖 절망과 전쟁을 헤쳐 가는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 꿈꾸고 바라보아야할 믿음의 대상입니다. 

지금 우리는 여전도회연합회의 주관으로 “6.25 금식기도회”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침 오늘은 정확히 6월 25일 입니다. 67년 전 이날 새벽에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일어난 한국전쟁은 3년간 한반도를 끔찍하게 유린했고 그 심각한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날을 기념하며 북한의 전쟁 범죄를 명확히 규탄하고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분노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이는 곧 십자가 복음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과거와 현재 북한의 세습독재 정권의 추악한 죄악은 죄악대로 분명히 파헤치고 규탄하되 증오가 우리를 사로잡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6.25 못지않은 암담한 절망을 딛고 일어나 회복의 세상을 노래한 그 옛날의 예언자처럼 어둠 자체는 두 눈을 똑바로 뜨며 바라보되 동시에 주님께서 비추시는 빛을 향해 고개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가슴에 품고 뱀처럼 지혜로우면서도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이 땅의 복음통일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오늘날 분단된 조국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귀중한 소명이라고 믿습니다.

특히나 이곳 부산은 전쟁 시 피난민들을 품고 보살핀 임시 수도였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곳 영남 지방의 어머니 교회인 부산진교회의 교인입니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실천하는 일에 더욱 앞장서야 합니다. 부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며 분단으로 상한 이 나라를 회복시켜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이렇듯 상함을 회복하고 평화를 이루어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당신의 제자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더 이상 서로가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해 달려드는 세상이 아닌 어린아이와 뱀이 함께 어울려 뛰노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조금 어색하지만 설교를 시작하며 드린 인사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이종윤 목사님의 은퇴가 결정되고 주변의 존경하는 어른들과 계속 상의한 끝에 올해 안에 사임 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고 목회자로서 도의라는 생각을 지난달 초에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디든 저를 먼저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뜻하지 않게 대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따라서 부르시는 때에, 부르시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지었고 그 결과 오늘 이 시간 여러분과의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대전에서 자라며 대부분의 성장기를 보냈고 20살부터는 서울에서 살긴 했지만 부산은 언제나 제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젊은 시절을 보내시고 결혼하셔서 저를 낳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제가 부산진교회에 부임하게 되었을 때 마치 어머니 품에 다시 안기는 기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일신병원에서 태어났기에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또한 데이비스, 맨지스, 무어, 맥카이, 엥겔, 매킨지 등등 위대한 선교사님들의 피와 땀이 흥건히 배인 곳이기에 이곳에서 목회 초년기를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아직 참 많이 부족한 저에게 아낌없는 과분한 사랑을 보내주셔서 무척 감사했습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을 앞으로 목회하며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비록 아쉽게도 생각보다 이른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앞으로의 목회여정에서 제가 부산진교회 부목사 출신이라는 자긍심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모든 성도님들을 위해 항상 축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설교 후 기도
생명과 평화의 하나님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생태계 사이에 상함과 폭력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여러 모양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님, 불쌍히 여기시고 예언자를 통해 보여주신 새 하늘과 새 땅을 속히 이루어 주시옵소서. 그 거룩하고 위대한 일에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성별과 국적과 학력 등의 모든 거짓된 경계를 넘어 모두가 함께 손을 맞잡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오늘은 6.25 67주년 되는 날입니다. 그날 북한이 저지른 불법 남침과 그 이후 벌어진 전쟁 범죄에 분노합니다. 하지만 분노만으로 그치지 않게 해 주시고 상함을 이기고 회복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 땅에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데 앞장서는 부산진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회복의 세상을 완성하시려 이미 오셨고, 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사귐이

분단된 이 땅의 아픔을 치유하며 회복의 세상을 이루길 다짐하는 여전도회 연합회원들을 비롯한 부산진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항상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 지난 2016년 11월 13일에 부산진교회 청년예배시 했던 설교를 수정, 보완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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